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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10월 17일부터 11월 30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작가 윤석남(64)의 전시회가 열린다.

지난 2년간 작업한 조각 작품과 드로잉 14점이 소개되는 이번 전시의 제목은 '늘어나다: 페미니즘의 새로운 길'이다. 모처럼 넉넉해진 품으로 여성의 힘과 연대와 강인함을 끌어안고 나선 작가의 신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여성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강렬한 이미지의 작품들로 표현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선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와 욕구들을 담는다. 여전히 투박한 질감의 나무에 채색을 하고 가는 선으로 드로잉을 했지만 작품 속 여성들은 일제히 팔을 길게 늘어뜨려 누군가에게 닿고 싶어한다. 작가는 이를 “소통하고 싶고 점점 나를 확장시키고 싶은 마음에 팔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공중에 매달렸거나 세워진 작품들은 한국에서 '여성',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불확실한 정체성을 상징한다. 1997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핑크룸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분열되어 있는 여성의 내면은 그가 주로 사용하는 그네를 통해 재현되었다. '악몽 같은' 현실과 분리된 공간인 환타지와 흔들림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푸른 고래 한 마리를 머리에 이고 힘차게 나아가는 여성을 표현한 '어시장'(2003)은 새벽 어시장의 '억척스럽고' 생동감 있는 여성들을 떠올리게 한다.

'늘어나다-손'(2003)은 확산되고 싶어하는, 그러나 충족되지 않는 작가의 욕구를 바닥에 떨어진 빨간 손으로 표현했다. 연작 '종소리'(2002)는 시인 이매창과 자신을 마주보게 해 그에 대한 작가의 애틋한 마음을 담았다. 빨간 심장을 안고 있는 '김혜순'(2002)과 손끝이 화려한 자개로 표현된 '김영옥'(2003)은 작가의 오랜 지인인 시인 김혜순과 독문학자 김영옥이다.

신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작가의 몇몇 작품도 눈에 띈다. 자화상 '푸른 얼굴'(2003)과 심장에서 물이 흘러 물을 주는 여인 '늘어나다-물'(2003), 큰 연꽃에서 전해지는 구원받는 느낌을 표현한 '늘어나다-연(蓮)'(2003).

이들은 손때 묻은 나무를 소재로 택해 작업해온 작가만의 독특한 색채를 풍긴다. 그것은 작가의 전작들이 보여준 민속적이고 신화적인, 애니미즘적인 인상을 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몽환적이다”라고 스스로 평하는 작가 자신의 미적 경험을 반영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상상력이 필요한 작가는 자신의 경험 세계가 우러나오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그.

한국적이면서도 한국적이지 않고 동양의 것도 서양의 것도 아닌 정체 불분명의 작품들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선에 선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문화를 한다는 비주류성과 페미니즘을 트렌드로 보는 입장이 규정한 주류성의 경계일까.

작품 '의자'(1994)와 '섬'(2003)은 버려진 의자, 드럼통을 주워다 작업한 것이다. 버려진 것들에 자기의 이야기를 보태는 그의 일관된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도 보여진다. “비록 버려졌지만 세월이 오래 흘렀고 이미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얘기가 있다는 점이 좋아 차용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소재가 가진 이야기성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은 그의 오랜 방식이다.

“여성으로서, 여성이기 때문에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그것이 날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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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3.

개를 산책시키는 장면인 '외로운 할머니와 개'(2003)는 왠지 모를 익살스러움에 잠시 웃음을 머금게 한다. “버려진 개를 20마리 정도 주어다 같이 사는 여자를 작품 해볼 생각”이라는 작가는 '이사가라고 하는데 이 개들을 위해서 절대 못 간다고 고집피우는 할머니'를 작품에 표현하기 위해 다리 밑에서 100여 마리 개를 키우는 할머니를 찾아가 인터뷰해 볼 생각이란다.

또 다른 계획은 옛날 여성들의 영정을 실제로 만들어보는 것. “전통 신화를 공부해 그 신화와 자신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해볼 계획”이라고 전한다. 여성미술가이기보다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라 불리우길 원한다는 작가는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입장에서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고 말한다.

'석남'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한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이미 한풀 꺾이는 것들과 자신을 떨어뜨릴 수 없었다”는 작가에게 페미니스트 아트는 한국 사회에서 작가의 경험을 구성해 온 것들에 대한 저항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이 내뿜는 힘찬 기운은 그 저항의 산물이다.

임인숙 기자isim123@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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