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분야에서 주목받아온
새해 활약 기대되는 92년생 여성 5인
문보영 시인·유튜버
‘러닝 전도사’ 안정은 런더풀 대표
이민경 작가
이슬아 작가
최하나 영화감독

2021년 서른을 맞은 1992년생 여성 문화예술인 5인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왼쪽 위부터) 문보영 시인·유튜버, ‘러닝 전도사’ 안정은 런더풀 대표, 이슬아 작가, 이민경 작가, 최하나 영화감독. ⓒ여성신문
2021년 활약이 기대되는, 요즘 주목받는 1992년생 여성 문화예술인 5인. (왼쪽 위부터) 문보영 시인·유튜버, 안정은 런더풀 대표, 이슬아 작가, 이민경 작가, 최하나 영화감독. ⓒ여성신문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19로 시든 문화예술계가 올해는 되살아나기를 모두가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요즘 주목받는 1992년생 여성 문화예술인 5인의 활약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지금 MZ세대(1980년~2000년 초반 태어난 세대)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인들이기도 하다. 이들의 새해 도약을 기대한다.

 

문보영 시인·유튜버

문보영 시인 ⓒ민음사 제공
문보영 시인 ⓒ민음사 제공

시인, 유튜버, 힙합 댄서, 1인 문예지 발행인, 피자 미식가. 문보영(30) 시인은 요즘 말로 ‘힙’하다.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문단에 등장해 2017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등단 1년 만의 수상으로 역대 최단 기록을 썼다. 감각적이면서도 발랄한 언어유희, 다채롭고 독창적인 시 세계를 선보였다. “전혀 다른 종의 시인”(김언 시인)이라는 탄성도 나왔다.

문예창작학과, 국어국문학과가 아닌 사범대 교육학과를 나온 시인은 드물다. 대학에서 오태환 시인의 수업을 계기로 시에 빠졌다. 첫 시집인 『책기둥』(2017, 민음사)에 이어 20대에 쓴 일기를 엮은 첫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2019, 쌤앤파커스),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무대로 한 연작 시집 『배틀그라운드』(2019, 현대문학),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2019, 비사이드)과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2020, 웨일북) 등 그간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문보영 시인은 새해에도 SNS로 유료 구독자를 직접 모아 1인 문예지 ‘일기 딜리버리’를 발행하고, ‘일상 브이로그’를 찍고 있다. ⓒ문보영 시인 블로그 캡처
문보영 시인은 새해에도 SNS로 유료 구독자를 직접 모아 1인 문예지 ‘일기 딜리버리’를 발행하고, ‘일상 브이로그’를 올리며 소통하고 있다. ⓒ문보영 시인 블로그 캡처

문 시인의 글은 비밀 일기 같다가도 소통을 원하는 SNS 게시물 같다. 불면증과 우울증, 삶과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털어놓는다. “삶의 주도권이 문학에만 있을 때 내 삶은 위태로웠다. 그래서 음악, 그림, 친구, 춤, 영상, 일기에 주의를 분산시키기 시작했다. ‘대충’과 ‘최선’ 사이에서 묵묵하게 롱런하겠다”는 선언(『준최선의 롱런』)은 많은 밀레니얼 독자의 공감을 샀다. 그는 올해도 글을 쓰고, ‘일상 브이로그’, 1인 문예지를 발행하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안정은 러닝 전도사

안정은 러닝 전도사 ⓒ런더풀
‘러닝 전도사’ 안정은 런더풀 대표. ⓒ런더풀

‘러닝 전도사’ 안정은(30) 런더풀 대표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8만2000명이 넘는 러닝계의 셀럽이다. 좋아하는 달리기를 직업으로 삼아 강연, 기고, 방송, 사업, 출판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런더풀은 관광과 스포츠를 융합한 ‘런트립(Run Trip)’을 기획·운영하는 회사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의 달리기 좋은 곳을 찾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달린다.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에도 일조한다. 스포츠 브라탑만 입고 달리는 ‘탑걸즈크루(Topgirls crew)’도 그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내 몸을 긍정하고 힘을 키우자는 메시지를 담은 프로젝트다. ‘2020 올해의 양성평등 문화상 - 신진여성문화인상’도 받았다.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여성문화네트워크가 '2020 올해의 양성평등 문화상' 시상식을 열고 안정은 러닝전도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안정은 런더풀 대표가 2020년 10월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0 올해의 양성평등 문화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대학에서 연극을 했다. 졸업 후 IT 회사에 개발자로 취직했다가 관뒀다. 중국 항공사 승무원으로 합격했으나 사드 문제로 취업비자를 못 받았다. 눈물을 보이기 싫어 어느 날 도망치듯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 게 새로운 길이 됐다. 국내 유수의 마라톤대회, 철인 3종 경기 등을 완주했다. 좋아하는 달리기로 돈과 건강도 얻고,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는 그가 새해에도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이민경 작가

지난 4일 ‘2017 청년포럼, 문화·예술이 젠더를 묻다’ 2차 포럼에서 강연 중인 이민경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7년 8월 4일 서울 종로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에서 열린 ‘2017 청년포럼, 문화·예술이 젠더를 묻다’ 2차 포럼에서 강연 중인 이민경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민경(30) 작가는 2030 페미니스트들의 아이콘이자, 동시대 가장 뜨거운 페미니즘 화두를 포착해 기록하는 작가다. 평범한 여성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론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힘을 보여줬다.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계기로 펴낸 첫 책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2016, 이하 모두 봄알람)을 시작으로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2016),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2017), 『유럽 낙태여행』(2018), 『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2019)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지난해 온라인 구독 서비스 ‘코로나 시대의 사랑’을 시작했다. 코로나19 속 고립된 여성들과 연대하려는 프로젝트다. 구독료를 내면 페미니즘 이야기, 고민상담 등을 메일로 보내준다. 최근 연세대 대학원 문화인류학과 석사과정 논문을 제출했다.

2020년 1월 29일 연세대 연희관에서 열린 ‘세대와 젠더’ 세미나에서 이민경 작가가 발언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2020년 1월 29일 연세대 연희관에서 열린 ‘세대와 젠더’ 세미나에서 이민경 작가가 발언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젊은 페미니스트들과 기존 여성 운동계의 중간다리 역할도 해왔다. “여성의 역사가 사라진 이유는 여성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중요하게 기록되고 인정받지 못해서다. 기록이 없으면 여성끼리 소모적 담론이 반복된다”고 강조해왔다. 세상을 향한 분노에 갇히지 않으면서, 지치지 않고 살 길을 찾는 페미니스트들에게 그는 든든하고 친절한 동행인이다. 

 

이슬아 작가

이슬아 작가 ⓒ이슬아 작가 페이스북 캡처
이슬아 작가 ⓒ이슬아 작가 페이스북 캡처

매일 글 한 편을 독자에게 직접 보내는 작가가 있다. 편당 500원, 한 달 구독료 1만원을 내면 스무 편을 메일로 보내준다. 이슬아(30) 작가의 ‘일간 이슬아’ 서비스다. 어느새 출판계 트렌드가 된 ‘구독 서비스’ 모델의 시초다. 

이슬아 작가는 2018년부터 SNS로 ‘일간 이슬아’ 구독자를 모집했다. ⓒ이슬아닷컴
이슬아 작가는 2018년부터 SNS로 ‘일간 이슬아’ 구독자를 모집했다. ⓒ이슬아닷컴

대학 졸업 후 학자금 대출 2500만원을 갚으려고 20대 내내 일했다. 누드모델, 카페 아르바이트, 잡지 기자, 웹툰 작가, 작문 교사를 거쳐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다. 2018년부터 SNS로 구독자를 모집했다. “아무도 안 청탁했지만 쓴다!” “날마다 뭐라도 써서 보낸다!” 패기 넘치는 문구로 눈길을 끌고, 일상과 감정을 솔직담백하게 쓴 수필이 호평을 받아 구독자가 급증했다. 연재글을 모아 펴낸 책도 인기를 끌었다. 연재글을 모은 책 『일간 이슬아 수필집』(2018, 헤엄출판사) 등 2년간 책 6권을 내며 출판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최근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2021년엔 너무 열심히 일하지 않겠다. 스스로를 덜 소진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요즘도 ‘일간 이슬아 시즌 3’는 꼬박꼬박 연재 중이다. 지난해 헤엄출판사를 설립하고 대표를 맡고 있다. 올해 인터뷰집을 펴낼 예정이다.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의 공동 기획 ‘아무튼 시리즈’에도 동참할 계획이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최하나 영화감독

최하나 영화 감독 ⓒ홍수형 기자
최하나 영화 감독 ⓒ홍수형 기자

92년생 최하나 영화감독은 지난해 ‘화제의 신예’였다. 첫 장편 데뷔작 ‘애비규환’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극장가에서도 개봉 2주 만에 누적 관객 2만 명을 돌파했다. 최 감독이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작품으로 쓴 시나리오다.

‘애비규환’은 여러 문제를 안고 사는 요즘 가족 이야기다. 똑 부러지는 주인공 ‘토일(정수정 배우)’이 인상적이다. 최 감독이 원했던 여성 캐릭터다. 지난달 여성신문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 SNS에서 한동안 회자됐다. “한국 사회에서 원하는 여성상이 있지 않나.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하고, 똑똑하되 나보다 똑똑하진 않았으면 좋겠고, 소위 ‘지혜로웠으면’ 좋겠는데 나보다 더 영리하진 않고, 내 비위를 맞춰주고, 사랑스럽고, 애교가 넘치는. 그런 요소들과 아주 많이 동떨어진 여성 캐릭터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 컸다.”

과거 ‘한예종 페미니스트’ 일화도 유명하다. 여성이 남성 성기에 찔려 죽는 영화를 찍겠다는 ‘배우 구인’ 전단이 학내에 붙었다. 최 감독은 여성혐오 영화를 찍는 남성 감독을 영화로 찍겠다는 전단을 그 옆에 붙였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최 감독이 말했다. “20대엔 너무 화를 내고 다녔다. 그게 나를 좀먹었다. 좀 관대해져야 더 오래 버티면서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긴 호흡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그가 요즘 어떤 영화를 준비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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