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자의 K교육 클리닉] ①
살해 의도 없어도 아동 사망에
‘1급 살인죄’ 적용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거주하는 워킹맘이자 교육상담가인 필자가 글로벌한 시각으로 우리사회의 교육문제에 접근합니다.] <편집자>

7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소재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장된 정인 양의 묘역에 추모객들이 놓은 정인 양의 사진과 편지가 놓여 있다. ⓒ홍수형 기자
7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소재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장된 정인 양의 묘역에 추모객들이 놓은 정인 양의 사진과 편지가 놓여 있다. ⓒ홍수형 기자

 

생후 16개월 아기가 양부모 학대로 숨진 이른바 ‘정인이 사건’은 아동학대 문제를 비롯해, 국가의 책임과 부모 역할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온 대책들이 실질적인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거들고 싶다. ‘미국이라면 정인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된 정인 양이 세 번의 심 정지 끝에 숨을 거둔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아동학대는 발생할 때마다 사회문제가 되지만, 일시적으로 관심을 끌다 유야무야되기 일쑤였다. 아동학대는 은밀하게 집안에서 일어나고 학대 사실 자체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특히 가해자가 부모, 형제 등 가족구성원이라는 점에서 외부인의 신고나 피해아동 스스로 신고로 이어지기 힘들다. 가정해체, 경제난, 사회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이렇듯 가장 사적인 영역에서 발행하는 치부이며, 성인에 의해 아동에게 가해지는 권력관계에 의한 것이므로 돌파구는 사회적·법적 시스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적·법적 시스템이 아동 관련법이라는 이름으로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문제 해결에 필요할 때 작동되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장치로 남아있다. 현장 담당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업무실행 후 밀려올 후폭풍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몸을 사리게 하거나 처벌 형량이 미약해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입양기관 등 관리감독 및 보호기관의 무관심과 소홀함, 경찰서의 확증편향과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허술한 관리를 잘 드러낸 사건이다. 관련 기관의 무책임이 양부모의 지속적 학대와 사망에 일조한 격으로 아동인권이 철저히 유린당한 사건이다. 또 사건 현장에서 법률과 매뉴얼이 전혀 작동되지 않음을 보여준 극단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아동학대 신고 앱 도입해
누구나 주소·차량 신고 가능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동학대는 갈수록 엽기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의 아동학대 상황 역시 한국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신고와 처벌 면에서 약간 차이를 보인다.

미국의 경우, 학교 교사 및 카운슬러, 경찰, 의사, 정신질환 관리자 등은 아동학대를 인지한 경우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되어 있으며,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통합교육구(San Diego Unified School District)는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거나 의심될 경우 이를 목격한 현장의 주소와 차량정보 등을 신고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을 도입해 곧바로 경찰국으로 관련 내용이 전송되도록 하고 있다.

연방하원은 2018년 이민가정 내 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이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써 강제 추방대상 범죄 범위를 확대하는 ‘연방 커뮤니티 안전 및 보안법안 (The Federal Community Safety and Security Act)를 통과시켰다.

가해자 처벌의 경우, 한국과 달리 살해 의도 없이 저지른 사망사건에 대해 1급 살인죄를 적용해 최대 무기징역까지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다. 즉 라스베가스에서 20대 엄마가 1살 된 아들을 태우고 시속 120마일(미국 고속도로 최고 속도는 65마일)이 넘는 속도로 음주운전을 하다가 충돌사고로 아이가 사망하게 된 사건에 대해 경찰은 난폭운전과 아동학대 및 살인 혐의 등으로 엄마를 체포했다.

7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소재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장된 정인양의 묘역에 추모객들의 남긴 편지와 선물들이 놓여 있다. ⓒ홍수형 기자
7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소재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장된 정인 양의 묘역에 추모객들의 남긴 편지와 선물이 놓여 있다. ⓒ홍수형 기자

 

위탁가정서 성폭행 입은 소녀들에게
850만 달러 피해 보상한 워싱턴 주

피해자에 대한 보상체계를 빼놓을 수 없다. 워싱턴 주의 위탁가정에 보내진 소녀 2명이 양육 아버지로부터 수차례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드러나 주정부가 이들에게 850만 달러(한화 약 92억8200만원)를 보상했다. 이는 주정부가 동일한 위탁가정에서 아동학대가 보고된 바 있는데도 무시하고 이 두 소녀를 안전하지 않은 가정에 위탁했다는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또 친모에 의한 3살 여아 고문 및 살인사건에 대해 친부와 친조부모에게 캘리포니아의 나파시와 카운티에서 500만 달러(한화 약 54억6000만원)를 지급하도록 했다. 이 또한 경찰국과 카운티에게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서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을 묻고 결국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직계 친부모와 친조부모까지도 피해자로 인정함을 알 수 있다.

정인 양 부모에게 아동학대치사죄가 아니라 살인죄가 적용되어 중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여론이 뜨겁다. 이 사건에 이어 1심 판결에서 살인혐의에 무죄가 내려진 ‘원주 3남매 사건(2016년 20대 부부가 첫 돌도 안 지난 아이를 숨지게 한 사건)’의 항소심 판결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존 판례에 입각해 판결이 내려지므로 외국 사례도 참고해 엄격한 중벌로 처리되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법제정에 앞서서 원칙이 묵살되는 현장의 쇄신을 위한 진정한 반성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건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피해자 이름을 딴 ‘OOO법’이 계속 만들어지지만 사람들이 변하지 않고는 세상은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청장의 담당자를 바꾸겠다는 급조된 면피성 사과나 ‘정인이법’이라며 여론에 편승해 법안 쏟아내기 식보다 시간이 걸려도 전문인력을 어떤 식으로 갖춰 현장이 굴러가게 하겠다는 식의 구체적 대안을 기대한다. 

지난해 11월 16일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서울 양천경찰서 앞에서 '16개월 입양 아동 학대 사망 사건'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지난해 11월 16일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서울 양천경찰서 앞에서 '16개월 입양 아동 학대 사망 사건'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우리가 정인이 엄마” 외치며
사건 공론화한 평범한 엄마들

몇 달 전부터 이름 모를 엄마들이 정인이의 묘지에 돌아가며 푯말 세우고 묘를 돌보며, 매체에 제보하여 기사화되고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서로 알지 못하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공적기관이 외면한 아이에게 “우리가 정인이 엄마”라고 자처한 평범한 엄마들이 두 달 넘게 양천경찰서, 홀트아동복지회,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을 돌며 시위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던 대가 없이 모인 엄마들이었다는 것에 나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정인이 사망사고는, 모성에 근거한 문제제기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부디 이 감정이 일시적인 감정폭발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가족이기주의적인 부모됨(Parenthood)에 갇혀 내 자식만 잘 되면 된다는 미시적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적 부모됨으로 발전되어 내 아이를 돌보는 마음으로 주변의 아이들도 돌아볼 수 있는 사회적 책임의식으로 성장하게 되기를 바란다. 옛날 한 동네에서 사는 아이들은 동네 어른들의 관심과 훈육으로 성장했듯이 나의 발전과 성공이 너의 발전과 성공으로 이어지는 ‘윈윈’(상생)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공동자녀관과 공동체의식 함양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결국 한 인간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며, 나와 함께 살아갈, 그리고 내 아이들과 같이 살아갈 이웃으로서 인식되고, 그 이웃의 행복이 보장될 때 나와 내 아이들 역시 행복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휴머니즘의 맥락에서 거시적인 의식(Macro Consciousness)을 갖고 임해야 할 것이라 본다.

내가 아이를 낳든 입양을 하든 부모가 된다는 것은 ‘내 딸의 동생을 만들어주기 위해 입양했다’는 정인이의 양부모의 말처럼 그렇게 단순한 결정이 아니다. 그 뒤에 크게 차지하고 있는 부모로서 나를 물리적 정신적으로 재구성하고 다시 태어날 각오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을 우리 부모들은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어떤 마음의 상처를 우리 아이들에게 주었는지. 그동안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좌충우돌하며 ‘이건 널 위해서야’라며 우리 아이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었는지 과거를 돌아보며 사랑을 가장하여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욕심을 얼마나 강압적이었는지 돌아보는 것은 폭력으로 질식된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심폐소생술의 출발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황은자(베로니카)
황은자(베로니카)

필자 황은자(베로니카)
사회학과 여성학을 공부하고 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998년 미국으로 건너가 아들과 딸, 남편과 샌프란시스코에서 23년째 살고 있다. 전업주부로서 아이들의 성장에 맞춰 학교자원봉사, 한국학교 교사, 주일학교 교사, 도서관 한국섹션 담당, 페닌슐라한인학부모회 회장, 센서스국 수퍼바이저, 교육컨설턴트 등을 하며 미국 주류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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