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수 오염·마약성진통제 중독·사이버폭력 등
해결 위한 연구·개발 공로 인정받아
미 타임지 ‘올해의 어린이’ 최초 선정
“과학은 혁신...내가 한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타임지 선정 '올해의 어린이'에 꼽힌 기탄잘리 라오(15). ⒸTIMES
타임지 선정 '올해의 어린이'에 꼽힌 기탄잘리 라오(15). ⒸTIME

매년 ‘올해의 인물’을 선정해온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 처음으로 ‘올해의 어린이(2020 Kid of the Year)’를 선정했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인물에 주목하겠다는 기치 아래 8~16세 사이의 미국 어린이 중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혁신에 기여한 인물을 꼽았다. 후보자 5000여 명 중 콜로라도 덴버 출신 10대 여성 기탄잘리 라오(Gitanjali Rao)가 선정됐다. 그는 누구인가? 

라오는 2005년생, 올해로 15세인 젊은 과학자이자 발명가다. 그는 배우이자 인권운동가인 앤젤리나 졸리와 나눈 타임지 인터뷰에서 식수 오염,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중독, 사이버 폭력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해결하려는 문제들과 사명을 이야기했다. “내가 할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라오는 “언제나 누군가의 얼굴에 미소를 선사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초등학교 2~3학년 시절부터 과학기술을 활용해 사회를 바꿀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10살 무렵, 그는 덴버의 수질 연구소에서 탄소 나노 튜브 센서 기술을 연구하고 싶다고 부모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되물었다. “어디라고?” 

탄소 나노 튜브는 화학적 변화에 매우 민감한 탄소 원자로 만들어진 원통형 분자로, 물속 화학 물질을 탁월하게 감지해낼 수 있다. 라오는 이 기술을 활용해 식수 오염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아무도 하지 않으면 자기가 하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라오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테티스(Tethys)’를 만들어 물속 납 성분 등을 빠르게 감지해낼 수 있도록 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11세의 나이로 ‘미국 최고의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다.

사이버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서비스도 만들었다. 구글 크롬 웹 브라우저와 애플리케이션에서 사용 가능한 ‘카인들리(Kindy)’라는 서비스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사이버 폭력을 초기에 감지한다. 사이버 폭력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하드코딩(데이터를 쉽게 변경할 수 없게 기록하는 것)해 유사 단어와 구절을 감지하게 했다. 처벌이 목적이 아니다. 폭력적인 표현에 대해 사용자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라오는 “나 역시 청소년이기에 다른 청소년들이 이따금 폭언을 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2019년 11월 TED 강연 중인 기탄잘리 라오 ⓒTED.COM 영상 캡처
2019년 11월 TED 강연 중인 기탄잘리 라오 ⓒTED.COM 영상 캡처

라오는 여성이 드문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나는 전형적인 과학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내가 TV에서 보는 모든 과학자들은 더 나이가 많고, 대부분 백인이다. 성별, 나이, 피부색 등에 따라 사람들이 맡은 역할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아 이상하다. 내 목표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만의 도구들을 만들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것으로 변화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나와 같은 사람이 주변에 보이지 않으면 계속해나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로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다면 당신도 할 수 있고,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라오가 ‘혁신 세션’을 운영하는 이유다. 동네 학교들, STEM(과학·기술·공학·수학)기관의 다른 또래 여성들, 전 세계 박물관들, 상하이 국제 청소년 과학기술 그룹, 런던 왕립 공학 아카데미 같은 대규모 기관들과 혁신 워크숍을 진행해왔다. 워크숍이 끝나면 참가자들은 스스로 직접 실천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라오는 “4개월 전 워크숍을 듣고 완성품을 만들었어요. 911(응급전화번호)에 전화할 수 있게 하는 신발이에요” 같은 피드백을 듣게 되면 기쁘다고 말한다.

라오는 우리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우리 세대는 이전에 본 적 없는 많은 문제에 직면한 동시에 오랫동안 존재해온 문제들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전 지구적 팬데믹 상황에 놓여 있지만, 인권 문제도 여전하다. 기후 변화, 기술 도입으로 인한 사이버 폭력 등 우리가 만들어내지 않았지만 이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라오의 입장은 명확하다. 과학이 선한 행위에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라오에 따르면 과학기술은 젊은 세대가 세계를 더 낫게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가 관여하는 모든 것에 과학이 들어있다. 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멋지고, 혁신은 멋지고, 누구든 혁신가가 될 수 있다. 누구든 과학을 할 수 있다.” 

기탄잘리 라오가 연구실에서 찍은 사진. ⒸGitanjaliRao

MIT 테크놀로지 리뷰를 정기 구독하며 영감을 얻는다는 라오는 다른 한편 ‘15세답게’ 팬데믹 시기 집안에 오래 머물며 베이킹을 즐기는 청소년이기도 하다.

타임지는 1927년부터 ‘올해의 남성’을 선정했다가 이후 ‘올해의 인물’로 이름을 변경했다. 작년엔 스웨덴 출신 기후변화 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당시 16세)가 역대 최연소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타임지는 ‘올해의 어린이’를 선정함으로써 ‘미국의 가장 젊은 세대 중 떠오르는 리더들의 지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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