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동료이자 나의 농구팀 코치이기도 한 환희가 하늘나라로 갔다. 뇌종양이 발병한 지 7개월 만에 채 이별을 준비할 틈도 없이 먼 곳으로 먼저 떠났다.

지난 봄 두통이 너무 심하다고 했다. 현대인이라면 으레 겪는 두통인 줄 알았다.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1차 수술과 항암 치료가 잘 끝났다고 해, 친구들과 조촐하게 축하 모임도 했다. 그러다 지난 9월 환희 배우자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이제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단다. 그리고 지난주,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나이 만 35세였다.

지난 3개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화, 분노, 낙담, 잊어버림, 무기력, 희망, 연대, 인정, 슬픔, 다시 희망’ 이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환희를 함께 떠나보낸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가까운 친구를 보낸다는게 이렇게 슬픈 일인가. 애석함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래야 슬픔도 잘 떨쳐내고, 그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직 젊고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던 재능 많던 친구여서 그럴까, 사회참여 활동부터 농구 모임까지 소중했던 순간들을 공유했던 친구여서 그럴까. 이 모두가 다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모두를 다 아우르는 한 가지를 찾았다. 그가 참 좋은 남자 동료였다는 사실이었다.

대화 중에 상대의 무례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남자 동료, 맨스플레인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농구에 관해서 물어볼 수 있는 농구 코치, 거칠게 몸싸움을 할 수밖엔 없는 농구 경기를 하면서도 신체적으로 위협을 느끼지 않고 함께 경기를 뛸 수 있는 남자 동료,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여자 동료들이 “나도 그랬다"며 택시 안, 공중화장실, 귀갓길, 직장 등 일상에서 겪는 안전의 위협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여성들이 그런 일을 겪는 줄 미처 몰랐다며, 우리들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던 남성 동료, 이환희였다.

여성인 나보다 여성 문제에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남자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주는 위로가 참 컸다. 일상에서의 안전을 보장해달라는 이야기에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하는 거냐’’며 화내지 않고, 함께 그런 사회를 만들자고 이야기하는 남자 동료가 있어 힘이 났다. 성평등한 사회를 갈망하는 당사자로서, 또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페미니즘, 리더십을 디자인하다>,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다가오는 말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와 같은 책을 기획하고 만든 사람이 내 친구라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이환희 편집자가 만든 페미니즘 관련 도서 (c)이지은
이환희 편집자가 만든 페미니즘 관련 도서 ⓒ이지은

에코 페미니스트, 25권의 책을 편집해 낸 편집자, 와우산 농구단 멤버이자 코치,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 멤버, 청소년들을 위한 정치 책 읽기 모임 모임지기, 청년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윤종신 팬클럽 종신총무, 씨앗들협동조합 조합원, 도시 농부, 두 마리 고양이의 집사, 그와 무척 닮은 영혼의 소유자이자 책을 만드는 편집자이자 작가인 이지은의 반려자, 이환희. 그는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여성과 남성이 함께 할 수 있음을, 서로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준 친구였다. 내가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에 지쳐 남성을 아예 등 돌리고 싶었을 때, 그렇지 않게끔 손 내밀어준 좋은 남성 동료였다. 그래서 그의 부재가 못내 애석하다.

발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그가 22세기를 살다가 갔구나. 22세기의 감각과 열정, 애달픔으로 살다가,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생각을 미치니 어떻게 애도해야 할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가 살아보고 싶던 22세기를 만드는 것,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그를 애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에 와 22세기를 살다간 환희. 그가 나눠주고 간 사랑의 에너지가 우리를 조금 더 빨리 22세기로 갈 수 있게 해주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물론, 환희가 만들고 싶어 했던 22세기로 말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