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볼 때면 버릇처럼 잠시 들리는 곳이 있다. ‘스타드 미션(Stads mission)’이라는 중고가게다. 코로나 시대에도 조심스럽게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1주일에 한 번씩 들리는 단골이 되었다. 사실 빈손으로 나올 때가 많다. 그런데도 발길이 닿는 이유는 많다. 말이 중고가게지 골동품 가게에 가깝다. 40~50년 전에 그려진 그림들, 수십 년 전에 나왔을 법한 그릇들, 수동 커피분쇄기 등을 보면서 예전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곤 한다. 60~70년대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그 시대를 눈감고 상상해 보기도 한다. 20~30년 된 책 뿐 만 아니라, 80~100년된 고서들도 자주 눈에 띈다.

중고서점서 발견한 팅스텐의 책
『민주주의의 승리와 위기』

휴일 동안 얼마 전 발견한 고서를 읽고 있다. 허버트 팅스텐(Herbert Tingsten)이 쓴 『민주주의의 승리와 위기』라는 제목의 이 책은 세계2차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9년 출판됐다. 1960년대까지 책을 출판할 때 종이를 접은 상태로 제본했기 때문에 독자가 접힌 종이를 직접 갈라야만 읽을 수 있다. 이번에 구입한 책은 전 소유자가 책을 사 놓고 읽어 보지 않았던지 접힌 부분들이 개봉되어 있지 않았다. 한 장 한 장씩 베어 가면서 읽는 재미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기대와 흥분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기 직전까지 전개된 민주주의의 발전을 서술한다. 처음 민주주의가 싹튼 영국의 명예혁명부터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그리고 독일의 바이마르 정권이 히틀러에게 정권이 넘겨져 민주주의가 붕괴되는 모습까지 그려내고 있다. 팅스텐은 1920년대 미국과 영국,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유럽 거의 모든 국가들을 체험하면서 직접 목격하고 인터뷰한 다양한 지도자와 학자, 그리고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책에서 팅스텐은 민주주의는 전쟁과 분쟁과 같은 고난한 위기와 난관을 거쳐 발전해 왔다고 적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는 무수한 좌절과 고난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온 불사조와 같은 제도라고 서술한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지만, 왕권과 민권, 특권층과 저소득층, 지주와 노동자 등의 다양한 갈등관계가 결국 민주주의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갔지만, 조금씩 제도화와 민권화가 진행되면서 다원주의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팅스텐이 꼽은 스웨덴 민주주의 
성공 비결은 지도자의 역량 

책의 가장 핵심 요소는 민주주의가 공산주의, 극우주의, 사회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등의 현존하는 모든 이데올로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고 정의하는 대목이다. 절대왕권국가, 황제국가, 군사독재국가, 공산주의국가 들은 민주주의 속 내재하고 숨 쉬는 다른 이데올로기 가치와 정당들을 담아내지 못한다. 팅스텐이 스웨덴 핵심 지식인으로 아직까지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스톡홀름대학 정치학과 교수, 스웨덴 최대 일간신문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 편집장, 그리고 수많은 저서를 출판한 연구자였기 때문이라기 보다 자유민주주의 연구의 한 획을 그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1830년대 미국 전역을 마차를 타고 인터뷰하며 직접 목격한 사회를 서술한 알렉시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영국 헌법을 연구한 월터 베이지헛(Walter Bagehot), 민주주의론을 저술한 제임스 브라이스(James Bryce) 등의 당대 최고의 민주주의 학자들의 연구를 정리하고 1880년대 이후 1940년까지 각국의 지도자의 통치스타일, 정책, 그리고 개인의 정치적 역량과 인성 등을 포괄적으로 연구한 연구자로 기억되고 있다.

80년 전 주장한 팅스텐의 자유민주주의 통치이론은 로데스-티하트(Rhodes & ’t Hart)의 리더쉽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국민소통을 통해 국민에게 살아갈 의미와 힘을 가져다 주고 통합과 화합을 이끈 국가지도자의 능력은 민주주의 생존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하고 있다. 독일의 침공 위협을 이겨내고 전쟁에서 승리한 윈스턴 처칠, 1차대전 이후 영국을 이끈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미국의 노예해방을 이끈 아브라함 링컨,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랭클린 루즈벨트 등은 국가의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 게티스버그 연설과 벽난로 대화 (Fireside chat)라는 대화와 소통의 능력을 발휘한 사람들이다.

팅스텐은 또 다른 저술에서 영국, 미국, 스웨덴이 민주주의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무엇보다도 국가의 위기 속에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고, 헌법정신을 지키고 제도를 수호하며, 국가의 현실과 미래가 불확실할 때 국민 통합을 위해 설득하고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는 지도자의 역량을 가장 성공적인 통치 요소로 든다.

80년 전 팅스텐이 주장한 민주통치론은 2020년대 국가지도자를 뽑을 때도 중요한 기준이 아닐까 한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엿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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