[김형준의 젠더 폴리틱스] 위기의 한국 여성 시민운동
[김형준의 젠더 폴리틱스] 위기의 한국 여성 시민운동
  •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 승인 2021.01.15 10:31
  • 수정 2021-01-1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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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코스타 감독의 브라질 다큐멘터리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가 화제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랐던 작품인데 깊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위기에 내몰린 브라질의 민주주의를 응시한다. 작년부터 국내 정치인들이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이 영화를 소환했다. 가령,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작년 12월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호세프 지우마를 다룬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를 봤다”며 “재벌과 자본이 소유한 언론, 검찰의 동맹 습격으로 탄핵을 당했다”고 비평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올해 초 자신의 페이스북에 “촛불은 불의한 정치 권력은 물론 우리 사회 강고한 기득권의 벽을 모두 무너뜨리라는 명령”이라고 하면서 “브라질의 재벌, 검찰, 사법, 언론 기득권 카르텔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극우 정권을 세웠는지 추적한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를 봤다”고 했다. 그는 “기득권 카르텔을 개혁하는 것이 곧 민생이며, 이들을 내버려 두고는 어떠한 민생개혁도 쉽게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누가 기득권 세력인가? 촛불 혁명으로 탄생했다는 현 정부에서는 86 운동권 세력, 집권당, 민주노총 등이 어느 순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또한 이들은 진보 시민단체, 친여 성향의 검찰 및 언론과 결탁해 견고한 ‘기득권 카르텔’을 만들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있다. 더구나 이들은 ‘대깨문’이라고 불리는 극성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이 주도하는 악성 팬덤 정치에도 매몰되어 있다. 이들 신종 진보 기득권 카르텔은 적폐청산과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총장을 찍어내는 시도를 했다가 처참히 실패했다.

작년에 ‘시무 7조’ 상소로 이름을 알린 인터넷 논객 ‘진인 조은산’도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기득권은 도대체 누굴 지칭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론의 창시자이자 입시 비리의 종결자 조국을 말하는 건지, 아픔과 치유의 기생충 윤미향을 말하는 건지, 노동자가 같은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억대 연봉의 귀족 노조를 말하는 건지, 수도권 요지에 집 몇 채씩 사놓고 집값을 올려 자산 불리기에 열중인 정부 고위 관료들과 민주당 의원들을 말하는 건지도 나는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 현재의 기득권 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던 문재인 정부도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지난해 집권당의 총선 압승 이후 70%대의 고공행진을 하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는 올해 초 역대 최저치인 30%대로 추락했다. 민주당 지지도가 국민의힘에 역전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5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 건물 앞에 고 박원순 서울 시장 피소 사실 유출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여연 대표 출신으로 여성 인권에 앞장섰던 집권당 젠더폭력TF 위원장이었던 3선 중진의원이 여성 피해자 편에 서지 않고 권력자 편에 서서 피소 예정 사실을 유출한 것에 대해 통렬히 비판했다. 1987년에 결성된 여연은 호주제 폐지 운동을 비롯해 최근엔 ‘여성 인권 3법’이라 불리는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 성매매방지특별법 제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성 총리, 국회의원들도 대거 배출해 여성의 정치 세력화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한때 여성 권익 신장과 여성 정치 참여의 산파 역할을 했던 여연이 이렇게 추락한 것은 분명 여성 시민운동의 위기다. 여성 시민단체가 스스로 권력이 되어 정계 진출의 회전문이 되고 권력과 결탁하는 순간 정체성은 무너지고 그동안 이룩한 소중한 성과도 폄훼된다. 여연 막내 활동가는 대자보에 “더 이상 피해자가 고립되지 않도록 조직의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정치권과 결탁 없는 운동을 이어나갈 것을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이 호소가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한국 여성 시민운동의 질적 변화를 이루는 소중한 울림이 되길 기대한다. 단언컨대, 용기가 힘이다. 

©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신문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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