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책 <작별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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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랜드에서 사라진 23명 아이들의 엄마, 아빠, 언니와 동생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엄마 아빠는 부칠 수 없는 편지라도 써 보지만, 아이들은 형제 자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당하고 있을까?

어릴 적 외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내 기억은 엄마의 통곡소리뿐이다. 초등학교에도 채 입학하지 않았던 나에게 장례식에 참가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죽음이란 금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키우던 애완동물의 죽음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죽음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어떤 진통을 겪고 있을까?

독일 작가이자 배우이기도 했던 구드룬 멥스는 <작별인사>에서 갑작스런 언니의 죽음을 겪는 아이의 마음속을 한올한올 차분하게 떠낸다. 마치 주인공 아이가 대머리가 된 언니를 위해 털모자를 뜨듯이 말이다. 작가는 우리 대다수가 기억하지 못하고 알지 못할 아이의 마음속을, 상상한다.

비르기트 언니가 아침에 일어나서 사팔눈이 된 걸 보고 아이는 웃는다. 그러나 엄마는 웃지 않는다. 병원에 간 언니는 집에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아이는 단 한번 병문안을 갔을 뿐, 언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엄마 아빠는 언니에게 온통 정신이 쏠려 있고, 아이는 할머니와 지내게 된다. 아이는 혼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듯, 혼자서 언니의 죽음을 겪어 나간다.

사실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겪고 있는지, 언니가 걸린 암이란 것이 무엇인지, 죽는다는 게 뭔지 아직 잘 모른다. 다만 자기가 가볼 수 없는 병원과 아빠에게서만 듣는 언니의 상태에 대해서 끊임없이 상상하고 나름대로 대처한다.

아이는 암수술로 겁에 질렸을 언니가 양인형 없이 잠들기 힘들까봐 양인형을 챙겨 간다. 언니가 코로 튜브를 이용해 음식을 먹는단 얘길 듣자 친구들에게 "언니가 우주비행사 음식을 처음 맛본 아이가 되었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언니가 숨도 제대로 못 쉰다는 소식을 들은 아이는 침대에 누워 숨을 참고 오래 견뎌본다. 20초를 견디고, 언니의 괴로움을 느낀 아이는 눈물을 흘린다.

다음날 언니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아이는 언니가 묻힐 하얀 관에 자신이 묻히는 상상을 한다. 이제 '안녕'이라는 작별인사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아이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는 장례식에 가고 싶어 하지만 가지 못하고, 대신 엄마가 마련한 꽃다발이 언니와 같이 묻힌다는 말에 안도한다.

작가는 이렇게 집에 남은 아이가 언니의 아픔과 죽음을 상상으로 동참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담담한 것은 윱 뮌스터의 삽화도 마찬가지다. 그는 차가워 보일 정도로 주름 하나하나까지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보드랍게만 보이는 잠든 양인형, 엄마 아빠만 병원으로 타고 떠나는 차, 할머니가 앉아서 하루종일 언니의 수술결과를 기다리던 의자와 전화기, 울고 있는 아빠를 들여다보던 서재 방문의 열쇠구멍…. 구드룬 멥스가 주어를 '나'로 해서 썼듯이, 윱 뮌스터의 삽화는 아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눈에 닿는 것을 그리고자 했다. 울음을 터뜨린 아이의 얼굴이 아니라, 아이 눈에 보인 언니의 빈 침대 위 구겨진 이불을 그려낸 것이다.

아이의 아빠는 너무 슬픈 일에 아이들이 참석하는 건 좋지 않다며 아이를 장례식에 참석 못하게 했다. 그러나 아이는 그 결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도 언니와 작별인사를 나눌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엄마 아빠가 몰랐을 뿐이지 아이도 혼자서 잘 겪어오고 대처하고 있지 않았던가? 장례식날 아이는 아래층 아주머니 집에서 모자를 뜬다. 언니가 기뻐하면서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리면서.

구드룬 멥스 글, 윱 뮌스터 그림, 문성원 옮김, 시공주니어

김은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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