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창립 본격 활동에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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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김효선 사장, <이프>박옥희 사장, 여성단체연합 이오경숙 대표, 중앙일보 문경란 기자가 '미디어와 여성'이란 주제로 진지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매스미디어를 연구해 온 여성학자들이 학회를 꾸려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지난 9월 26일 한양대 도심캠퍼스(프레지던트 호텔 6층)에서 열린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세미나 현장. 10년 전 8명의 연구회로 출발한 작은 모임이 80여명의 학회로 성장하기까지 적지 않은 기여와 고민을 해 온 연구자, 기자, 단체 미디어 활동가들이 모여 학회의 출범을 축하하고 독려했다.

회장을 맡고 있는 정기현 한신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인사말을 통해 “여성학자들의 소박한 관심에서 비롯된 여성 커뮤니케이션 연구회가 학회로 발족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면서 “앞으로 학회는 학계뿐 아니라 미디어업계에 종사하는 여성, 여성단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국내 첫 여성 주필로 화제를 모았던 장명수 한국일보 이사는 “막강한 힘을 가진 매스미디어가 바로 이용될 수 있도록 학회가 애써줬으면 한다”는 말로 학회 연구자들이 여성문제 해결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가량 진행된 세미나에서는 '디지털 방송과 여성문화'라는 테마로 방송사 내의 성차별적인 인력 구조와 디지털 문화가 확산시킨 여성들의 욕망, 여성 프로그램의 콘텐츠 개발 등에 대한 소주제들이 논의되었다.

이동후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발표한 '여성의 디지털 욕망: 자아표현의 즐거움 그리고 정체성'논문은 최근 증가하는 카메라폰의 소비와 그 이면에 담긴 여성들의 욕망을 다각적으로 조명해 여성들이 디지털 문화의 주체적인 수용자로 자리 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역사적으로 테크놀로지는 남성이 다루는 영역으로,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능력은 남성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징표로서 인식되었다”면서 “남성들은 기술적 능력을 통해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한 반면 여성은 기술적으로 무지하거나 능력이 결여되었다고 보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고 지적했다.

테크놀로지, 공포는 가라

이 교수에 따르면 이를 뒤집는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 카메라폰의 증가와 이를 이용하는 여성 구매자들의 욕망이다. 2002년 국내 처음 선보인 카메라폰 시장은 어느 새 급속한 성장률을 보여 2003년 7월 통계에 따르면 휴대폰 인구인 3,200만 명의 10%에 달하는 250만대 가량의 카메라폰이 시중에 판매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카메라폰을 들고 자신과 주변의 친구들을 찍는 여성들에게 테크놀로지에 대한 공포는 찾아볼 수 없다.

이 교수는 “기존의 카메라의 시선이 보는 남자/보여지는 대상으로서의 여자, 찍는 남자/찍히는 여자라는 모습을 아직까지 드러내고 있지만 카메라폰은 여성들이 표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카메라폰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찍으면서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선의 구조에 도전한다. 자신을 대상화시키는 동시에 주체로 만들어 가고 자신을 피사체로 바라보며 그 이미지를 재현해 간다.” 남성은 행동하고 여성은 스스로를 드러낸다는 시선의 관습으로부터 일탈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다, 카메라폰

그러나 문제는 “이런 행동이 가부장적 문화가 요구하는 시선일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덧붙인다. 남성의 시선을 내면화 한 여성의 시선 구조가 그대로 카메라폰에 반영될 수 있다는 설명.

그 외에 여성개발원의 이수연·이미정 연구위원은 '지상파 방송의 여성인력현황과 디지털방송도입의 시사점'이라는 논문을 통해 “디지털화로 인해 제작, 경영, 관리직 비율에 여성이 줄어들고 있다. 방송사 측에서는 여성인력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활용하기 위해 여성의 눈높이에 맞는 재교육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디지털 기술을 비롯한 테크놀로지가 남성에게 적합한 분야라는 선입견을 깨고 자신의 섬세함과 창의성으로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여성들 스스로 가져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정회경 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여성 채널들이 값싼 해외 영화나 드라마를 경쟁적으로 수입해 편성하는 현실에서 방송 시장 개방은 여성프로그램의 위상과 정체성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여성콘텐츠에 대한 정부의 공적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남성 중심 미디어의 압력 단체 될 터

세미나에 이어진 이날 행사의 꽃은 단연 현장의 어려움들을 풀어낸 라운드 테이블이었다. <이프>의 박옥희 사장, 본지 김효선 사장, 문경란 중앙일보 여성전문기자, 이정옥 KBS 해설위원, 여성단체연합 이오경숙 대표가 '미디어와 여성'이란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펼친 이 코너는 각 분야에서 미디어 운동을 해온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겪은 성차별과 불만을 맘껏 토로하는 장이었다.

이오경숙 대표는 “미디어가 성격이 바뀌어 그 변화에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힘든 부분이 있다.

관점과 가치관이 뚜렷해야 하고 전문성을 요하는 운동이란 점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운동이었다”면서 미스코리아 대회가 지상파 방송에서 막을 내리기까지 겪었던 지난한 과정을 예로 들어 미디어 운동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옥희 사장은 “많이 변화했다고 느끼지만 문제는 방송사나 미디어를 관리하는 가부장적인 사고를 가진 남성들이다”면서 “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의 발족을 계기로 더 많은 학자들이 현장에 들어가 현실을 변화시켜달라”고 당부했다.

문경란 기자는 종합일간지의 여성면 살리기와 키우기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후 “종합일간지에서 어떻게 페미니즘적 시각을 살리고 키워나갈지 함께 고민하고 지원해 달라”는 말을 전했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해 온 이들이 어렵게 모인 만큼 앞으로 미디어에 페미니즘 시각을 관철시키고 성차별적인 구조가 바뀔 수 있도록 단체, 기자, 여성언론, 학계 4자가 만나 “1년에 한번씩은 일을 저지르자”는 주장을 모으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박옥희 사장은 “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는 미디어의 압력단체가 되어야 한다. 또한 '페미니즘 미디어에서 뛰어난 기자' 상도 만들어 미디어 페미니즘이 주류 매체에서 인정받는 분야가 될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강력한 요구사항을 전달하기도 했다.

임인숙 기자isim123@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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