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은 반드시 간직하고 지켜야 하는 이유

미국 15대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왼쪽부터).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미국 15대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왼쪽부터).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얼마 전 코로나19로 인해 원격수업으로 진행된 비교정치 세미나에서 미국의 남북전쟁이 일어난 원인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내용은 흑인노예해방을 둘러싼 갈등으로 링컨이 선거에서 이길 경우 노예제도를 폐지할 것을 공약에 포함시켜 남부주는 미합중국에서 탈퇴해 남부독립국가를 세울 것이라고 대립해 남북전쟁이 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까지는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좀더 심층적 분석을 통해 원인을 규명해 보기 위해 학생들에게 미국의 헌법제정과 관련된 정치사를 읽게 했고, 미국남북전쟁 이전 50년의 대통령선거 공약, 남부주와 북부주들간의 갈등을 유발한 주요 법안들과 사건을 발굴해 읽게 했다. 학생들에게 정치사에서 숨어 있는 역사적 사건의 새로운 조명을 통해 전쟁의 원인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한 수업의 성과는 참으로 컸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전쟁의 원인에서 발견하지 못한 몇 가지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미나 수업의 몇 가지 결과를 공유하기로 한다.

첫번째 그룹에게는 미국의 헌법에 숨어 있는 그림을 찾아 볼 수 있도록 헌법과 관련된 정치사를 읽도록 했다. 이 그룹은 1787년 미국의 건국아버지라 불리는 13개주 대표들이 모여 새로운 헌법의 문구를 작성할 때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게 한 흑인의 대표성에 대한 논의를 집중적으로 심층분석하도록 했다. 남부의 사탕수수와 목화 등 농장을 운영하는 백인들에게는 백인들에게만 주어져 있던 투표권만으로는 북부에 비해 의회의 의석배분분에 있어 열세에 처할 것으로 생각해 소유하고 있던 흑인을 포함시켜 하원의석을 배분할 것을 주장했으나 쉽게 관철되지 않았다. 타협안으로 흑인 노예 5명 중 3명을 하나의 투표권으로 인정해 같은 지분의 세금까지 징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계산법에 남북 대표들이 타협을 보았다. 이 타협의 내용은 1787년 미국헌법의 1장 1절 3항에 명시된 ”5분의 3 조항”에 잘 나타나 있다. 최초 미국의 독립운동도 결국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구호로 영국에 대항에 시작된 것이었기에 투표권과 세금징수의무를 묶어 남북의 대표들이 타협을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남부의 주들은 더 많은 하원의석수를 배정받아 남북간의 정치권력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이 그룹의 결론은 미국의 남북주가 하나가 되어 미연방국가의 공동헌법을 선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5분의 3 계산법의 원칙에 있었다고 보았다.

두 번째 그룹은 1804년에 프랑스로부터 구입한 루이지애나 지역(지금의 캘리포니아, 오레건, 워싱턴 주, 뉴멕시코, 텍사스를 제외한 광범위한 서부지역)의 새로운 연방주 편입과 연관된 정치적 대타협에 대한 조사를 맡았다. 새로 구입한 루이지애나 동부지역에 위치한 미조리주를 흑인 노예 소유지역으로 인정할 경우 북부의 메인주를 흑인해방주로 인정해야 한다는 미조리협약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이 미조리협약의 핵심으로 이후 새로운 주가 선포될 때 미조리가 위치한 북위 36.30 이북이역은 흑인자유지역으로 정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미조리 협약정신은 5분의 3 원칙과 같은 미국식 타협을 통해 미합중국이라는 국가의 통합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요소로 그룹은 결론을 짓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 그룹은 1830년대 이후 미국 사회의 갈등을 주로 살펴 보도록 했다. 멕시코 전쟁 이후 뉴멕시코와 텍사스를 손에 넣자 새로운 주의 편입을 놓고 남부와 북부주의 긴장관계는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미조리대타협 이후 많은 흑인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흑인자유지역으로 탈출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밀라드 필모어 대통령 시절 도주흑인들을 체포할 경우 다시 원래 소유주에서 송환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남부주와 북부주간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자유지역에 한번 들어오면 자유인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북부주 주민과 반드시 주인에게 강제송환을 해야한다는 남부주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밀라드 필모어 당시 대통령이 1850년 탈출노예송환을 의무적으로 인정한 법을 받아들여 새로운 정당인 공화당이 새롭게 탄생하는 원인을 제공해 주었다. 일리노이주 출신의 링컨은 노예해방론을 중심으로 공화당 내의 지지세력을 규합해 대통령 후보 자리를 획득했고,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노예제도를 폐지한다고 공표해 남부주의 불안을 증폭시켰고, 결국 남부주 단독정부를 구성하겠다고 협박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자유지역에 있던 흑인체포와 강제송환법은 결국 미국을 남북전쟁이라는 상황으로 치닫게 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고 세 번째 그룹은 결론지었다.

필모어 대통령 이후 2명의 대통령은 캔사스-네브라스카법안을 통과시켜 미조리협약을 무력화시켰고, 미조리 북서부지역에서도 노예자유지역을 거부한 사례로 받아들여져 남북부 간의 지역감정은 이제 수습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달았다. 북부자유지역에 안착했던 흑인의 자유시민권 박탈을 새롭게 당선된 대통령 취임 전 해결해 달라는 제임스 뷰캐넌 당선자의 뜻에 따라 자유권박탈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냈고, 미조리타협은 5분의 3 원칙의 헌법정신에 위배한다고 판결로 대타협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당시 미국사회를 소요와 파괴, 갈등으로 몰아 넣은 원인이 되었다.

세 그룹 간의 토론을 통해 깨우친 사실은 결국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은 미국의 민주주의 발전역사에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요한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에 명시된 국가정신, 정체성, 가치를 훼손하거나 역사적 대타협을 이끌어냈던 선친들의 정신을 훼손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게 원칙을 수정하거나 역행할 경우 국민은 반으로 갈라지고 전쟁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관계성을 보여 주고 있다. 밀라드 필모어 대통령이 미조리대타협 정신을 몸으로 막아내고 원칙을 지켜냈다면 미국은 전쟁으로까지 치닫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정설이다. 이후 플랭클린 피어스, 제임스 부케넌 대통령이 헌법정신과 대타협정신을 끝까지 지켜냈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링컨이, 그리고 전쟁을 막아내지 못한 뷰캐넌 대통령이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힌다. 링컨 서거 후 남북전쟁 이후 골이 깊어진 남북 간의 갈등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앤드류 존슨 대통령은 차악 대통령으로 꼽힌다. 최고와 최악의 대통령이 링컨 대통령 전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역사는 위기를 극복해 통합을 이끌어낸 대통령은 최고의 위치에 올리고, 위기를 방관하거나 부추긴 대통령은 최악으로 기록하고 있다.

국민에게 한 번 약속한 원칙을 저버리고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면 그만큼 민주주의의 가치는 훼손되고 민주주의는 후퇴한다. 결과적으로 국민들 간의 갈등을 증폭시켜 사회는 겉잡을 수 없는 불신과 대립으로 전쟁과 같은 최악으로 치닫게 될 수 있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박선이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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