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박사 ‘살림의 정신은 보살/살림페미니즘’

우리나라 전통신앙에는 아이를 점지해주고, 그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하던 삼신할매가 있었다. 사진은 삼신할매를 모신 경기도 수락산에 위치한 삼신각.
우리나라 전통신앙에는 아이를 점지해주고, 그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하던 삼신할매가 있었다. 사진은 삼신할매를 모신 경기도 수락산에 위치한 삼신각.

 

지난 12월 2일 성평등불교연대 ‘2020 나를 정화하는 불교페미니즘’ 세 번 째 강의는 ‘살림의 정신은 보살/살림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김정희 박사의 온라인(Zoom) 강의가 진행됐다. ‘살림’이 여성들의 가사노동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얼’로서 ‘살림’에 대한 사유와 그 정신의 전승을 보살페미니즘, 살림 페미니즘으로 안내하는 강의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김 박사는 저서 『불교, 여성, 살림』(2011)에서 불교여성주의 관점에서 살림여성주의를 제시했으며, 우리나라 여성사를 유교 가부장제가 지배했던 여성 잔혹사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불교 등의 생태적 삶 안에서 재조명함으로써 오늘의 여성문제의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2013년부터 전남 강진에 기반을 둔 (사)가배울을 설립하고 살림여성주의이자 토종지킴이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원불교 신자인 김 박사는 살림여성주의에 대한 개념을 “이론이 아니라 세계관이며, 원자론적 이원론이 아닌 전일적 세계관이며, 색즉시공 공즉시색, 음양 상보적, 상호 전환적인 역동적 세계관”이라고 설명했다. “눈에 보이는 ‘색(色)’적인 존재인 만물은 고정불변의 실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기 때문에 ‘공(空)’하다는,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호의존적이다”라는 불교의 연기사상에 기초한 사유라 할 수 있다. 

 

살림여성주의는 이론 아닌 세계관

서구의 에코페미니즘과 김 박사가 주장하는 생명페미니즘, 살림페미니즘의 차이는 무엇일까? 김 박사는 생명여성주의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를 주제로 한 자신의 박사학위논문(1998년)에서 서구에서 시작된 에코페미니즘 한계를 느꼈다고 고백하며, 동양철학과 민족문화(굿, 서사/설화, 역사적 기록)에 나타난 여성의 세계관과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생명여성주의’라는 개념을 정립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ᄒᆞᆫ (위대한, 큰) 어머니들, 스승/동양철학(불교·노자·장자)/ 禪이라는 세 가지 영성과 관련된 연구를 하던 중, 불현 듯 ‘살림의 얼’이 곧 불교의 ‘불성’(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이며, 기독교의 ‘christianity’이며, 도교의 ‘도(道)이며, 성리학에서의 ‘태극”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에서는 생명이 그 자체로 존귀하기에 ’살림‘을 기본 사상으로 주장하고 있기에, ‘생명여성주의’를 ‘살림여성주의’로 확장했다고 한다.

김 박사는 ‘살림여성주의자’가 된 개인적인 실존적 배경에 대해 어머니의 죽음과 스승의 권유로 만난 여성학, 그리고 아이를 키울 때 공동육아 활동을 통해 “어떤 세상이어야 여성과 남성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갖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가부장제는 개발, 정복, 독점 등 파괴적 활동을 더욱 가치 있게 여기므로 ‘살림’의 개념은 추락해서 거의 사라졌다고 본다. 그나마 여성 ‘살림’의 흔적이 굿 서사에 남아있는데, 예를 들면 바리데기 설화에서 바리데기는 권력자이자 통치자인 왕이 되기를 거부한다. 이는 아버지 질서에 편입해서 명예남성이 되기보다는 미래에 도래할 어머니 질서를 상징하는 신으로 남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살림’ 발화한어머니들이 미륵보살

김 박사는 성별 위계와 젠더 권력이 존재하는 이 모순의 세계를 논리적·체계적으로 설명해낼 수 있는 단 하나의 거대 이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살림여성주의는 특별한 이론이 아니라 태초에 여성이 생명을 만들고 양육하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온 생명이 소중함을 몸소 실천하던 어머니들의 집단적 깨달음이며, 그 집단적 영성 속에 ‘살림 얼’이 내재하고 있다고 본다. ‘살림’을 발화한 그 어머니들이 바로 미륵보살이고 관세음보살이라고 주장하며, 현대의 파괴와 죽임의 문명을 극복하는 살림의 정언명령으로 “침몰하는 배에서 나는 어떤 구명조끼를 가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김 박사는 “얼이 인도하는 길에서 우리들은 종종 벗어나기도 하지만, 이 얼로 회귀하는 성찰의 끈을 놓치지 않으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길이 보살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조용한 자연과의 전쟁’으로 비유되는 코로나 시대에 “나의 구명조끼는, 이 땅의 기운을 받아 싹이 트고 열매를 맺으며 온 우주를 품고 있는 토종씨앗이다”라며 “누군가 이것을 다음 세대에 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나의 살림의 정언명령은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안겨준 뜻 깊은 시간이었다.

황선미 (사)지혜로운여성 연구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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