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태 등 한국 언론계 성평등 보도 윤리 비평 토론회 개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과 이태원 코로나 사건 속 언론 보도 모니터링
“윤리 강령 수준의 권고로는 개선될 수 없어”
“언론 생태계 구조적 측면 문제적”

n번방 사태 등 한국 언론계 성평등 보도 윤리 비평 토론회가 온라인 생중계로 지난 3일 열렸다. ⓒ여성신문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n번방 사건)을 보도한 기사 상당수가 피해 사례를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가해자의 발언이나 환경을 나열해 동정심을 유발했다는 모니터링 결과가 나왔다. ‘이태원 코로나 사건’에서는 성소수자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동의 없이 발히는 행위)을 하는 보도까지 등장했다. 자극적인 기사를 통해 조회 수를 높여 이윤을 얻는 언론 생태계의 구조적 측면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여성신문은 지난 3일 뉴스통신진흥회 지원을 받아 ‘한국 언론계의 성평등 보도 어떻게 가능한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언론이 성과 젠더 이슈에 대해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지 살피고 성평등 보도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면·비대면 방식을 병행해 진행했다.

여성신문 젠더폴리틱스연구소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과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자 해당 클럽을 ‘게이 클럽’이라고 명명한 사건을 중심으로 모니터링을 진행됐다. 모니터링 결과 발표는 김도해 여성신문 젠더폴리틱스연구소 연구원이 맡았다.

가해자의 죄질을 흐리고 사안에서 벗어난 기사 제목들. ⓒ여성신문
가해자의 죄질을 흐리고 사안에서 벗어난 기사 제목들. ⓒ여성신문

n번방 사건: 피해자, ‘일탈계’ 하거나 유약하거나

‘n번방 사건’은 언론인권센터와 함께 네이버에서 2020년 3월1일부터 5월31일까지 ‘n번방’을 검색해 도출된 주요 언론사 기사 3139건, 포털 언론사 4988건 중 임의로 샘플링해 모니터링했다. n번방 모니터링 지표는 피해자 관련 보도, 범죄묘사 관련 보도로 나누었다.

분석 결과 N번방 사건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언론의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됐다. 첫 번째는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스폰 알바하려고 한 것도 잘못?” “어차피 보여주기 위한 일탈 계정?” 영상물 피해자 2차가해 논란 (**일보 3월28일자) 

[단독] 조주빈 폰엔, 여성 연예인 2명 ‘충성사진’ 있었다 (**일보 4월13일자)

[단독] 조주빈, 1년 뒤 다시 봉사활동 나와 “도청장치 만들자” (**일보 3월24일자)

자료: 여성신문 젠더폴리틱스연구소 성평등 언론 모니터링

김 연구원은 실제 기사 본문에는 피해자에 대한 비난을 비판하는 내용일지라도 검색창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기사 제목에 직접 인용을 하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성범죄 피해자가 ‘일탈계’에 함께 했다는 점에 집중하거나 2차 피해를 유발한 사람의 발언 혹은 영상을 지나치게 묘사해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 번째는 피해자를 수동적이고 유약한 존재로 이미지화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씻을 수 없는’ ‘평생 치유되기 힘든’ 등의 표현을 통해 성범죄 피해를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고 피해자의 이미지를 단편적으로 묘사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수동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활용한 일러스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가해자 관련 보도에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째는 가해자 모습이나 발언, 환경 등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묘사해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문제를 개인화해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게 만드는 것이다. 둘째는 가해자를 악마화하거나 ‘성중독’ ‘사이코패스’로 바라보며 비정상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경우다.

범죄 묘사 관련 보도에서는 ‘포르노’ ‘리벤지 포르노’ ‘몰카’ ‘음란물’ 등의 표현으로 피해 사실을 축소하거나 범죄 사실을 은폐해 성봄죄를 가볍게 바라보게 한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지난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용인 66번째 환자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을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7일 오후 환자가 다녀간 클럽의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5월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용인 66번째 환자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을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7일 오후 환자가 다녀간 클럽의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이태원 사건: 방역 안 지켰으니 ‘아웃팅’ 해도 되나

‘이태원 사건’의 경우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2020년 5월1일부터 6월30일까지 기사에서 ‘코로나 이태원’, ‘코로나 클럽’ 키워드로 검색해 도출된 기사 중 965건을 모니터링 했다. 이태원 사건의 경우 인권보도준칙에 근거해 소수자 지칭 용어 사용과 혐오 표현 사용 여부를 중심으로 모니터링했다.

[단독]이태원 유명클럽에 코로나19확진자 다녀갔다 (**일보 5월7일자)

이태원 게이 클럽 용인 확진자 이어 안양시 남성 양성…누리꾼 “신천지처럼 신분 숨길까 우려 VS 억측” (****투데이 5월7일자)

“진짜뻔뻔하다” 이태원 클럽 사태에 격분한 성소수자들, 역풍맞았다(***리 5월9일자)

자료: 여성신문 젠더폴리틱스연구소 성평등 언론 모니터링

일명 ‘게이클럽’ 관련 기사가 5월7일 당일에만 150건에 달했다. 대부분의 제목과 내용이 ‘게이클럽’을 방문한 확진자로 인해 집단감염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5월7일 이후에도 연일 보도돼 5월 10일까지 3일 동안 약 300여개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혐오 표현도 발견됐다. 특정 개인의 잘못을 성소수자로 확대해 비난을 유도하거나 코로나와 큰 관련이 없음에도 확진자가 나왔다는 이유로 과거의 인터뷰 기사를 재인용해 성소수자들이 비위생적이고 변태적인 문화를 즐긴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는 등 혐오성이 짙은 기사가 보도됐다.

토론자로 나선 김경희 한림대 교수는 “언론사 기자들과 임원들에게 성차별적 표현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n번방 사건이 드러나는데 언론의 역할을 했다.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도록 기자들을 독려해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며 “신문위원회 자율심의 기준에 성평등 보도를 위한 요소를 구체적으로 추가하고 유사언론의 퇴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는 “주요 언론사들의 문화가 전반적으로 개선될 필요성과 데스크의 젠더 감수성 확보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그는 “포털에서 정론지와 구분 없이 검색, 공유되는 유사언론에 대한 제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해당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윤여진 이사는 언론에 피해를 입어 소송을 진행한 한 사례를 들며 언론이 가해자와 마찬가지로 피해자를 도구화하는 태도에 대해 지적했다. 또한 그는 “성차별 보도를 한 언론사의 지원 감축과 같은 강력한 제재와 뉴스 플랫폼 신설 등을 통해 포털의 언론 독점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도해 연구원은 “언론의 2차 피해 저지에 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평등 보도가 잘 이뤄지지 않았으며 윤리 강령 수준의 권고로는 개선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성차별 보도의 근본적 원인으로는 포털과 시민사회, 언론, 광고주가 함께하는 언론 생태계라는 구조적 측면이 있다”며 “시민 사회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언론의 성인지 감수성 교육 및 젠더 전담 기구 설치, 포털의 언론 안정 기반 형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