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문법

 

이제는 가난의 문법이 바뀌었다.

도시의 가난이란

설비도 갖춰지지 않은 누추한 주거지나 길 위에서 잠드는

비루한 외양의 사람들로만 비추어지지 않는다.

도시사회학 연구자인 소준철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여성 도시 노인의 가난 문제를 현장에서 연구했다. 그의 연구 대상은 길거리에서 재활용품과 폐지, 고물 등을 수집하는 여성 노인들이다. 우리 시대 가난의 상징적 표상인 이들은 어떠한 경로를 거쳐 가난에 이르렀나? 가난의 문법, 가난의 구조는 개인의 노력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들에 이어 저자는 묻는다. 젊은 날에 충분한 저축을 못 한 것, 노후 대비를 못한 것, 자식이 있어도 부모에게 생활비를 댈 능력이 없는 것은 과연 노인들의 잘못인가? 

사회보장제도에서 여러 이유로 탈각된 노인들, 그중에서도 생애 경로와 평균수명 등의 차이로 인해 여성 노인의 빈곤 문제는 더 길고 더 심각하다. 소준철은 가상의 인물 ‘윤영자(실제로 1945년 출생 등록 이름 중 가장 흔했던 여성 이름)’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마치 소설처럼 그녀의 하루를 챕터 삼아 논의를 전개해 간다. ‘윤영자’는 결혼과 3남3녀 출산, 육아부터 가사노동을 거쳐 자녀의 대학 진학과 결혼, 퇴직 및 사업실패, 부모에 대한 금전 요구, 남편의 퇴직과 질병 등 개인적인 차원의 사건사고를 겪었고 사회적으로는 IMF 경제위기, 재개발, 2008년 세계경제위기 등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자산을 잃고 현재 20만원 남짓의 연금과 폐지를 주워 판 돈, 노인일자리사업으로 번 돈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성 노인의 가난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현장 조사를 통해 얻은 자료를 조합해 만든 현실의 인물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 우리가 마주하지 않으려 하는 이 두 가지 두려운 현실에 관해 저자는 치밀한 분석을 해낸다. 제도의 빈틈과 사회적 인식의 사각지대, 도시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 노인을 위한 기초소득 문제, 그리고 존엄하게 늙어갈 권리라는 묵직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초상을 대면하게 될 것이다.

소준철/푸른숲/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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