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에게 힘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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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 5차 세계무역기구(WTO) 회의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을 故 이경해 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회장의 둘째딸 이고운(26)씨. 지난달 26일 다소 지친 모습의 고운씨를 그의 예비신랑 한부원(31)씨와 함께 만났다.

스무날 이상 잠 한숨 제대로 못 잔 고운씨지만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하니 금새 결연해진다. “정부는 우리가 힘이 없다고 말하지만 WTO 안에도 비집고 나갈 틈이 있어요.” 20일 아버지 영결식에서 벌어진 정부의 과잉진압은 그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아있다.

영구차에 소화기를 뿌린 일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아빠는 물론이고 400만 농민을 무시한 처사에요. 동방예의지국이라며 유교사상을 찾는 나라가 영구차를 두고 그렇게 했다는 게 이해가 안가죠.” 아버지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한농연 측과 잡음도 많았다. “한농연의 취지가 많이 퇴색됐다고 생각해요. 한농연이 농민 단체로서 제대로 활동하기를 바랍니다.”

농민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 “농민들 힘든 거 다 알지만 무조건 주장만 하지 말았으면 해요. 노력해서 쟁취할 부분이 있다는 거죠. 농민들도 이제는 과학적이고 지능적인 행동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아빠가 남긴 아쉬움이기도 하구요.”

내겐 너무 자랑스러운 아버지

사람들은 고운씨를 보면서 고 이경해씨를 떠올린다. 얼굴이나 성격이 아버지와 꼭 닮았다는 말을 죽 듣고 자란 고운씨는 그런 평가가 싫지 않다. 그래서일까. 고운씨는 세 자매 중 유별나게 아버지를 따랐다.

2년 동안 사귄 부원씨도 대뜸 인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아직 아버지 사진을 지니고 다니지 못한다. “워낙 자주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정말로 돌아가신 건지 모르겠어요. 외국에 가 계신 것도 같고. 아빠는 처음 큰 뜻으로 할복하셨던 14년 전부터 아빠 없는 생활을 훈련시키셨으니까….”

스스로 '깡촌'에서 살았노라고 이야기하는 고운씨. 어릴 땐 소똥 치우랴 막사 돌보랴 불만도 많았지만 농민의 길을 택한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아버지는 일부러 저희한테 밭일이나 소 키우는 일을 시키셨어요.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농업이 소중하다는 인성교육을 저절로 받은 셈이에요” 아버지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 하나. “남들은 밥을 남기지 말라고 하죠. 아빠는 오히려 많이 퍼서 남기래요. 하나라도 더 팔아야 농민들이 잘 산다구요.”

이런 고운씨에게 딸 결혼식을 앞두고 자결을 택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끼어 들 공간이 없다. “오히려 그렇게 가실 때까지 제가 아빠한테 서운하게 해드린 게 마음에 걸려요. 정말 많은 걸 알고 계신 아버지가 그것들을 다 토해내지 못하고 환갑도 안돼서 돌아가신 게 안타까울 뿐이죠.”

아버지에 대한 강인한 믿음이 있는 고운씨는 '열사의 딸'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럽지만은 않다. “농민들에게 유가족의 힘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그 뜻이 아빠의 취지와 맞는다면 당연히 응할 겁니다.”

큰 뜻을 풀지 못하고 가신 아버지를 국립묘지에 모시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아버지를 빌어 농민들의 마음이 정부에 가 닿기를 바랬어요. 그런데 유가족들이 욕심부린다는 식으로 언론이 말을 하니 접을 수 밖에요.”

동생 지혜(22)씨가 다니는 한국농업전문학교가 일찍 생겼다면 아마도 거기에 다녔을 거라는 고운씨는 농업에 뜻이 있다. 농민운동은 아직 물음표. “제 재량이 거기까지 될지는 모르겠어요. 만약 하게되면 몸으로 뛰는 아빠 같은 스타일로 하지 않을까요?”

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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