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과 함께하는 여성신문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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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로소 이 땅에 나무 한 그루 싹을 틔웠습니다. 오천년간 이 나라 여성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나무, 수십년간 뜸을 들이고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이 나무가 두 팔을 벌리고 대지 위에 섰습니다. 이 나무가 자라 제 힘으로 서기까지는 먼저 우리 여성들의 관심과 정성과 사랑이, 아니 단합된 힘이 필요합니다.

남자를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주의 축을 옮기는 힘, 그것은 오직 '자매애'이기 때문입니다.>

1988년 10월 28일 여성신문 제 0호 1면에 '자매애는 강하다'라는 제목의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쓰여 있다. '어느 개인이나 특정 시대의 것이 아닌, 여자의 것만도 남자의 것만도 아닌, 모든 사람들의 것'인 여성신문을 함께 만들자는 따뜻한 제언이 지켜진 지 15년.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약속을 지켜왔던 여성신문의 설립자 이계경(53) 전 사장을 만났다.

- 여성신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립 초기 얘기를 해주세요.

“여성신문의 설립 초기는 1985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85년 여성사회연구회라는 모임에서 출발했는데 그때는 격주간 무가지로 만들었죠. 노태우 정권 시절 언론규제정책에 묶여 정기간행물로 등록되지 않았습니다. 3년 동안 충분히 실습을 한 셈이죠. 그리고 88년 민주화의 물결로 뒤늦게나마 전국 각지에서 모여진 주식을 기반으로 88년 12월 2일 주간 <여성신문>을 창간했습니다. 비슷한 때에 국민일보가 창간해 함께 가판대에 올랐는데 국민일보보다 여성신문이 더 많이 팔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여성신문 창간은 큰 반향을 일으켰죠.”

- 여성신문이란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85년 처음 무가지로 여성신문을 만들 때 우리나라에 이미 여성신문이라는 것이 있었지요. 1947년에 발행된 <여성신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20∼30년대에 나혜석, 윤심덕 등 개화기 여성들의 활동이 활발했고 47년에는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신문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러나 금방 폐간되고 말았죠. 예전의 여성신문을 찾은 것은 우리의 뿌리가 선배들에게서 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보지 않고 현재만 바라보면 답습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여성신문은 여성 선배들의 역사를 이어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즉 88년의 여성신문은 85년이 시작이고 그 배경은 74년 현대적 여성운동의 실천적인 맥이라 할 수 있으며 언론에서는 47년에 발간된 여성신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여성신문은 오래도록 경영적인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처음 위기를 맞은 때가 언제인가요.

“초기 모금액을 다 썼을 때입니다.(웃음) 준비호부터 시작했으니 창간하고 6개월부터 경영상 어려움을 겪었지요. 정기구독자나 광고를 기대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여성신문이 여성문제 즉 남녀차별에 대한 의식을 정확히 지적한다는 명분은 확실했지만 주식회사로써 경영을 해야 했습니다. 이게 항상 딜레마였죠. 특히 80년대는 기업논리를 갖고 운영할 만큼 성숙하지도 않았고 기반 자체가 없었습니다. 기업논리가 있었다면 오히려 여성신문을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 경영 정상화의 비전을 제시하라는 요구도 많이 받았고 지식인 신문이라는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 지금까지 여성신문이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는데 혹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사업의 아쉬움이라면 평등부부상, 문학상, 여성인력 활용전 등 마무리를 짓지 못한 여러 사업들입니다. 명분을 앞세운 사업을 하다보니 경영상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좋은 문화 가꾸기'는 10년간 진행했고 그 결정판이 남이섬에 건립하는 노래박물관입니다. 욕심이라면 여성신문을 이어가는 후배들이 여성신문의 자료를 축적해 여성정보사업을 펼쳤으면 하고,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주간 여성신문을 세계 여성운동의 주춧돌로 삼아 홍보하고 세계 여성과 네트워크를 형성했으면 합니다. 또한 남성들이 여성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만들 수 있는 '젠더센서티브(GS) 리더'포럼을 만드는 것입니다.”

- 여성신문의 대표직을 떠난 소감과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아쉽겠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정말 홀가분합니다. 그동안 부담스러웠고 무척 힘들었습니다. 후배들에게는 본인이 갖고 있는 권리가 태어나면서 당연히 이뤄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배들이 노력하고 바꿨기 때문에 이 정도로 될 수 있었듯이 후배들도 최소한의 책임, 사회에 환원하는 마음가짐이 있었으면 합니다. 적은 돈이라도 여성단체나 여성신문 등 여성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일하는 곳에 기부하거나 호주제 폐지 등에 작은 엽서라도 보내는 등 사회와 자신을 잇는 끈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동김성혜 기자dong@womennews.co.kr

여성신문이 태어나기까지

여성사회연구회는 1974년 크리스찬아카데미 여성사회교육에 참가했던 여성들이 만든 모임으로 자체 회원들을 대상으로 3년여간 격주간지 여성신문을 만들었다.

이후 여성언론매체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여성신문은 88년 5월 초 신문사 등록필증을 받고 창간 작업을 위한 자본금을 모금했다. 모금 과정에서 신문이 한 개인이나 단체의 것이 아닌 한 뜻을 가진 공동체의 것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주식회사로 만들 것을 결정했다.

준비위원회가 결성되고 전국적인 모금을 시작한 지 3개월만인 88년 8월 18일 2억원 모금액 중 1억3000여만원을 모으고 781명의 발기인들이 발기인 대회를 갖게 됐다.

그해 10월 14일 주식회사 설립 법원등기를 마치고 12월 2일 역사적인 창간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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