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여성사전시관 '방역의 역사, 여성의 기록'전
'K-방역의 역사' 속 여성들 조명
"역사에서 가려진 방역 이끈 여성들 주목해야"
2월 말까지 개최...사전 신청제·무료 관람

전시 '방역의 역사, 여성의 기록' 포스터 ​​​​​​​ ⓒ국립여성사전시관<br>
전시 '방역의 역사, 여성의 기록' 포스터 ⓒ국립여성사전시관<br>

코로나19 시대, K-방역의 최전선에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비롯한 여성 의료진이 있다. 우리나라 여성이 방역을 이끈 역사는 사실 길다. 1800년~1900년대부터 여성들은 무녀, 돌봄 노동자, 간호사, 의사로서 바이러스에 맞서 싸우며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지켰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국립여성사전시관은 방역의 역사를 여성의 시선으로 되짚어보는 '방역의 역사, 여성의 기록' 전시를 열고 있다. 과거 유물부터 코로나19에 맞서는 의료진의 생생한 증언까지 망라한 전시다. 유난히 추웠던 11일 전시장을 찾았다. 소수의 관람객들과 거리를 유지하며 여유롭게 전시를 관람했다. 

경기도 고양시 국립여성사전시관에서 열린 '방역의 역사, 여성의 기록' 전시 현장. ⓒ김규희 기자
전시장에 여성 의료진 사진과 간호복 및 각종 진료도구가 진열돼있다. ⓒ김규희 기자

 

무녀부터 간호사까지...1800년~1900년대 여성을 들여다보다


전시는 1800년대부터 2021년까지 방역의 역사를 다뤘다. 크게 4부로 구성됐다. △신과의 싸움, 역신의 시대(1800년대) △병균과의 싸움, 신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1900년대) △여성, 감염병에 맞서다(2000년대)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 그리고 여성(2021년)이다.

1부에서는 감염병이 '신'의 영역으로 인식되던 1800년대 시기, 여성의 역할을 조명한다. 조선왕조실록 등 옛 기록에 따르면, 당시 감염병의 원인은 ‘귀신’으로 여겨졌던 만큼 임상적 치료와 유교적·무속적 치레가 함께 행해졌다.

특히 민간에서는 구전과 경험으로 내려온 민간요법이 행해졌다. 이는 임상 경험이 풍부한 마을의 어른과 무녀와 같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천연두 등 병이 유행할 때 무녀들은 굿을 할 뿐만 아니라, 천연두 환자를 발견하고 돌보는 역할도 했다.

천연두를 관장하는 역신은 흔히 여성 신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사진은 유물 '호구'의 모습이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국립여성사전시관

2부에서는 감염병에 대해 의료·과학적 접근을 시작한 1900년대를 조명한다. 간호사나 의사 등 여성 직업 의료인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다. 1903년 미국 간호선교사 마거릿 에드먼즈는 서울 중구에 있던 보구여관에 국내 최초 간호사 양성학교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1908년 한국 최초의 여성 간호사 이구례, 김마태가 탄생했다.

이동은 국립여성사전시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여성 중심으로 기록되지 않은 역사 속 여성의 역할을 발굴하는 부분이 어려웠다”고 했다. “분명히 존재했으나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여성의 역사를 찾아내고자 고군분투”했다. 예컨대 일제강점기 종두(천연두)예방벽보에 남성뿐만이 아니라 여성이 함께 전면에 등장한 사실을 통해 여성과 남성이 모두 예방접종의 대상이었음을 알아냈다. 여성 의료진의 역할을 찾고자 조선총독부시정연보 등 추가 사료를 확인한 결과, 당시 여성 시술자 네 명이 채용됐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일제강점기 종두(천연두)예방벽보의 모습이다. ⓒ국립여성사전시관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 선 여성 의료진


3부에서는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 의료진의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서울의료원 감염병동에서 근무하는 장예원 코로나19 전담 주임간호사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플루(신종 인플루엔자),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때도 응급센터에서 근무한 베테랑 간호사다.

장 간호사는 인터뷰에서 “기존의 어떠한 전염병 시기보다 현재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가장 많다”며 “방호복을 착용하고 걸어가는 후배 뒷모습 보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물리적 치료뿐만 아니라 불안을 느끼는 환자를 상대로 심리적 치료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장 간호사는 “여성 의료진이 환자들에게 다가가 안정감을 주고 있다”며 “여성은 힘없고 작다는 편견이 있지만, 우리 여성들은 그 누구보다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코로나19도 이겨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함초롬 서울의료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과장은 지난해 2월부터 6월까지 코로나19 격리병동에서 근무했다. 그는 “의료진 중에서 특히 간호직은 대부분 여성이고, 서울의료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사람 중 95%가 여성”이라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의료 종사자 중 70%가 여성이다.

함 의사는 “일하다 증상이 있을 때면, 괜찮아질 때까지 집에 안 들어가기도 했다”며 “그래도 의료 현장에서는 우리가 열심히 하면 두려운 상황은 생기지 않을 거라는 강인함과 의지가 보인다”고 말했다.

모두 어렵게 성사된 인터뷰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던 지난해 2월, 코로나19 감염이 급격히 확산되면서 각 병원에서 인터뷰 요청을 부담스러워했다. 다행히 공공병원인 서울특별시 서울의료원이 인터뷰를 받아들였다. 의료원 간호부장이 "‘여성’에 관한 이야기라면 일정이 바빠도 꼭 도와주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말해 인터뷰가 성사될 수 있었다고 한다.

4부는 여러 통계 조사·분석을 통해 여성이 재난의 시대에 얼마나 더 차별받는지를 다뤘다. 2020년 3월 OECD 조사 결과, 코로나19로 가장 타격을 받은 업종은 대면접촉을 기본으로 하는 도소매업, 교육서비스업, 관광, 음식 및 숙박업 등이다. 이는 대표적인 여성 집중 산업이다.

OECD는 또 “일과 돌봄이 가정 내에서 병행되는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여성이 비자발적으로 고용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며 “부모 중 수입이 적고,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않은 쪽이 일을 그만두게 되는데, 이는 보통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여성의 돌봄 부담도 가중된다. 팬데믹 상황에서 사회적 격리, 휴교 등으로 가족 구성원이 가정에 머물 경우 가사노동과 가족 건강관리, 자녀 학업관리 및 아동과 노인에 대한 돌봄은 가정 내 여성의 몫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크다.

 

정영훈 관장 "역사에서 가려진 방역 이끈 여성들 주목해야"


정영훈 국립여성사전시관 관장은 이번 전시를 기획한 계기에 대해 "간호사, 돌봄노동자 등 방역을 이끄는 절대다수가 여성 의료인이지만 그간 여성의 기여가 조명되지 못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방역의 역사를 여성의 시각으로 되짚어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도 역사적으로 숨겨져 있던 여성의 역할을 시의성 있는 주제와 연결해 부각할 예정"이라며 "많은 여성이 이 전시에 와서 여성의 기여를 인지하고 용기를 얻어갔으면 한다"고 전했다.

정영훈 국립여성사전시관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방역의 역사를 여성의 시각으로 되짚어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김도해 에디터

이 학예연구사는 "지금의 기록이 여성의 역사를 드러내는 한 걸음이 될 것이며 이 걸음 걸음이 미래 세대에 전해지는 여성의 역사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것이 국립여성사전시관의 역할이자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2월 27일까지 열리며,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사전 관람 신청은 필수다. 문의 031-819-2288.

이동은 국립여성사전시관 학예연구사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도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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