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셰리 터클은 사람들이 문자와 SNS를 선호하는 이유를 편집 가능성에서 찾았다. 온라인으로 주고받는 텍스트와 이미지는 전화 통화보다 편집하고 수정하기 용이하다. 업로드 전까지, 또는 업로드 이후에도 나를 원하는 대로 표현하고, 고치고, 바꿀 수 있다. ⓒpixabay
사회학자 셰리 터클은 사람들이 문자와 SNS를 선호하는 이유를 편집 가능성에서 찾았다. 온라인으로 주고받는 텍스트와 이미지는 전화 통화보다 편집하고 수정하기 용이하다. 업로드 전까지, 또는 업로드 이후에도 나를 원하는 대로 표현하고, 고치고, 바꿀 수 있다. ⓒpixabay

 

‘줌’은 편집이 쉽다. 온라인 화상수업을 시작할 때, 산뜻한 배경음악 사이로 나를 등장시킬 수 있다. 대강의실의 창백한 침묵 사이로 걸어 내려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교탁 없이도 나를 최대한 가릴 수 있다. 하반신만 편집 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면지와 귤껍질이 뒤섞인 책상도, 담요가 구겨져 있는 소파도 얼마든지 프레임 밖으로 삭제할 수 있다. 줌의 공간은 나의 당황과 두근거림을 학생들과 채 숨기지 못하고 공유하던 교실과는 다르다. 거리두기는 편집을 좀 더 용이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편집되지 않은 오프라인 만남은 때로 당황스러웠다. 줌이 놓친 주름과 호흡, 눈빛과 미세 근육들이 전혀 다른 존재감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편집에 대한 열망은 늘 건재했다. 사회학자 셰리 터클은 사람들이 문자와 SNS를 선호하는 이유를 편집 가능성에서 찾았다. 온라인으로 주고받는 텍스트와 이미지는 전화 통화보다 편집하고 수정하기 용이하다. 업로드 전까지, 또는 업로드 이후에도 나를 원하는 대로 표현하고, 고치고, 바꿀 수 있다. 당대 청년들의 문화를 다루는 교양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왜 전화보다 문자나 메시지를 선호하냐고 물었을 때, 많은 대답은 통제 불가능성과 관련되어 있었다. 전화는 실시간으로 반응해야 해서 사전에 답을 준비할 수 없고, 이미 한 말을 삭제할 수 없다. 어색한 공백에 노출될 수 있으며, 아무 때나 종료할 수 없다. 요약하면, 전화는 나에 대해 오가는 정보를 쉽게 통제할 수 없다. 때론 실수, 즉 너무 많은 정보가 노출된다.

‘인스타’에 올릴 수 있는 삶은
특정 형태로 제한돼 있다

자기 자신도 브랜드처럼 관리해야 하는 시대, 많은 정보가 노출되는 것은 곧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자아 연출은 면접에서만 요구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삶은 특정 형태로 제한되어 있다. ‘청소년은 왜 우울하다고 말하지 못할까’를 연구한 청소년 연구자들은 우울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진다)’라고 말한다. 진지한 이야기, 우울한 이야기, 즉 편집되지 않은 상태는 ‘갑분싸’를 만든다. 그리고 갑분싸는 언제나 ‘유죄’다. 애써 감춰 온 맨얼굴을 드러나게 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인간이 사회적 가면을 쓰고 일상생활에서 삶을 연기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회에서 가면을 쓰고 사는 일은 새롭지 않지만, 가면을 벗는 것이 타인에게 ‘짐’을 지우는 행위라고 청소년들이 해석하는 것은 한편 흥미롭다. 우울을 되도록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인터뷰에서 의견을 밝힌 청소년들은 자신의 우울을 말하는 것은 상대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일이자, 우울을 전시하는 ‘민폐’라고 말했다. 우울은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청소년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상대를 감정적으로 착취하는 것은 분명 지양되어야 할 행위이다. 그러나 개인화된 고립과 침묵이 그 대안이라고 보긴 어렵다.

자소서 쓰는 법·셀카 각도까지
나를 편집하는 법 가르치는 사회

한국 사회는 나를 편집하는 법을 총체적으로, 그리고 다각도로 가르치고 있다. 자소서 쓰는 법부터, 동아리 면접 볼 때의 어투와 표정, 대외홍보용 SNS 관리법과 셀카 각도까지 학교와 가정,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어 해당 내용이 전방위적으로 전수되고 훈련된다. 하지만 의사소통 가능한 형태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매우 드물다. 절대 자신을 표현하지 말고, 드러내지 말라는 으스스한 조언이 금언으로 여겨진다. 자신을 소통 가능하게 표현하는 것은 고도의 지식과 기술이 요구되는 삶의 필수 역량이지만, 교육과정에서는 쉽게 간과된다. 그 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유능해 보이고, 유용해 보이며, 적합해 보이는지 연습하게 한다. 그렇게 친구와의 대화조차 ‘분위기 맞추는 일’이 되고, 나를 드러내며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일은 위험하거나 피곤한 일로 남는다.

흥미로운 것은 편집되지 않은 나에 대한 열망은 언제고 고개를 든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드물지 않게 ‘부계’(부 계정)와 ‘비계’(비공개 계정)를 만든다. 다른 방식으로 편집된, 또는 더 솔직한, 더 편집되지 않는 나를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인간은 그렇게 쉽게 자신을 편집한 채로 둘 수 없다.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진정성 논란에서 보듯이 우리는 편집된 타인도 참기 힘들다. 더욱 풍부한 정보가 주고 받아질 때만, 상호 간의 연대와 유대, 열정과 위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는 여전히 어렵다. 편집하는 법이 아니라 존재하고 확장하는 법은 어디에서 배울 수 있을까?

*줌(Zoom): 온라인 영상회의 프로그램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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