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시절과는 달리 정부 비판에 조용한 지식인 사회
권력의 팬덤 때문에 자기검열하고,
이념을 넘어 이익공동체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
권력에서 자유로운 좌파 지식인을 찾기 어려운 시대

지식인 사회가 조용하다. 조국 사태가 진행되고 정경심 교수에 대한 실형 선고가 내려졌어도,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는 사태가 이어졌어도 별다른 말들이 없다. 집권여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이 줄지어 성추행 문제로 물러나고 2차 가해 논란이 빚어져도, 그 때문에 치러지는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여당이 그냥 공천하겠다고 선언해도 문제제기하는 지식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조중동’이 충분히 비판하고도 남으니 굳이 지식인들까지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 내란음모 계엄령 문건 특검하라 촉구를 위한 제12차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2019.11.02. ⓒ뉴시스·여성신문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 내란음모 계엄령 문건 특검하라 촉구를 위한 제12차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2019.11.02. ⓒ뉴시스·여성신문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쪽 사람들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끝까지 책임을 추궁하며 물러나라고 했었다. 만약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표창장을 위조해서 대학에 들어간 사실이 알려졌다면 규탄하는 지식인들의 대열은 끝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권력이야 내로남불하는 게 속성이라 그렇다고 하지만, 지식인들은 어째서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

짐작하건대 자기검열들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과거 정권 시절 우리는 권력으로부터의 혹독한 검열에 시달려야 했다. 권력을 비판하는 지식인들은 배제되고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으며, 심지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촛불시민들의 승리로 그런 권력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더 이상 권력에 의한 검열은 사라지고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세상이 올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자기검열이라는 새로운 굴레였다. 권력의 팬덤들은 자신들의 ‘착한 권력’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에 어떠한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다. 감히 비판했다고 쏟아지는 문자 폭탄과 욕설 댓글에 위축되지 않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무리지어 다니는 그들 앞에서 허약한 개인들은 자기보호의 본능이 발동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눈치를 살피며 모나지 않으려고 비판의 날을 스스로 무디게 만들어 버렸다.

지식인들의 비판이 사라진 또 하나의 이유는 지식인들이 권력과 같은 진영 내에서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되었기 떄문이다. 과거 우리 사회의 부패비리나 성추행 문제에 대해 엄정한 태도를 취해왔던 지식인들과 NGO들이 현재 권력의 잘못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자기들끼리 너무도 얽히고 설켜버렸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래 여러 시민단체의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여당으로 갔다. 진보적 학자들은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기관들이 발주하는 여러가지 용역들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이제는 단지 진보라는 이념의 공동체를 넘어 이익을 함께하는 이익공동체가 된 것이다. 그러니 서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두기는 불가능해졌고, 운명을 같이하는 ‘원팀’이 되고 말았다.

<지식인의 두 얼굴> 책 표지 ⓒ을유문화사 제공
<지식인의 두 얼굴> 책 표지 ⓒ을유문화사 제공

근대적 지식인들의 도덕적 모순과 위선을 해부하고 있는 폴 존슨은, 지식인들이 집단적인 의견을 내놓으려 들 때는 그들을 특별한 의혹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식인들의 위원회를, 회의를, 연맹을 경계하라. 그들의 이름이 빽빽하게 박힌 성명서를 의심하라. 정치 지도자와 중요한 사건에 대해 내린 그들의 평결을 무시하라.” (『지식인의 두 얼굴』)

571쪽에 달하는 법원의 판결 같은 것은 아예 무시하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 많던 지식인들은 침묵의 수행을 한다. 한 시절 여성운동을 대표했던 인사들이 피해 여성의 존재는 잊은 채 가해자 걱정부터 하며 피소 사실을 유출시킨다. 그렇게 진영은 지식인들과 NGO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

작가 조지 오웰의 저술들에는 권력의 주변에서 위선과 표변을 일삼는 지식인들에 대한 고발이 많다. 오웰이 비판의 날을 가장 벼렸을 때 겨눈 것은 주로 좌파 지식인들이었다. 그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운동과는 늘 거리를 두었다. “정서적으로 나는 분명 좌파이지만 작가는 정당 이름에서 자유로울 때만이 정직하게 남을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우리에게는 그런 오웰들이 너무도 적어졌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여성신문
유창선 시사평론가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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