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운의 문예사색] 포스트 코로나 시대, 내일의 미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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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운 큐레이터
  • 승인 2020.12.19 08:40
  • 수정 2021-01-05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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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 맞춰 미술 통찰력 발휘
앤디 워홀과 팝아트 중심으로
앤디 워홀 Andy Warhol, $$$, 1981, 종이에 실크스크린 Silkscreen on paper, 35x50cm © PICAPROJECT  (사진=피카프로젝트 제공)
앤디 워홀 Andy Warhol, $$$, 1981, 종이에 실크스크린 Silkscreen on paper, 35x50cm
© PICAPROJECT (사진=피카프로젝트 제공)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는 요즘, 우리가 생각해오던 미래가 훨씬 빨리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나오는 수두룩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동시대’는 늘 빠르게 바뀌며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곧 과거가 되고 현재의 일부분이 되어 버리곤 했다. 오늘날의 사회처럼 미술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변화하고 성장했다. 현재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동시대 미술은 지금까지 미술의 틀을 만들어온 작품과 기법, 공간, 주체(작가)의 재구성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상품의 위력, 차용 등을 인정한 팝아트는 오늘날까지도 네오 팝으로 불리는 작가들 사이에서 널리 참조되고 있다. 앤디 워홀의 작품은 그 당시 충격이었지만 현재로서는 과거요, 그 전위적이었던 성격은 이제 미술사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앤디 워홀이 활동했을 때의 미술사적 배경은 작가의 관념을 표현하는 추상표현주의와 주관적인 예술 태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예술 자체만의 고유성을 획득하려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예술은 여전히 소수 엘리트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중들은 산업 기술의 편리함 덕분에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앤디 워홀은 이러한 시대가 바라는 요구를 탁월한 통찰력으로 간파해 더 노골적으로 세속적인 태도를 취했다. 나아가 계급과 귀족성, 고귀함, 관념성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전의 미술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상업성을 예술의 테두리 안으로 가져왔다. 이는 단순히 앤디 워홀의 작품의 우수성을 논하기 이전에, 예술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미술사에서 앤디 워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가 되었다.

 

《Keith Haring &Yue MinJun × KAWS, Zhou Chunya, Liu Ye, Zhou Tiehai, Jin Nu》, 피카프로젝트 청담본점, 2020 © PICAPROJECT
《Keith Haring &Yue MinJun × KAWS, Zhou Chunya, Liu Ye, Zhou Tiehai, Jin Nu》, 피카프로젝트 청담본점, 2020
© PICAPROJECT (사진=피카프로젝트 제공)

 

그렇다면 왜, 상업성이 예술작품 안에서 인정될 수 있게 환경을 마련한 것이 이토록 중요하고, ‘현대미술의 시초’라고까지 불리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가장 솔직하고 명확히 반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컨템포러리 아트는 동시대의 산물을 시각언어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현재를 보여준다.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와 문화의 평준화를 누리고는 있었지만, 개인의 개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되어 가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앤디 워홀은 당시의 사회 그대로를 비개성적인 태도로 자본주의의 기계처럼 현대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대중매체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방법으로 앤디 워홀은 미국 사회에서 가장 흔한 기성품, 스타, 기삿거리 등을 시각화해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미술의 형태를 주장했다.

앤디 워홀 Andy Warhol, 버니 Bunny, 1980년대 Circa 1980, 시계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lock, 72x52cm
앤디 워홀 Andy Warhol, 버니 Bunny, 1980년대 Circa 1980, 시계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lock, 72x52cm
© PICAPROJECT (사진=피카프로젝트 제공)

 

코로나19로 시작되었던 올 한 해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끝나가고 있다. 무차별적인 바이러스의 습격은 새로움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 팝아트가 탄생되었던 그 시기 역시 산업 기술의 발전과 호황으로 급격한 변화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새로움’은 지금과 묘하게 닮아있다. 그리고 앤디 워홀은 그 당시를 반영하는 거울로서 사회와 일상을 미술과 연결하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열어주었다. 결과적으로 미술품과 상품, 예술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기존 미술의 고정된 의식과 범위를 확장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새로운 언택트 시대를 맞이하면서 국내 미술계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오히려 온라인 세계에만 침잠하다 보니, 삶에서 뭔가가 결핍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 오프라인에서 친밀감을 높이려는 욕구를 가진 사람들도 그만큼 늘어났다. 그리고 미술은 이러한 새로운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세상에 대해 미술이 어떠한 형태와 유형으로 존재할 것인지 깊은 성찰이 그 어느 때부터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할 정도로 깊이 우리의 삶으로 다가왔고, 엄청난 변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미술은 다가올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려 새로운 관념 또는 의식을 형성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참고 문헌>
1. 경지현, 「앤디 워홀의 연구」, 경기대학교 조형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2
2. 안휘경・제시카 체라시,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행성비, 2017, pp.21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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