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가 ‘인싸 놀이’ 된 초등교실...“페미니즘 교육 절실해”
디지털 성범죄가 ‘인싸 놀이’ 된 초등교실...“페미니즘 교육 절실해”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0.12.27 14:08
  • 수정 2020-12-27 14: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중고 내 불법촬영·10대 가해자 매년 ↑
교사들 “초등학교도 안전지대 아냐...
불법촬영·성희롱을 놀이문화로 여기고
만만한 여성·소수자 노리는 경향 뚜렷”
방관·침묵하거나 개입 꺼리는 교사도
가해자 교육 최대 15시간 그쳐 효과 의문
초등학교는 디지털 성범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Getty Images
초등학교는 디지털 성범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Getty Images

2019년 초 인천 모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은 페이스북 메시지 단체방에서 ‘야짤’을 공유했다. 소위 ‘일진’들의 대화방이었다. 초대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방에선 성적인 장면이나 민감한 부위를 찍은 사진과 영상, 불법촬영물·음란물 공유 사이트, 딥페이크 영상이 별것 아닌 듯 오갔다. 교사건 학생이건 적나라한 외모 평가와 성적인 대상으로 소비됐다. ‘XX 따먹고 싶다’ 등 성희롱 발언도 나왔다.

한 여학생이 담임인 H교사에게 제보하면서 이 방의 존재가 처음 드러났다. 알고 보니 하나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들이 한데 모인 대화방도 있었다. 여기선 더욱 심각한 수위의 발언이 오갔다.

초등학교는 디지털 성범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서울 강남 지역 S 초등교사도 비슷한 사례를 들려줬다. “6학년 아이들 사이엔 ‘좋은 거 많이 보여주는 애’로 소문난 남학생이 있어요. 5~6학년들끼리 ‘변태 영상을 공유하는 단톡방’이 있다고 들었어요. 최근엔 여러 남학생이 한 남학생을 붙잡고 스마트폰으로 ‘야짤’을 보도록 강요한 집단 괴롭힘 사건도 있었죠.” 광주광역시에서 일하는 D 초등교사도 “여자 교감의 얼굴을 포르노 이미지에 합성해 메신저에서 이모티콘처럼 공유하고 조롱하던 6학년 남학생들 때문에 학교가 뒤집힌 사건”을 들려줬다. 

ⓒ이세아 기자
ⓒ이세아 기자

 

초중고 내 불법촬영·10대 가해자 매년 ↑
교사들 “초등학교도 안전지대 아냐...
불법촬영·성희롱을 놀이문화로 여기고
만만한 여성·소수자 노리는 경향 뚜렷”

10대 디지털 성범죄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경찰청 ‘최근 4년간 학교 내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학교 밖 범죄까지 합쳐 불법촬영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19세 이하 청소년은 2015년 411명(10.4%), 2016년 601명(13.4%), 2017년 817명(15%), 2018년 885명(16.1%)이었다. 초중고 내에서 불법촬영 범죄가 발생하는 일도 늘었다. 2015년 77건, 2016년 86건, 2017년 115건, 2018년 173건(2019년은 집계중)을 기록했다. 최신 통계가 내년 1월 나온다. 교육부는 지난 10월까지 전국 초등 4학년부터 고등 2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와 가해 경험 여부’를 전수 조사해 집계 중이다.

요즘 초등 고학년 대부분은 스마트폰 등 개인 모바일 기기를 갖고 등교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늘어 더 많은 초등학생들이 모바일을 쓰게 됐다. 스크린 너머의 교사가 제대로 실태를 파악하거나 제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교실 내 성폭력이 자연스레 온라인으로 뻗어 나가는 배경이다. 유튜브나 웹툰 연재 플랫폼 등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왜곡된 성 관념을 담은 온라인 컨텐츠도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건 “많은 초등학생이 디지털 성범죄를 ‘인싸’ 문화, 잘나가는 아이들의 놀이문화로 여긴다”는 점이다. 이런 학생들은 여학생이든 여교사든 만만한 여성과 소수자를 희생양 삼는 경향이 뚜렷하다. H교사는 “정도의 차이만 있지 성인들의 범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앙 기모찌’가 왜 혐오표현인지 애들이 알면 안 쓸 줄 알았어요.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내가 이렇게 성적 지식이 많다’며 뽐내요. 소위 잘나가는 남학생들들일수록 혐오표현이나 성폭력을 ‘쿨함’으로 소비해요. 여학생들이 적극 동참할 때도 있어요. 누가 문제 제기하면 ‘그냥 남자들끼리 노는 건데 왜 그러냐’며 변호하기도 하고요.”

여성 교사들은 이 문제에 더 민감한 편이다. 특히 2030 젊은 여성 교사들에게 디지털 성범죄는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는 절박한 현실이다.

“‘n번방’ 사건 이후로 많은 교사들이 디지털 성범죄는 내게도 닥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반 학생 중 가해자나 피해자가 있을 수 있는 거죠.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꽤 많은 걸 알아요. 성에 관한 잘못된 개념이나 인식을 갖고 있을 수 있고요. 여성을 보호할 방법을 찾기보다 아이들이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제대로 교육해야죠.” 초등교사인 김홍선 전교조 제주지부 사무처장의 말이다.

교사들은 어릴 때부터 경각심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생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전조증상’이 보인다. “애들을 모아놓고 ‘패드립’이나 음담패설을 하는 학생, ‘야짤’을 집중적으로 공유하는 학생이 눈에 띌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왜 그게 문제인지 정확하게 지적하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야죠.”(H교사)

ⓒPixabay, 이세아 기자
ⓒPixabay, 이세아 기자

 

방관·침묵하거나 개입 꺼리는 교사도
가해자 교육도 최대 15시간 그쳐 효과 의문

그러나 모든 교사가 같은 마음은 아니다. 방관하거나 침묵하고, ‘애들 사생활’이라며 개입을 꺼리기도 한다. 학교 업무 결정권을 쥔 여성도 소수다. 여교사는 많아도 부장, 교감, 교장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은 급격히 줄어든다. 올해 전국 초중고교(일부사립 제외) 여교사 비중은 71.7%(24만838명)다. 반면 2019 기준 여성 교장은 35.6%(4045명), 여성 교감은 45.1%(4996명)에 불과했다.

“교사들이 가장 교육 수용도가 떨어지는 집단이라고 하잖아요. 성인지감수성 교육, 성폭력·성매매 예방교육 때마다 ‘아는 얘기를 매년 반복해서 들어야 하니 시간이 아깝다’는 교사들이 많아요. 성폭력 사건 처리 절차를 교육받을 때도 ‘저런 건 극단적인 사례고 내 문제도 아닌데 왜 들어야 하냐’는 분들이 있죠.”(S교사)

“많은 교사들이 이런 민감한 문제를 교실에서 언급하기조차 두려워해요. 아이들끼리 사적으로 나눈 메시지인데 나중에 학부모가 문제제기하면 곤란하다며 개입을 꺼리기도 해요.”(D교사)

“이런 경우 피해 교사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요. 가해자 이전에 학생으로서의 학습권, 아동 인권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학교 안에서도 ‘남자아이들이 그러면서 크는 거 아니냐’, ‘애들의 미래를 생각하라’는 압박이 무척 심해요.”(H교사)

H교사는 학내 성폭력 가해 학생이 받는 교육의 실효성이 의문이라고 했다. “보통 성 관련 사안의 가해 학생들은 평균 8시간, 많아야 15시간 정도의 성인지 감수성 교육 처분을 받아요. 가해 유형, 기간, 정도에 따른 차이도 없어요. 교육 이수 기준도 허술해요. 벌이 과하다면서 ‘벌금 300만원 내고 안 듣고 만다’는 학부모도 있었어요.”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서울, 인천, 경기 학교와 유치원이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에 준하는 원격수업으로 전환된 지난 15일 오전 서울 노원구 화랑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서울, 인천, 경기 학교와 유치원이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에 준하는 원격수업으로 전환된 지난 15일 오전 서울 노원구 화랑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음. ⓒ뉴시스·여성신문

 

“페미니즘·인권 교육” 하겠다더니
교육부 담당자는 7달이나 공석
코로나19로 사회성 기를 기회 빼앗긴 아이들
인권감수성 격차 더 벌어질 우려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2018년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 명 이상이 동의하자, 청와대는 “페미니즘과 인권 교육을 통합해 체계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성별 고정관념 강화’ 비판을 받아온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그대로다. 학내 성희롱·성폭력 실태를 살피고 대응·예방책을 마련해야 할 교육부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은 올해 7개월이나 공석이었다. 2월에 자리가 났지만 “적격자가 없다”며 미루다가 지난 9월 21일에야 채용했다. 공교육이 빠르게 대응하지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교사들은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코로나19로 달라진 학교생활 속에서 이런 문제는 더 자주 발생할지도 모른다. D교사는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처음 ‘관계 맺기’를 배우는 곳이다. 권리, 존중, 차이, 평등 등의 개념을 이해하고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다. 올 한 해 초등학생들은 이 기회를 박탈당했다. 저학년 학생 대부분이 학교에 못 가고 원격수업 중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여학생과 남학생, 온라인상 혐오표현에 익숙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간 인권 감수성이나 성평등 인식의 격차가 상당한데, 코로나19 세대를 기점으로 이러한 격차가 더 심각하게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