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젠더 프리즘] ‘치마불교’ 오명 속 종단 운영은 남성 몫
[불교계 젠더 프리즘] ‘치마불교’ 오명 속 종단 운영은 남성 몫
  • 전영숙 불교여성개발원 불교여성연구소 소장
  • 승인 2021.01.13 09:57
  • 수정 2021-01-13 1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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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젠더 프리즘] ① 불교여성, 기복을 넘어 주체로 서다

<불교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불교 교단 내 주요 젠더 이슈들을 살펴보고 성차별적인 교단의 현실을 들여다봅니다. 총 5회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1898년 한양 북촌에서 양반가 처자인 김소사, 이소사가 여자도 사람이라며 여성의 교육권, 투표권, 직업권을 요구하는 ‘여권통문’을 발표했다. 너무 놀랍고 신기하다며 황성신문 1면에 실렸던 이 최초의 여성인권선언 후 한국여성의 사회 참여는 급격하게 확대됐다. 일제 식민지하 여성들은 단체를 조직해 계몽과 독립운동에도 나섰는데, 당시 불교여성들의 활약상도 두드러졌다. 붓다의 가르침에 기초한 여학교를 세우거나 사찰이나 포교당 등에서 직업학교를 운영하기도 했고, 해방운동에 동참하며 중생 구제라는 대승불교 보살의 삶을 실천했다.

하지만 타 종교와 비교하면, 근대 불교여성들의 사회 참여는 점차 축소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제는 승려가 결혼하는 왜색불교를 한국불교에 이식하면서 교단을 탄압했고, 재가여성불자들은 독신의 전통불교를 지원하면서 교단 수호에 앞장서야만 했다. 여학교나 여성단체를 통한 여성 인재 양성에 적극적이던 타종교와는 그 처지가 너무도 달랐다. 물적 토대조차 미약했던 한국불교는 그나마 남성출가자인 비구교육에 전념했기에, 여성불자들은 교리를 공부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지난해 부처님오신날인 5월 14일,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 중 관불의식. 여기서도 여성은 보조적 역할에 머무른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2017년 부처님오신날인 5월 14일,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 중 관불의식. 신도 다수가 여성이지만 여전히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뉴시스·여성신문

 

교단 성차별 비판한 여성들
사찰 떠나거나 냉담 신자 돼

더욱 안타까운 점은 해방 이후 왜색불교의 후유증이 교단 내부 분규로 이어지면서, 중생 구제를 위한 활동보다는 교단 정화가 더 큰 과제였다. 이 과정에서 교단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항상 그래왔듯이, 여성불자는 교단을 수호하고 독신 출가자를 지원해야만 했다. 1980년대 이후 여성운동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여성 정치세력화가 두드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불자들의 사회 참여는 타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했고 교단도 사회 참여에 소극적이었다. 일부 여성불자들이 사회 이슈들에 관심을 가지면 수행이 덜 된 사람이나 오지랖 넓은 사람으로 비난받기도 했고, 교리를 제대로 배울 곳이 부족했기에 기복적인 신행에 머물기도 했으며, 이웃종교처럼 서구의 앞선 여성리더들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기에 조직화도 쉽지 않았다.

똑똑하고 주관이 있는 재가여성불자는 환영받지 못했다. 스님들, 특히 비구스님들은 출가자라는 권위에 도전받기를 원치 않았고, 남성불자들은 남성중심적인 기존의 젠더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다. 여성불자는 자녀들을 절에 데려오거나, 스님의 가르침을 무조건 따르거나, 시주와 봉사를 의무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아무리 사회에서 뛰어난 여성리더라 할지라도 교단에 들어오는 순간, 순종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신자가 되어야만 했다. 다수 신자가 여성이며, 법당이나 공양간의 봉사자 또한 대부분 여성이지만, 이들의 신행은 미신적인 기복불교, 치마불교로 비난받으며 종단이나 사찰 운영에서 소외되었다.

교단 내 성차별에 비판적인 여성들은 사찰을 떠나거나 냉담 신자가 되어 사찰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기에, 여성불자를 조직하고 체계적인 활동을 꾸려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세계 불교국가들에서도 도움 받을만한 여성단체가 많지 않았으며, 서구에서 먼저 본부가 꾸려지거나 활동 경험들을 전수받기도 하는 이웃종교 여성단체들과는 상황이 너무나도 달랐다. 그동안 한국의 여성불자들은 당면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길 없는 길을 개척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20년 1월 8일 불교여성개발원 주최 ‘신년법회 및 여성불자 108인의 날’ 기념식 모습. ⓒ불교여성개발원
지난 2020년 1월 8일 불교여성개발원 주최 ‘신년법회 및 여성불자 108인의 날’ 기념식 모습. ⓒ불교여성개발원

 

여성불자 조직화한 불교여성개발원
인재풀 만들어 네트워크·협업도

이처럼 재가여성 조직화가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불자들의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스무 돌 성년을 맞이한 재가여성 불교단체가 있으니, 바로 ‘불교여성개발원’이다. 물론 이웃 종교 여성단체들의 긴 역사와 비교할 때 20년이라는 세월은 비교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단체의 행보는 한국불교여성운동사 뿐만 아니라 한국을 넘어 다른 나라의 재가여성불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단체는 종단의 포교원 산하단체로 출범했지만 단순히 포교를 넘어 대사회적 이슈로 관심을 확대했고, 소속 사찰 중심 활동의 울타리를 넘어 전국적으로 연대하며 불교의 대사회적 실천을 위한 자발적 단체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월 8일 불교여성개발원 주최 ‘신년법회 및 여성불자 108인의 날’ 기념식 모습. ⓒ불교여성개발원

불교여성개발원에서 눈여겨봐야 할 활동 가운데 하나는 2003년부터 격년으로 전국의 재가여성불자 중 여성리더 108인을 선정해서 여성지도자 인재풀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전국적 네트워크로 다양한 분야의 여성리더를 연결한 것은 여성운동의 관점에서도 매우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전업주부로 사찰신도회 운영 경험을 가진 회원과 전문직 회원들의 협업을 통해 인드라망의 그물처럼 대사회적 실천의 장을 확대해 나간다. 청소년 교정교화사업, 생명존중운동, 다문화봉사, 군장병 위문, 한부모 가족지원, 건강밥상 지킴사업, 불교여성연구 등 여러 대상을 위한 조직적 활동도 눈에 띈다. 여성불자들의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이 단체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는, 이들이 내딛는 발자취마다 불교여성운동의 역사가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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