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여성 채용 중단
"여성이 육체적으로 힘든 일하면 안 돼"
여성들 요구에 지난해 취업제한령 대폭 완화
올해 여성 기관사 12명 공식 채용

한동안 여성에겐 취업 기회를 주지 않던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지하철이 최근 여성 기관사를 선발했다. 1980년대 이후 최초다. 

5일(이하 현지시각) BBC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일 모스크바 지하철 여성 기관사 12명이 교육을 이수하고 정식 채용됐다. 세르게이 소비아닌 모스크바 시장과 도시 교통부는 3일 공동 성명에서 교통국이 채용한 25명의 여성 중 12명이 교육을 이수했으며, 허가증을 받아 “첫 승객을 태울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 기관사들에게 치마와 바지 유니폼 중에서 “자신이 운전하기에 더 편한” 복장을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고 덧붙였다. 모스크바 교통국은 모스크바 지하철의 “첫 여성 지하철 기관사"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012년 1월 1일, 12명의 여성이 모스크바 지하철 기관사로 공식 채용됐다. ⓒMOSCO METRO ⓒⓒ
2012년 1월 1일, 12명의 여성이 모스크바 지하철 기관사로 공식 채용됐다. ⓒMOSCOW METRO

모스크바 지하철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하루 900만명의 승객을 실어 나르던 대규모 대중교통이다. 모스크바 교통국은 1936년부터 여성 기관사를 고용해오다가 1980년대 초반 여성 채용을 중단했다. 기관사 업무가 여성에게 너무 위험하고 육체적으로 고단하다는 이유였다. 이후 남아있던 마지막 여성 기관사가 2014년 은퇴하며 지금까지 여성 없이 운영됐다.

지난해 9월까지 러시아 여성들은 트럭 운전사, 보트 선장, 광부, 해군, 자동차 정비사 등을 비롯한 456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5일 보도에서 기존 여성 취업 제한 조치는 “여성이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이유는 “여성이 자녀를 갖는 능력에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러시아 노동부는 여성 취업 직종 제한 조치를 지난해 9월 대폭 완화했다. BBC 러시아 선임 특파원 올가 이브시나는 “최근 몇 년간 러시아 여성들은 일자리 제한을 없애거나 변경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며 “96개의 직업을 제외한 나머지 직업에 대한 제한은 사라졌다”고 밝혔다. 여전히 여성 취업을 제한하는 직종 대부분은 위험한 화학 물질이나 폭발물을 직접 다뤄야 하는 직종이다.

한편, 모스크바 교통국은 새로 채용된 기관사들이 대부분 몇 세대를 걸쳐 교통국에서 근무한 가문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첫 합격자들은 지난해 초 선발됐다. 이미 교통국 산하에서 청소부, 역장 등으로 일하고 있던 22세에서 43세 사이 여성에게만 지원 자격이 주어졌다.

BBC 보도에 따르면 새로 채용된 기관사 중 한 명인 마리나 문트얀은 “기계 작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관사 이리나 돌기크는 지하철 역장으로 일하던 중 기관사에 지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현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발전, 성장을 위한 선택이었다. 어릴 적 꿈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교통국은 내년에 더 많은 여성 기관사를 고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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