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세상, ‘손잡고 기댈 언니’ 찾아나선 여성들
불안한 세상, ‘손잡고 기댈 언니’ 찾아나선 여성들
  • 최현지 기자
  • 승인 2021.01.05 13:54
  • 수정 2021-01-12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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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언 문학평론가, 창작과비평 2020 겨울호
‘우리, 살아 있는 언니들의 시’ 평론 게재
“페미니즘 영향으로 ‘여성들의 연결과 연대’ 말하는 시 늘어
개인이 겪는 차별·폭력 고발 넘어
현실 바꾸기 위한 새로운 돌봄·관계에 주목”
양경언 평론가가 창비 2020 겨울호에서 언급한 시집 4권
양경언 평론가가 '창작과비평' 2020 겨울호 특집에서 언급한 시집 4권 ⓒ문학동네, 창비, 현대문학

‘여성들의 연결과 연대’. 최근 한국 문학에서 눈에 띄는 경향이다. 여성이 겪는 차별·폭력 고발을 넘어,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면서 부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각자의 역할을 고민하는 서사가 늘고 있다.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지난달 출간된 ‘창작과비평’ 2020 겨울호 ‘우리, 살아 있는 언니들의 시’ 특집기획에서 이러한 경향을 소개했다. 양 평론가는 2011년 『현대문학』에 평론을 발표하며 비평 활동을 시작했으며 ‘#문단_내_성폭력’ 운동 때 적극적으로 연대했다. 2019년 첫 번째 평론집 『안녕을 묻는 방식』을 펴낸 바 있다.

양 평론가가 말하는 ‘언니’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존재이자, 사회의 차별과 억압을 겪고 저항하는 동료 시민이다. “사전적 의미의 성별 구분, 생물학적 위계를 떠나 먼저 경험을 한 자로서 뒤따르는 이가 편하게 지혜를 구할 수 있으면서도, 서로의 성장을 도모하는 존재”다. 최근 주목받은 여러 문화예술 작품에도 ‘언니’가 등장한다. 영화 ‘벌새’(김보라 감독, 2019)에서 10대 소녀인 주인공 ‘은희’가 한문학원 선생님인 ‘영지’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는 모습이 그 예다.

영화 「벌새」에서 주인공 '은희'와 관계 맺는 한문선생님 '영지'는 삶을 살아갈 힘을 주는 '언니' 같은 존재다. ⓒ(주)엣나인필름
영화 「벌새」에서 주인공 '은희'와 관계 맺는 한문선생님 '영지'는 삶을 살아갈 힘을 주는 '언니' 같은 존재다. ⓒ(주)엣나인필름

 

“페미니즘 영향으로 ‘여성들의 연결과 연대’ 말하는 시 늘어”

양 평론가는 ‘함께 살아 있는 것’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여성들의 모습이 형상화된 시 작품들을 제시했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억압된 여성들, 여성혐오 범죄로 인해 희생당한 여성들을 추모하는 또 다른 여성들의 모습과 더불어 다시금 함께 손잡고 광장을 가로지르는 여성들의 모습이 시 안에 그려진다.

정다연 시집 『내가 내 심장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까』(현대문학, 2019)에 수록된 몇몇 작품에서는 여성들의 시위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가 눈에 띈다. 수록작 중 하나인 「검은 거리의 어깨들」에는 광장에 모인 여성들의 무리에 섞여 그들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함께 내고자 하는 화자가 등장한다. 

"한낮의 웃음, 한낮의 데이트, 한낮의 바리케이드, 바리케이드 안의 검고 검은 여자들 // 이상했지 앞에 서 있는 처음 본 여잔 그침이 없다 아직 아무것도 외치지 않았는데 얼굴을 반쯤 가린 검은 마스크는 외침보다 먼저 젖는다 눈이 가장 먼저 젖고, 눈가를 닦는 손과 소매가 젖고, 닦지 못한 것이 흘러 마스크를 적신다 투명을 먹고 더 검게 // 눈이 마침내 적셔지기 위해, 그 이전에 눈이 견딘 것을 생각한다 (...) 오늘은 최대한으로 검정을 껴입을 것 검정을 자랑하고 뽐낼 것" (정다연, 「검은 거리의 어깨들」 중에서)

양 평론가에 따르면, 이 시에서 화자는 "검고 검은 여자들"의 모습을 통해 감화된다. 이들은 여성혐오 범죄로 인해 희생된 피해자를 애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시위대를 연상시킨다. 화자는 그들과 나란히 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다. 화자가 의지하고 연결되고자 하는 '언니들'의 모습이다. 

주민현 시집 『킬트, 그리고 퀼트』(문학동네, 2020)에서도 자신이 연결되고자 하는 관계를 찾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여성의 모습이 드러난다. 「광장과 생각」에는 골목이 연결되며 만들어지는 광장을 걷는 화자가 혼돈 속에서 "신"으로 표상되는 누군가를 마주치는 순간을 그린다.  

"생각은 뻗어나가고 어디로나 / 연결된다는 건 골목의 좋은 점 (...) 광장 바깥으로 독재자를 위한 피켓을 든 / 동성애 반대, 낙태 금지, 십자가를 든 / 사람들이 지나가고 // 우리는 잠깐 수많은 인파 속에서 / 윙크하며 지나가는 신을 본 것  같아," (주민현, 「광장과 생각」 중에서)

김복희 시집 『희망은 사랑을 한다』(문학동네, 2020)와 김현 시집 『호시절』(창비, 2020) 속 작품에서도 '언니'라는 존재가 드러난다. 김복희의 시에는 가부장제 속 여성 억압을 거부하는 의사 표시를 하고, 과거의 단순한 친족관계를 넘어서 자신이 연결되고자 하는 '언니'를 탐색하는 화자가 등장한다. 김현의 시에는 부모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확인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 있는 것"이란 무슨 의미인지 고찰하는 화자가 등장한다. 

"저는 여성이자 성소수자인데 / 제 인권을 반으로 가를 수 있습니까? // 반으로 갈라진 것을 보면 소금을 뿌렸다 // 상하지 말고 살아 / 언니가 말했다" (김현, 「광장과 생각」 중에서)

 

개인이 겪는 차별·폭력 고발 넘어
현실 바꾸기 위한 새로운 돌봄·관계에 주목

양 평론가는 페미니즘 운동이 고립된 개인을 재인식하는 데서 더 나아가 새로운 ‘돌봄’과 ‘관계’를 이야기하고 연결하는 여성들이 2016년 이후 더욱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언니’의 심정으로 움직인 여성들은 (...) 폭력과 차별을 양산하는 구조에 질문을 던지면서 권력의 작동 방식을 건드리는 정치적 주체”다.

이어서 “‘언니’의 심정으로 다른 이와 연결되는 일은 그 단어가 주는 친근함에 비해 만만하지 않다. 이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어떤 삶을 만들어갈지 자신의 책임과 몫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가운데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양 평론가는 ‘살아 있는’이라는 제목을 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금 살아 있는 이들을 ‘살아남은’ ‘생존자’라고만 명명하는 순간, 계속해서 붙잡고 있어야 할 ‘어떻게 살아 있을까’라는 질문은 희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 어떻게 살아 있을까. 이 질문은 시의 손이 나란히 닿아 있는 곳에서, 혹은 계속해서 닿아 있는 곳에서 일으켜진 유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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