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교내 외투착용 금지는 인권침해”
지적에도 바뀌지 않는 학교들
교내에선 무조건 겉옷 금지
영하 추위·재킷 착용 등 조건부 허용도
학생들 “불합리한 규칙 사라졌으면”

'교내 외투 착용 제한은 학생들의 건강권,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10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온 이후에도 여전히 학생들은 자유롭게 겉옷을 입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경북 경산 A고등학교는 교내 외투 착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A고 학생들은 영하의 날씨에도 교복만 입어야 한다. 어기면 벌점을 받는다. 서울 성동구 D중학교는 영하로 떨어진 날에만 외투를 입게 한다. 충북 청주 B고등학교는 교복 재킷을 입은 상태에서만 외투를 허용한다. 역시 어기면 벌점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교내에서 학생들의 외투 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지적했지만, 여전히 옛 규정을 요구하는 학교들이 있다. 

학교들은 “한번 정한 규칙을 쉽게 바꿀 수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학생들은 불만이다. “학생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보장에 더 신경 써 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1월 23일 올린 유튜브 영상의 한 장면 ⓒ인권위 유튜브 채널 영상 캡처
국가인권위원회가 11월 23일 올린 유튜브 영상의 한 장면 ⓒ인권위 유튜브 채널 영상 캡처

올해 10월 20일 인권위는 “학교 일과시간에 학생들의 외투 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학생들의 건강권과 복장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일선 학교에 관련 규정을 바꾸라고 권고했다.

실제 학교 현장은 어떨까. 전국 중고등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여전히 교내 외투 착용을 금지하는 학교도,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는 학교들도 있었다. 

 

교내에선 무조건 겉옷 금지

경북 경산 A고등학교는 교내 겉옷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A고 학생 ㄱ씨는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도 수업 시간은 물론 이동 수업 시간, 아침 청소 시간과 점심 시간, 체육 시간에도 외투를 못 입는다”며 교칙에 불만을 표했다.

A고 생활부장은 “학생 몇백 명 중 한둘이 춥다고 해서 교칙을 바꿀 수 없다”며 “무조건 학생 의견을 듣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규칙을 지키는 힘을 길러주는 것도 학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또 “학교에서 생활 규칙을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않는다. 춥다는 학생이 많으면, 학생들이 학생(자치)회를 열고 의논해 규칙을 바꿀 것이다”고 전했다.

 

재킷 착용·영하 추위 등 조건부 허용도

충북 청주 B고등학교는 10월 말부터 교복 재킷을 착용한 후에만 외투 착용을 허용한다. 이를 어긴 학생에게는 ‘생활평가제도’에 따라 벌점을 준다.

B고 학생 김모(18) 씨는 “학교는 ‘교복 착용을 규제하지 않으면 모든 학생이 사복을 입을 것이다’라는데 융통성이 없는 것 같다”며 “11월에 학생 의견을 반영한다고 교복 관련 설문조사를 했는데 아직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B고 학생부장은 “학생이라면 교복을 잘 갖춰 입어야 한다. 학생이 사복을 입으면 외부인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마스크까지 쓰고 다니는 요즘은 더 그렇다”며 “규정상 벌점은 주지만 인권침해는 오해다. 학생의 안전을 위한 일이다. 사복을 마음대로 입게 두면 가정의 경제적 부담도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인권위 사항은 권고 사항일 뿐 학생, 학부모, 교직원이 함께 만든 규정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는 없다”고도 덧붙였다.

울산 C고등학교도 교복 재킷을 착용한 뒤에야 외투를 입도록 지도하고 있다. C고 학생 김모(17) 씨는 “학생들이 불편함을 많이 호소하는데도 학교는 외투 제한 이유를 제대로 알려준 적 없다”며 “학생회의 때 (외투 제한 관련) 얘기가 자주 나오는데도 바뀌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C고 학생부장은 “예외를 허용하면 학생들이 사복을 입게 될 수 있다”며 “학생들의 자기결정권을 고려한다면, 교복 제도 자체가 없어지는 게 맞다”고 밝혔다.

등교하는 학생들 모습.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성동구 D중학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 전까지 외투 착용을 금지하고, 어기면 벌점을 부과했다.

D중 학생 김모(16)씨는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방침이 훨씬 풀려서 외투 착용이 가능하지만 이전에는 12월 초·중반이 돼서야 재킷 없이도 외투를 입게 허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재킷을 손에 들고 가도 벌점을 부과했다”며 “부디 이러한 불합리한 방침이 이제는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여성신문은 D중 학생부장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앞서 여러 학교는 학생들의 교내 외투 착용을 금지하는 이유로 롱패딩을 입고 다니다가 발이 걸려 넘어지는 등 안전사고 우려, 빈부 격차로 인한 위화감 예방 등을 들었다.

그러나 인권위는 “목적 자체는 타당하지만, 외투 착용 금지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학생들의 졸음 예방을 위해서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에 따른 막연한 추정에 불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인권단체 “학생, 통제 대상 아니다”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의 치이즈 활동가는 학교가 학업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기본권에 대해서도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치이즈 활동가는 “기온에 상관없이 자기 몸 상태에 따라 더 춥게 느끼는 사람도 있는데 학생들을 일괄 통제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문제”라며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자율성을 얻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학교는 학생들의 건강이나 복지 등 학업 외 다른 삶의 문제는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며 “학생들은 단순히 공부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살아 숨 쉬는 ‘사람’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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