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성 사건 처리 지켜보니
피해자 처지 공감한다면
가해 학생 더 엄중히 교육·치료해야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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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 매년 진행하는 ‘대화의 날’. 방과 후 하루에 1명씩 일상의 이야기부터 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눈 지도 수년째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여태까지 참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각종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어린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특히 성희롱, 성추행 등에 노출된 어린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더라도 공식적인 해결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어차피 제가 말해도 바뀌는 건 없잖아요’였다.

여러 아이들이 한 아이에게 3년간 온·오프라인 성희롱, 성추행 피해를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사안이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회부되며 나는 많은 벽에 부딪혀야 했다. 다른 반에 피해 학생이 있다는 말에 해당 담임교사에게 알렸더니, ‘우리 반 아이는 올해 당한 것도 아니라면서 (왜 이야기하냐), 아이들 말만 믿고 그러는 거냐’며 내가 페미니스트라 나서서 문제를 만들고 다닌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가해 학생의 보호자는 ‘남자아이들은 그러면서 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고, 관리자는 ‘선생님의 중립을 지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배 교사는 ‘그래도 가해 학생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피해 학생이나 가해 학생이나 똑같은 학생이다’라는 말을 했다. 어디에도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지지는 없었다. 학생의 미래를 생각하라는데, 강조되는 미래는 가해자의 미래뿐이었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진행되면 담임교사는 피해, 가해 학생에 대한 평소 생활 모습을 서술하고 가해 학생 처분에 관한 ‘선처를 호소하는’ 서류를 내야 한다. 어떤 선배 교사는 온정적으로 피해 학생들을 걱정할 수는 있으나 이게 ‘성폭행’은 아니지 않냐고 했다. 성추행, 성희롱은 ‘경미한 피해’이므로 피해자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알아서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무책임한 발언이었다. 내가 피해자 편에 서지 않으면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쉽게 ‘징징거림’으로만 치부되는 현실이 절망스러웠다. 부장 교사는 오랜 시간 내게 걱정된다고 했는데, ‘가해 학생도 이 과정을 겪으며 많은 반성을 했을 것이고, 생활기록부에도 남는다. (피해 학생을) 낙인찍는 일이 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정말 그런가? 수많은 물음표가 머릿속에 가득 찼다. 아무도 피해자의 입장에 서지 않는 현실에서 내가 ‘그들이 말하는 중립’에 서면 객관적인 것이 되는 것일까? 그 아이는 정말 반성했을까? 생활기록부 기록은 퇴학을 제외하고 모두 졸업과 동시에 사라지는데 낙인이라 할 수 있나? 재발 방지와 피해자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은 왜 중립적이지 못하다고 폄하되는가? 이들의 말과 행동은 정말 교육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인가? 이들이 원하는 미래는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이 사건 가해 학생에게는 교육 조치(가해 학생 조치사항 5호)가 내려졌다. 하지만 처분이 나왔다고 모든 게 ‘잘’ 끝난 것은 아니었다. 2차 가해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가해 학생의 보호자는 ‘우리 아이가 이 과정에서 너무 고생해서 회복이 필요하다’며 받아야 하는 처분을 미루고 해외여행을 보냈다. 가해 학생은 자신의 SNS에 고생한 자신을 위로하는 글과 함께 여행을 자랑했다.

피해 학생들과 보호자들은 ‘이게 정말 반성하는 태도가 맞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가해 학생의 보호자에게 교육을 미루지 말고 받아야 한다고 하자, ‘그냥 벌금 300만원 내고 말겠다’며 남학생 보호자들의 결집을 요구하고 ‘담임교사가 페미니스트라서 남자아이들을 싫어하고, 그래서 우리 아이가 과분한 처벌을 받았다’고 했다. 가해 학생이 수년간, 여러 명에게 상처를 준 행동은 단 이틀, 하루 5시간의 교육으로 퉁쳐졌는데 말이다.

이후 가해 학생과 보호자가 기관에 방문해 교육을 받긴 했다. 하지만 가해 학생 조치사항에는 미비한 점들이 많아 아쉽기만 하다. 사건의 5호 조치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보통 성 관련 사안의 가해 학생들은 평균 8시간 정도의 교육 처분을 받는다. 많이 받으면 15시간이다. 가해 유형이나 기간, 정도에 따른 교육 구분은 없다. 교육 이수에 대한 특별한 기준이나 페널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쁘게 말하자면 그저 가해 학생과 보호자가 그 시간을 견디면 끝나는 일이다. 5호면 꽤 무거운 처분에 해당하는데도 허술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수많은 성 사안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항상 교육이 언급된다. 어른들의 사건을 대하는 태도와 처리 결과를 지켜보며, 이 일을 겪은 학생들은 어떤 메시지를 학습했을지 두렵다.

하지만 단순하게 일부 교사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성인지 감수성은 개인의 문제이자 전체의 문제였다. 성범죄에 관대한 사회와 가정의 문화는 물론, 교육계에도 근본적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교육법에 성평등이 명시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실, 범교과 교육과정 내에 ‘양성평등 교육’이 있지만 대부분 외부 강사의 단타성 교육으로 진행되는 현실, 다양한 배움의 장면과 괴리돼 ‘보건’ 영역에서만 생물학적 성교육이 이뤄지는 현실, 성평등이 교과목 내 파편화되거나 부차적 주제로 다뤄지는 현실, 교사가 성평등 교육에 의지가 있어도 교사 보호 장치가 미비해 민원이 들어오면 교육을 그만둬야 하는 현실,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나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논의가 교육의 중심주제로 언급되지 않는 현실 등, 우리 삶을 둘러싼 많은 부분을 바꿔나가야 한다.

성평등은 UN의 ‘지속가능한개발목표’ 중 하나이고, 성인지 감수성은 21세기 세계 시민의 주요 역량이라 거창하게 강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사회의 어른들로서 성평등한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적어도 피해자가 ‘괜히 신고했다’고 자신의 목소리를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 피해자의 미래부터 고민하는 어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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