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장애여성공감 난장 '숨'

지난 18일 오후 5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2003 장애여성공감 난장 '숨'의 마지막 행사인 문화제 '마지막 한숨'이 열렸다. 이번 문화제의 주제는 장애여성의 일상과 밀접한 가정폭력이다. 장애여성들은 그동안 언어 폭력, 특히 가족으로부터의 언어 폭력들을 견뎌내야 했다. 월경하는 딸에게, 화장하는 동생에게 무심코 내뱉는 말들. “너도 여자라고…”. 외출하는 동생을 부끄러워하고 경제적 독립을 비웃는 존재 또한 멀리있는 남이라기 보다 가족이었다.

지난 해 같은 장소인 마로니에 공원에서 “나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다”라고 당당하게 외쳤던 장애여성들은 이번 행사를 통해 가족이라는 가부장제 신화 속에 은폐된 가정폭력을 담론의 장으로 끌어냈다. 행사의 제목인 '숨'은 힘들고 지칠 때 내쉬는 숨과 가정폭력으로 고통 당하면서도 살아남는 장애여성들의 생명력, 두 가지를 의미한다.

실제 현 사회제도는 장애인의 삶에 대한 지원을 전적으로 가족에게 부담시킨다. 이러한 가족의 부담과 장애인에 대한 인권의식의 부재는 가족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장애인이 가정의 짐이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장애여성공감측의 설명이다. 박영희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가족이란 틀이 여성에게 억압이고 차별이라는 점, 언어 폭력과 여성들 스스로 결정한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폭력을 말하고 싶었다”면서 “장애여성에 대한 폭력은 단순히 물리적 폭력이 아닌 자아 형성에 영향을 주는 치명적인 폭력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를 표현한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져 '공감춤춤'에서는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이 함께 어우러진 춤 마당이 펼쳐졌다.

'PM 5:25'는 장애여성과 가족들의 역할 바꾸기를 통해 가정이 그들에게 어떤 공간인지를 영상으로 표현했다. 연극 '피는 물보다 징하다'에서는 가부장제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장애여성인 딸에 대해서는 가해자일 수 있는 어머니와 그것을 바라보는 딸의 복잡한 관계와 심정들을 풀어냈다. “독립하고 싶어”“연애하고 싶어”“공부하고 싶어”. 장애여성들의 욕구를 “네가 무슨. 그 몸으로” 한 마디로 일축해 버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어머니다.

장애여성들은 말한다. “우리가 처음 무엇인가 하고 싶어했을 때 안 된다고 말한 사람도 가족이었고, 처음 밖에 나갔을 때 우릴 부끄러워한 사람도 가족이었습니다. 장애여성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족이 첫 번째 지지자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퍼포먼스 '마지막 한숨'은 장애여성이 처한 극단적인, 그러나 현실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이는 차별과 동시에 동정이 공존하는 상황은 오히려 장애여성에 대한 폭력을 눈에 보이지 않게 강화시킨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다.

16일부터 3일 동안 열린 이번 행사에서는 영상토론회와 장애여성들의 연극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첫날에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며 죽어간 최옥란씨를 그린 영화 '장애도 멸시도 없는 세상에서'를 함께 보고 장애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폭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토론회가 열렸다. 연극 <갑, 자, 기>가 열린 둘째 날에는 '장애여성, 집밖으로 뛰쳐나와 혼자 살기''장애여성, 홀라당 발라당 연애질하기'라는 주제로 가정의 무관심과 폭력으로부터 독립하고 당당한 주체로서 평등한 연애관계를 맺어 가는 장애여성들의 이야기가 독특한 방식으로 펼쳐졌다.

박영희 대표는 “앞으로 장애여성에 관한 어떠한 이야기도 다룰 생각이며, 슬픔, 고통뿐만이 아닌 일상에서 느끼는 장애여성들의 기쁨 또한 다양하게 담아낼 계획이다”고 전한다.

임인숙 기자isim123@womennews.c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