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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만 해도 10월 24일은 노는 날이었다. 10월 1일 국군의 날, 10월 3일 개천절, 10월 9일 한글날에 이어 또 빨간 날이었으니, 정말 월급쟁이들이 10월 한 달 보고 일 년 산다는 말이 빈 말은 아니었다.

10월 24일이 무슨 날이냐고? '유엔의 날', '국제연합일'이다. 유엔에 가입도 못한 나라 주제에 국제연합일을 공휴일로 정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아마 그때 우리 나라 사람에게는 유엔이 엄청난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은 유엔의 참전결정으로 '북괴의 마수'로부터 지켜질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때 유엔 기념탑도 세웠고, 심지어 유엔성냥(팔각성냥)까지 등장했다. 분위기가 이랬으니, 맥아더 동상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심지어 어느 지방의 굿에는 맥아더 그림이 그려져 있단다. 무속의 신으로까지 추앙된 것이다.

유엔이 우리의 삶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면서 새로 생긴, 여성의 직업은? 아마 가장 대표적인 것은 '양공주', '양색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신체건강한 젊은 남성들로 이루어진 철저한 소비집단이며, 강압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공격성으로 해소하며 살아가는 집단인 군대와, 전쟁으로 생존의 근거를 잃은 한국 여성들은 이렇게 매춘으로 만나게 된다.

이전에도 매춘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는 매춘, 게다가 당시로서는 매우 생경하기 이를 데 없는 백인·흑인 대상의 매춘이란,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또한 그것은 단순한 매춘을 넘어서서, 미군의 문화를 흡수하여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배출하는 통로의 구실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1959년 안다성이 부른 이 노래는 이러한 충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1. 그날 밤 극장 앞에 그 역전 캬바레에서 / 보았다는 그 소문이 들리는 순희 / 석유불 등잔 밑에 밤을 새면서 / 실패 감던 순희가 / 다홍치마 순희가 / 이름조차 에레나로 달라진 순희 순희 / 오늘 밤도 파티에서 춤을 추더라

2. 그 빛깔 드레스에 그 보석 귀걸이에다 / 목이 메어 항구에서 운다는 순희 / 시집 간 열아홉 살 꿈을 꾸면서 / 피난 왔던 순희가 / 피난 왔던 순희가 / 말소리도 이상하게 달라진 순희 순희 / 오늘 밤도 파티에서 웃고 있더라

안다성 <에레나가 된 순희>(손로원 작사, 한복남 작곡)

1절의 등잔 밑에서 실패 감던 다홍치마 순희와 캬바레에서 춤을 추는 에레나의 선명한 대비로 시작하여, 2절에서 피난 와 양공주가 되어 버린 그 시대 여자의 내력을 보여주어 더 가슴 아프게 한다. 화려한 드레스와 목 놓아 우는 모습, 파티에서 웃는 모습의 대비도 아주 효과적이다.

이 노래의 인기 때문이었을까. 이후 우리 대중가요에서 양공주의 이름은 모두 '에레나'이다. 1950년대 김정애의 <앵두나무 처녀>에서도 '물동이 호매 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서울에 올라온 처녀의 종말이 '에레나'이며, 기지촌 양공주의 딸임이 분명해 보이는 혼혈아 가수 인순이(그것도 흑인 혼혈이었으니 그 고통이야 오죽했을까)가 야심차게 내놓은 1980년대의 컨셉음반 제목이 {에레나라 불리운 여인}이었다.

순희(혹은 순이)가 순박한 시골처녀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굳어져온 것처럼, 에레나의 함의도 이제 거의 굳어져 버렸다.

좀더 눈여겨 볼 일은, 이 노래의 음악이 탱고라는 것이다. 안다성은 <사랑이 메아리 칠 때> 등 당시로서는 매우 세련된(그것은 서양풍이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이다)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였다.

이 노래는 한편으로는 당시 사회와 인간에 대한 뼈아픈 형상화임은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 미군 캬바레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화려하고 향락적인 냄새를 유혹적으로 풍겨내면서 수용자를 끌어들인다.

미국 대중문화가 떨쳐버릴 수 없게 매혹적이면서도, 머리와 가슴으로 도저히 이를 긍정할 수 없었던 당시 대중들의 양면성이 잘 드러난다. 유엔 안보리의 이라크 결의안이 가결된 지금 이 노래를 듣는 마음이 참 묘하다.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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