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 2일 기자회견서 국정원 발표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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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적 성찰이라는 주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송두율교수가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사진-민원기기자>

송두율(59) 독일 뮌스터대 교수가 2일 오후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자성적 성찰’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의 행적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기자회견 사회는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가 맡았다.

송 교수는 “국정원 발표가 일부 왜곡·보도되고 있다”며 “노동당원·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없고 충성서약문을 쓰거나 거액의 공작금을 받은 바도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악의 상황인 추방당하는 일은 상상도 하기 싫다”며 “우리 민족의 비판적 성찰자로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강조했다.

“양심적인 학자에서 거물간첩으로 추락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남과 북을 함께 안고, 남북의 화해를 향한 디딤돌이 되려 했던 노력이 참으로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첫 포문을 연 송 교수는 “남북을 동시에 사랑하고 비판하려는 내 삶과 철학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게 비친 제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있는 부분에 심각하게 자성하고 있다”며 7가지 사안에 대해 “양심을 걸고” 해명했다.<기사 하단>

송 교수는 “노동당 입당 등 그 동안 내 행적이 한국 시각에서 보면 북한에 치우친 것으로 볼 수 있기에 국민들께 깊이 사죄한다”면서도 “처벌받을 수도 있는 상태에서 가족과 함께 귀국한 진의를 살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사죄할 것은 사죄하고 해명할 것은 해명해 실정법적인 처벌을 받을 사항이 있으면 감당하겠다”며 “한국사회 이방인이 아니라 참여자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편 ‘민주시민 여성들’을 자처한 몇몇 여성들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송 교수 뒤에서 “국가보안법에 굴하지 말고, 보수적인 사람들의 주장에도 귀 기울이지 말라”며 “송 교수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힘내라”고 외쳐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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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많은 취재진의 관심속에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송두율 교수의 기자회견에서 송교수의 아내 정정희씨가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고있다. <사진 민원기기자>

기자회견에서 밝힌 송두율 교수의 공식 입장

▲학문적 탐구 위해 1973년 여름 북한 첫 방문

처음 북을 방문한 1973년 여름에 남한은 유신체제가 선포돼 매우 암울한 상황이었고, 내가 살고 있던 독일과 서구 학계에서 당시 북은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평가했기에 조국의 하나인 북을 직접 보고 학문적 탐구를 하기 위해 북을 방문했다.

▲노동당원으로 의식하고 활동한 바 없어

첫 북한 방문 때 받았다는 ‘주체사상교육’과 ‘노동당 입당’은 1970년대 북한을 방문한 방문자들이 거치는 불가피한 통과의례였다. 그 당시 행한 행동들은 30년이 지난 지금 거의 뇌리에 남아 있지 않다.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리라는 생각 없이 자발적으로 국정원에서 언급했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아니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을 수락하거나 활동한 바 없고 북이 나에게 후보위원으로 활동할 것을 요구한 적도 없다. 특히 북으로부터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나를 지칭한다는 어떤 공식적인 문건이나 구두발언을 들은 적이 없다. 1994년 7월 김주석 사망 시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도 행사장 명패는 ‘송두율’이라는 이름이었다.

▲거액의 공작금 안 받아

언론에서 15만불의 공작금을 받은 것으로 보도된 점을 이해할 수 없다. 92년부터 94년까지 3년간 총 6∼7만불, 73년, 79년, 84년, 88년, 91년까지 7∼8차례 왕복 교통항공비 2만불 정도해서 도합 7∼8만불을 받았다. 92년∼94년에 받은 6∼7만불은 공작금이나 개인적 활동비가 아니라 80년대 중반까지 독일 오펜바하 시에 있던 ‘한국학술연구원’을 되살리기 위한 경비로 사용됐다. 훔볼트 대학 초빙교수로 임명된 1994년 여름학기부터는 시간에 쫓겨 이 계획을 포기하고 모든 자료를 지금 독일 에센 시에 있는 재단법인 ‘아시아 재단’ 한국연구소에 기증했다.

▲충성서약문 ‘사실무근’

북은 공화국창건일 등 특별한 날에 ‘축하문’을 많은 해외 인사들에게 요구한다. 남한사회에서 축전이나 조의문을 보내듯 1년에 한 두 차례 극히 형식적인 내용을 담아 보낸, 한국의 국가경축일 경축하는 정도의 축전에 불과하다.

▲오길남씨 입북 권유안해

오길남씨를 비롯한 누구 한 명에게도 입북을 권유한 적 없으며, 오 씨가 탈북한 뒤 재 입북을 강요하거나 협박한 적도 분명히 없다. 오씨와의 대질 심문은 녹취돼있으니 그가 스스로 작성한 탄원서에 자신에게 입북을 권유한 사람이 야채상 모씨라고 인정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남북해외통일학술회의는 남북공동 작품

1995년부터 해마다 5차에 걸쳐 열린 ‘남북해외통일학술회의’는 북의 공작으로 성사된 것처럼 보도되고 있으나 남·북 학자가 사전 협의를 거쳐 만든 학술행사며 나는 가교역할에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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