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고백하다

남성들이 직접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남성적 관계와 성문화를 여성주의 방식으로 풀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바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지난달 26일, 27일 양일간 철학카페 느티나무에서 열린 '성폭력 근절을 위한 남성 서포터즈 컨퍼런스'에서다.

여성주의와 남성을 고민하는 MenIF(Men In Feminism)가 공동기획한 이번 컨퍼런스는 성폭력상담소가 추진하고 있는 '성폭력과 성차별에 반대하는 남성 서포터즈 캠페인'의 첫 세부 사업으로 기획됐다. MenIF는 남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남성의 의식, 문화를 바꾸고 여성주의를 풍부화시키고자 만들어진 남성들의 모임이다.

섹스 거부는 관계의 단절? NO!

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성폭력 근절은 사회 전반의 의식 변화, 특히 남성의 의식 변화 없이는 힘들다”며 “이번 컨퍼런스는 남성들이 스스로 남성의 관계방식과 성문화를 돌아보고 앞으로 변화해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26일 '남성적 관계방식 돌아보기'를 주제로 변형석 언니네 운영위원, 차우진 대중음악 웹진 weiv 편집장이 각각 남성과 여성의 관계, 남성과 남성의 관계에 대해 발표했다.

변형석 위원은 “손을 잡는 등 남성들 간의 정서적 표현은 사회적 금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남성들은 소통이 허락되는 여성과 성적 관계에 집착하고 이를 친밀함의 척도로 본다”고 말했다. “여성이 섹스를 거부하거나 회피할 때 남성들은 이를 관계의 단절로 알고 종종 폭력을 수반하는 상황을 만든다”는 설명이다. 변 위원은 이러한 남성과 여성관계의 대안으로 “남성과 남성의 친밀하고 유연한 관계”를 제시했다.

남성과 남성 관계에 대해 발표한 차우진 편집장은 가족과 학교에서 나타나는 일상적인 남성 관계의 폭력성을 지적했다. 차 편집장은 특히 학교에서 “학교 교육의 폭력으로 남자 아이들이 폭력에 둔감해진다”는 점을 비판하고 “소년들은 서로 욕을 하고 때리며 친밀함을 표현하고 남성다움을 학습한다”고 설명했다.

차 편집장은 남성들은 친밀함을 표현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학습된 '남자되기 프로그램'에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며 “몸으로 친밀함을 쳐내는 학습을 한 만큼 다시 친밀함을 배우는 것도 남자끼리 손잡기 운동 등 몸으로 학습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이어서 남성들의 관계 맺기를 주제로 10대, 20대, 30대 남성들이 자신과 주변 남성의 경험을 솔직하게 사례 발표해 참석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정환군이 발표한 10대 사례는 앞서 주제 발표한 내용과 달리 남자 친구들간 스킨십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반면 인터넷 채팅을 통한 10대 여성과 남성의 성관계는 크게 개방돼 우려를 낳기도 했다.

여성은 술자리 안주, 식탁 위 음식이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 박병헌씨가 발표한 30대 사례의 경우, '재즈바'란 새로운 성문화를 소개해 참석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30대 남성들은 조직의 상사들이 이용하는 기존 단란주점보다는 고급화된 재즈바를 선호하며 이곳이 새로운 성매매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씨는 30대 남성들이 “사회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가족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경제력을 갖고 성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세대”라고 정리했다.

'남성 성문화 돌아보기'를 주제로 진행된 27일에는 이화여대 성희롱상담실의 권수현씨가 '남성들의 성인식과 성폭력'에 대해 발표했다. 권씨는 가해자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성민우회 활동가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유독 성에 대해서만 이중규범을 가진 성폭력 가해 남성들의 인식을 지적했다.

또 가해자 개인과 주변집단의 성문화 속에 존재하는 성인식이 성폭력 사건을 유발하고 이후 해결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주변집단과 관계에 지속적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서최용완씨 등 남성 서포터즈들이 한국 사회의 술자리, 포르노적 상상력, 인터넷과 남성의 글쓰기, 남성적 언어습관 등에 대한 사례발표를 가졌다. 주로 이들 남성 성문화에서 드러나는 폭력성이 크게 지적받았다.

남성 술자리 문화에 대해 발표한 서최용완씨는 다양한 남성들의 인터뷰를 통해 “술자리에서 여성을 배제한 남성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며 “남성들은 술자리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비하하고 접대 여성을 찾으면서 권력의 대리 만족을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언니네 '귀띔'의 정동혁씨는 성관계를 음식을 먹는 행위에 빗대는 표현, 90년대 대학가에서 불린 성폭력적 '삽신가', 당구장의 은어 등을 예로 들어 남성 언어 습관에 나타나는 성폭력성을 비판했다. 정씨는 “이러한 대화에서 여성은 성적 대상화되고 주변권력으로 밀려나며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지적해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한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번 컨퍼런스의 내용과 대안을 행동지침화해 남성 서포터즈를 위한 가이드북을 만들 계획”이라며 “11월경 온라인 상 '성폭력 근절을 위한 남성 서포터즈 캠페인'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김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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