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이희선 ‘셔틀런’
박채원 ‘그녀의 욕조.’
전온세 ‘이상’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 여성 서사를 담은 영화, 젠더이슈와 성평등 가치를 신선한 시각으로 담아낸 영화, 바로 '여성영화'입니다. [여성영화 사랑법]은 앞으로 여성영화 스트리밍 플랫폼 '퍼플레이(purplay.co.kr)'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성영화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다채로운 매력이 넘치는 여성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셔틀런’ 스틸컷
‘셔틀런’ 스틸컷

 

사랑은 무슨 맛이야? 
-달고 쌉쌀하고 맵고 짜지. 
왜 사랑은 그렇게 가지각색의 맛이야? 
-사랑을 하는 우리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지. 

머릿속의 내가 묻고 답한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는 만큼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다. 어떤 사랑은 달콤하고 또 어떤 사랑은 씁쓸하다. 불같이 매운 사랑이 있는가 하면 눈물 쏙 빠지게 짠 맛도 있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랑도, 혼자만의 사랑도, 질투심에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랑도 존재하겠지. 우리는 그렇게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어나가며 사랑을 한다. 

12월이 되니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몽글몽글해져 사랑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게 된다. 연말의 분위기와 첫눈 소식은 괜히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번엔 사랑을 말하는 영화들을 골라봤다. 여자들이 보여주는 각기 다른 사랑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마음을 뒤흔든다.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해 얼굴에 번지는 미소로, 달리기로, 끝내는 말로써 고백하고, 누군가를 상상하며 몽롱해지는 기분을 꾸밈이나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때로는 질투심에 정신을 놓아버려 관계를 파괴시킨다. 사랑은 참으로 다채로운 형태를 띠고 우리를 거쳐 간다. 이처럼 캐릭터의 다양한 면면과 사랑이라는 감정이 날리는 강렬한 한방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셔틀런’ 스틸컷
‘셔틀런’ 스틸컷

 

선생님 너무 예뻐요
‘셔틀런’(이은경·이희선, 2017)은 사랑에 빠진 13살 소녀 벼리(안다은)의 감정을 셔틀런(왕복달리기)이라는 행위를 통해 순수하고도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벼리에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체육선생님 홍이(안하윤). 벼리는 홍이 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만 때론 더 가까이 다갈 수 없어 답답하고 속상하다.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에서 체력장이 열리고, 벼리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셔틀런 테스트에 임한다. A를 받고도 남을 정도의 기록이지만 계속해서 달리는 벼리. 맥박이 점점 빨라짐을 느끼지만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다. 선생님을 향한 짝사랑을 그만둘 수 없는 것처럼. 결국 쓰러진 벼리는 양호실에 실려 가고, 한참 뒤 눈을 떠보니 옆에는 홍이가 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벼리는 마침내 입을 연다. 

벼리의 조용하지만 저돌적인 사랑은 아련하고 또 아름답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으로 열기 가득한 그의 얼굴은 언젠가 내가 가졌을 얼굴이기에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서툴지만 에두르지 않고 직구로 던지는 사랑 고백의 울림을 맛보고 싶다면 ‘셔틀런’!

 

‘그녀의 욕조.’ 스틸컷
‘그녀의 욕조.’ 스틸컷

 

당신만 기다려요…
‘그녀의 욕조.’(박채원, 2018)는 이상적인 대상에 대한 호기심, 동경 또는 성적 욕망을 매혹적으로 그려냈다. 중학생 여자아이 소정(김주아)은 어머니가 운영하는 목욕탕에서 매일같이 누군가를 기다린다. TV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을 보며 그 사람을 떠올리고 흰 종이 위에 옮긴다.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어느 저녁, 비에 젖은 여자(고현지)가 목욕탕을 찾는다. 소정이 기다리던 사람이다. 여자를 훔쳐보는 소정의 시선과 달뜬 호흡은 보는 이의 숨을 절로 멈추게 한다. 습기 가득한 목욕탕과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한순간 마주친 둘의 눈빛은 그 자체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소정의 욕망은 아슬아슬하고 불안하면서도 무해한 존재가 한 사람만을 열렬하게 바라보는 그 태도는 왠지 모르게 가슴을 쿵쿵 두드린다. 사랑과 동경의 미묘한 경계선을 넘나들며 감수성 풍부한 미성년 여성의 감정선을 대중목욕탕이라는 배경을 이용하여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  

 

‘이상’ 스틸컷
‘이상’ 스틸컷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이상’(전온세, 2017)은 자신의 감정을 어쩌지 못해 비뚤어진 방향으로 표출하고 마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담았다. 고등학생 호정(박규영)은 단짝친구 지은(배기림)을 좋아한다. 하지만 지은의 눈은 같은 반 남학생 준영(정의제)을 향해있다. 지은을 좋아하는 마음만큼 호정의 질투심도 점차 커진다. 지은이 준영과 대화를 나누며 웃을 때, 지은의 관심이 준영에게 쏠려있음을 눈치챌 때, 이야기의 주제가 준영으로 꽉 찰 때마다 호정의 마음은 무너진다. 사랑과 질투로 머리는 점점 어지러워지고 호정은 결국 해선 안 될 일을 저질러버린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서툴기만 했던 그 때,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떠한 확신도 없던 우리가 타인에 대해 처음 느껴본 사랑이란 감정에 어떻게 방황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감독이 밝힌 연출의도를 생각하며 사랑을 처음 경험했을 때를 떠올려본다. 눈이 멀고 정신이 흐려지고, 마음이 벅차오르고, 서운하고, 고독해지고, 쓸쓸해지고. 수백수천가지로 밀려오는 감정들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던 호정을 그래서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호정의 마음을 대변하며 서정적인 감성을 완성시키는 시인 이상의 연애편지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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