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하지 못해 정책이 산산이 부서졌다던 민주당
180석 거대 여당이 되고서도 야당 탓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안해
노동하는 시민의 죽음과 생존을 위한 투쟁에 너무도 무심한 세상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되어야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을 (집권)했지만 정권을 빼앗기고 나니 우리가 만든 정책 노선이 아주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 정권을 빼앗겨서는 절대 안 된다는 각오를 했다”
“총선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그 힘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를 성공시키고 재집권해 우리의 정책이 완전히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중요한 과제다”
민주당 창당 64주년 행사에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한 말이다. 이후 총선에서 민주당은 180석이라는 유례없는 의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그리고 민주당은 본인이 만든 정책 노선을 남들이 아니라 스스로 산산이 부서트리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산업재해 사망률 1위 국가이다. 십만명당 사망사고율 OECD 평균이 2.6인 것에 반해 한국은 7을 훌쩍 넘기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년 산업재해 통계’에 의하면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 사망자와 질병 사망자의 총합은 2천 142명이다. 단순 계산만으로 매일 6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산재사망률의 무서움은 산업재해율에 비해 극단적으로 높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노동현장에서 죽을 정도의 사고가 아니면 기업에 의해 감춰지는 산업재해가 많다는 반증이다.
기업이 산재를 감추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산재를 신고하는 경우 작업환경비용과 과태료를 내야하고, 건설업체는 국가계약을 할 때 감점 요인이다. 원청에게 하청을 받는 회사의 경우 심하게는 재계약 자체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렇게 산재를 감춘 것이 적발되더라도 과태료로 징수되는 금액은 1,000만원이 전부이고, 최초 1회는 300만원 밖에 안 되니 기업은 아무 두려움 없이 사건을 왜곡하고 조작한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일을 한다는 것은 과장이 아닌 현실이다.
노동계를 포함한 시민사회는 줄기차게 이런 악습이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불법을 조장하는 정부의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지금 현재 국회 정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이어가며 제정을 촉구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그 흐름의 일환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내용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오히려 이런 내용도 담고 있지 않고서 어떻게 노동현장의 안전을 지키려고 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길 수준이다.
기업의 조직문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 법인, 사업주, 경영책임자, 정부 책임자를 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액도 유효한 수준으로 늘여야 한다는 이 법을 두고 거대 여당은 관계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미적대고 있다.
성탄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농성장을 찾아 국민의힘당이 협조하지 않는 것이 법안 처리가 늦어지는 이유라며 우선 단식을 풀어달라는 요청을 했다. 지금까지 민주당이 원하는 법은 마음대로 통과시켰으면서 유독 이 법은 야당의 동의를 얻어야 하냐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의 말에 김 원내대표가 제대로 답도 못하고 부랴부랴 자리를 뜨기도 했다.
당정협의체 절충안을 보면 집권여당이 노동현장에 대해서 가지는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중대재해 발생의 책임자에서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빠졌고, 징벌적 손해 배상액도 ‘손해액의 5배 이상’에서 ‘손해액의 5배 이내’로 축소됐다. 이것을 과연 절충안이라고 부르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의문이 든다. 아니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에 절충안을 만들어 협상 하겠다는 그 발상이 괴이하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2019년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우리가 조국이다’를 외치는 수십만의 사람들로 서초동이 가득했었다. ‘검찰개혁 촛불문화제’라는 이름으로 불리운 집회에 전국 방방곳곳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아이 손을 붙잡고 부산, 광주에서 올라온 시민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서초동과 여의도를 오가며 시민들은 적폐세력으로부터 한국 사회의 정의를 지키겠다며 아스팔트의 차가운 기운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윤석열 검찰총장은 여권 지지층에게 절대악이 됐다. 검찰개혁은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완수해야하는 국정 제1순위가 됐다.
비슷한 시기 광화문에서는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1주기 추모 집회가 있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불의의 사고로 생을 다한 故 김용균 씨를 기리고, 이 땅에 또 다른 김용균이 나오지 않도록 노동 관련 제도의 개선을 촉구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이날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의 머릿수는 서초동 집회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적었다. 주최측 추산 2000명이었으니 많은 참여가 있었다고는 할 수 없겠다.
노동하는 시민의 죽음과 생존을 위한 투쟁에 너무도 무심한 세상이다. 매일같이 일터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그 죽음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내일이 아닌듯 보고만 있을 뿐이다. 정의니 공정이니 민주니 하는 큰 이야기에만 매달리는 사이 LG 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모조리 해고되고, 김진숙 지도는 원직복직을 위해 먼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농성장에 도시락 하나 넣어주기 위해 몸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해가 바뀌어도 깨지 않는 악몽처럼 변함없다.
신기득권과 구기득권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것이 자본과의 관계이다. 신기득권들이 자본을 상대로 했던 그들의 개혁적인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도 구기득권들은 비난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야당을 비난하고, 야당은 침묵으로 자본의 이익을 지키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자본을 중심에 두고 자기들끼리의 정쟁을 벌여도 팬덤 정치에 빠진 시민들은 자신들의 목이 조여지는 지도 모르고 맹목적인 지지를 민주 시민의 덕목이라 여기고 있다.
조국과 추미애, 윤석열 등이 벌이는 기득권 투쟁의 드라마가 방영되는 와중 우리 발밑은 꺼져가고 있다. 나의 안위에만 신경쓰고 다른 시민들의 안전과 생존을 위한 투쟁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는 동안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해체되고 있다. 노동하는 시민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가 지금 그렇게 우리의 미래를 죽이는 일에 스스로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깨닫고 멈춰야 한다.
우리는 모두 노동하는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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