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초대석-리더십탐구]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회장
‘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 좌우명, 남에게 상처 안주려 노력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회장(73)에 대한 주위의 얘기는 한결같다. 온화하다. 소탈하다. 권위적이지 않다. ‘따뜻한 카리스마의 전형, 직장인의 롤모델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그는 누구나 스스럼 없이 대한다. 무엇보다 화를 안낸다. 직원들에게도 자꾸 그러면 나 화 낼 거야가 가장 심각한 표현이라고 할 정도다.

좌우명 또한 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忍日時之忿 免百日之憂, 한때의 분함을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천지만물중 화본야(天地萬物中 和本也, 천지만물 가운데 인화가 기본이다)'라고 한다.

앞의 것은 아버님이 늘 하시던 말씀, 뒤는 입사 후 공장장실에서 본 것입니다. 화 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화는 화를 부를 뿐이지요. 분하고 화 날 때도 꾹 참아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적을 만들지 않은 게 운을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가정과 회사 모두 화합이 첫째인 건 두 말할 필요도 없구요.”

이영관 드레이첨단소재 회장 ⓒ홍수형 기자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회장 ⓒ홍수형 기자

 

평사원 입사해 사표 안쓰고 47년 근무

2년반 회사서 먹고자, 1등 필름 만들어

이 회장의 삶은 직장인에겐 신화에 가깝다. 평사원으로 입사, 47년 간 사표를 안썼다. 회사 이름은 제일합섬, 새한, 도레이새한, 도레이첨단소재로 바뀌었지만 그에겐 계속 같은 회사였고, 21년 넘게 최고경영자로 재임 중이다. 대표이사 사장으로 처음 선임된 1999380억원 적자 회사였던 도레이첨단소재는 지난해 매출 2조4,940억원 , 영업이익 2,258억원의 초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눈부신 성과다.

이 회장은 이같은 성공의 요인으로 모회사인 일본 도레이와의 긴밀한 협력, 도레이첨단소재의 독보적 경쟁력, 노사 신뢰, 상생 경영 및 투명한 기업문화를 꼽는다. ‘기술은 들여오면 우리 것이 된다는 믿음 아래 기술이전과 제품개발에서 도레이와 유기적 협력관계를 이루는 한편 도레이첨단소재만의 기술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의기투합하면 기적을 이룬다는 전제 아래 매월 전직원에게 경영실적을 발표하고, 연초 경영전략회의에 노조 관계자를 동석시켜 이익목표와 달성전략을 함께 짰다. 초과달성 이익의 4분의 1을 직원에게 돌려주는 4분법으로 전사원 콘센서스도 형성했다.

개인적인 비결은 주인의식이라고 털어놨다. “월급쟁이라는 말을 가장 싫어합니다. 무슨 일이든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 재미 있었고,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요. 성과가 나니 일하는 게 즐거웠구요.”

그의 직장생활이 처음부터 꽃길이었던 건 아니다. 1973년 삼성그룹 제일합섬 입사 후 첫 발령지는 경북 구미의 섬유공장 건설현장이었다. 공장을 짓느라 벽돌도 날랐지만 그는 내 업무에선 내가 CEO’라는 생각에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필름 생산부장 시절엔 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필름 기술 도입이 좌절돼 국산화에 나섰어요. 처음엔 불량품이 산처럼 쌓이고 클레임이 쇄도했어요. 해결 못하면 사표를 내겠다고 선언하고 2년반동안 공장에서 먹고 잤어요. 숱한 실패와 시행착오 끝에 일류 필름을 만들어 일본 소니와 마쓰시타에 수출하고 삼성그룹 기술상 금상을 수상했어요. 그새 88서울올림픽이 끝났더군요.”

지난 3월 구미사업장을 방문한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이영관 회장(왼쪽)이 마스크 원자재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도레이첨단소재
이영관 회장(왼쪽)이 지난 3월 구미사업장을 방문한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마스크 원자재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도레이첨단소재

구미공장 직원 800명 이름 다 외워

소통·공정 중시, 퇴직률 3.5% 불과

승진도 늦었다. 입사 15년이면 임원이 되던 시절이었는데 그는 입사 21년만에야 겨우 별(이사)을 달았다. 현장에 있다 보니 이런저런 사고를 책임져야 했던 탓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열심히 구른경험은 인생 후반을 화려하게 만든 거름이 됐다. 현장을 꿰뚫고 있는데다 품질관리의 대가가 된 덕분이다. 임원이 된 지 불과 5년만에 사장이 되고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가 주인의식과 함께 중시하는 건 인본주의와 소통이다. 이 회장의 리더십은 사람 중심에서 시작한다. 구미공장 시절 직원 800명의 이름은 물론 가족들 이름까지 외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직원 경조사도 빠짐없이 챙겼다. 해외 출장 중이면 아내에게 부탁했다고. 요즘도 최근 입사한 사원 외엔 직원들 이름을 대부분 안다고 한다.

사람 이름은 억지로 외우려 한다고 외워지지 않아요. 스킨십과 애정, 관심이 있어야 하고 일로 부딪쳐야 외워집니다.” 그는 또 웬만해선 사람을 내보내지 않는다. 문제가 있으면 직접 면담해서 사정을 듣는다. 도레이첨단소재의 퇴직률은 불과 3.5%선이다.

이 회장의 직원 사랑은 구미 공장 건설본부장 때도 드러났다. 1994~95년 공장을 지을 때 화장실을 특급호텔 수준으로 꾸민 것. 공장 평당 건설비가 150만원이었는데 화장실엔 750만원씩 들였다. 공장 화장실이 지저분한 게 싫었어요. 신라호텔과 똑같이 지으라고 했지요.”

이영관 드레이첨단소재 회장 ⓒ홍수형 기자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회장 ⓒ홍수형 기자

평당 750만원 특급호텔화장실 본따

공장 청결도 급상승,제품 불량률 감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화장실이 반짝반짝해지자 직원들 모두 화장실을 애지중지했다. 공장의 다른 곳들까지 깔끔하게 가꿨다. 환경이 청결해지자 제품 불량률도 줄었다. “공장을 지을 때 일찌감치 자동화· 로봇화· 디지털화에 힘을 쏟았어요. 그 결과 구미공장은 지금도 전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폴리에스터 공장이라고 자부합니다.”

경청과 소통도 이 회장의 장기다. “많은 경영자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아랫사람 말을 잘 안 듣습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를 땐 특히 그렇지요. 저는 잘 듣는 편입니다. 듣다 보면 내 생각이 틀렸거나 현업 사정을 잘 몰랐던 걸 알게 되기도 합니다. 윗사람이 자기 얘기만 하면 소통이 불가능해요. 우리 회사의 경영 포인트는 쌍방향 소통이에요.”

경영철학으로는 혁신, 기회균등, 공헌을 든다. 혁신의 대상은 현장, 개인 업무, 제품, 제도에 이른다. 쌍방 혹은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힘쓰고, 일과 사업에선 동료와 사회, 국가, 나아가 인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지금도 결재할 때 이 세 가지가 들어 있는지 살펴본 다음 사인한다고 한다.

장수CEO의 배경엔 학구적 태도와 빠른 의사결정도 있다. 56세 때 고려대에서 국제경영학 석사. 66세 때 홍익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3월 마스크대란이 발생했을 때 그는 글로벌 기저귀 제조사에 납품하는 기저귀 원료를 마스크 원료로 개발, 즉각 공급해 마스크대란을 해소하고 국민의 안전과 위생 증진에 기여했다. 이 마스크에 쓰인 정전(精電)SMS부직포는 12월 초 정부의 ‘2020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됐다.

일에 대한 마음가짐, 회사일이 아니라 내일이라는 자세가 자부심과 보람을 낳습니다. 향후 성과에도 영향을 미치구요.” 주인의식과 열정, 사람에 대한 사랑이 신뢰를 낳고, 신뢰는 개인과 회사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이 회장의 열정은 현재진행형이다.  

 

도레이첨단소재는...

도레이첨단소재는 필름과 부직포 등 생활밀착형 소재부터 비행기· 낚싯대· 골프채 제조와 의료용 필터에 두루 쓰이는 탄소섬유, 수처리 필터, 전기차 배터리 소재 등을 생산한다. 필름과 부직포는 세계시장 점유율 1위다. 경북 구미와 전북 새만금에 공장, 구미와 서울 강서구에 연구소와 R&D센터가 있다.

이영관 회장은

1947년 대전 출생 홍익대 화학공학과 1973년 삼성그룹 제일합섬 입사 94년 경영기획 담당 이사 9912월 도레이첨단소재 대표이사 사장 △2013년 도레이첨단소재 대표이사 회장 18년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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