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박사방, 범죄단체 맞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가 조주빈에 대한 1심 선고(징역 40년)가 내려진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0.11.26. ⓒ뉴시스·여성신문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가 조주빈에 대한 1심 선고(징역 40년)가 내려진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0.11.26. ⓒ뉴시스·여성신문

법원이 26일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판매·유포한 혐의로 붙잡힌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에게 징역 40년과 신상정보 공개·고지 10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제한 각 10년, 전자발찌 부착 30년, 범죄수익금 약 1억604만 원 추징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공범 ‘태평양’ 이모(16) 군은 범행 당시 만 15세인 점이 고려돼 징역 장기 10년, 단기 5년을 선고받았다. 조주빈에게 자신의 고등학교 담임교사 딸의 살인을 청부한 사회복무요원 강모(24) 씨는 징역 13년, 거제시청 소속 공무원 천모(29) 씨는 징역 15년, ‘오뎅’ 장모(41) 씨는 징역 7년, ‘블루99’ 임모(34) 씨는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박사방 조직은 형법 114조에서 말하는 범죄 목적으로 하는 집단임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 A씨는 이날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 입장문을 보내 “주범 조주빈에게 징역이 선고됐지만 이것이 끝이 아님을 알고 있다”며 “공범들에게도 엄벌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다음은 피해자의 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먼저 말을 꺼내기에 앞서 이 자리에 저의 이야기를 듣고자 오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벌써 오늘의 시간이 왔습니다. 그날은 아직도 생생한데 오늘까지는 어떻게 지내왔는지는 참 흐릿하네요. 국민들께서도 같이 분노해주시고, 그만큼 많은 언론에서도 관심 가져주셨습니다. 언론에 노출이 되어야 저의 피해 사실에 대한 규명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또 다가오시는 그 시선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한 번도 이런 언론화를 겪어보지 못한 저의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과 가해자들의 수법을 가십거리 마냥 풀어내는 모습들을 보고 너무나도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것을 보는 게 더 치가 떨렸습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을 재구성하며 반복적으로 보여주셨으니까요. 또 조주빈이 무슨 영웅이라도 된 것 마냥 그의 일생을 알아야 했으니까요. 마치 그가 그렇게 자라서 이런 짓을 한 게 이해가 된다는 것처럼 풀어내시곤 했죠..

그러한 기사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그에 따른 비판적인 댓글이 달리고 다시 한 번 언론이 만든 피해자의 이미지에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쳐있던 상황만큼 도와주겠다는 손길 하나가 너무나도 감사했고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결코 따뜻할 뿐만이 아니란 걸 알았던 순간엔 정말 외면받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또한 사회적인 위치와 영향력을 충분히 가지고 계신 분들이 앞에서는 여성 인권을 그리 지지한다 말씀하시면서 뒤에선 성희롱적인 발언을 저한테 아무렇지 않게 내던지시고 그런 분들이 이 사건에도 어느 정도 연관성 있게 수사에 참여했다는 게 무척이나 소름 돋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끼리 뒤에서 물고 뜯고 서로 약점을 모은다는 것도, 이런 경관을 처음 보는 제겐 너무나 경악스럽더군요.

세세하게 말하기 입 아프고 부당한 경험들로 말 못 할 역겨움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사건 뒤 이런 경험을 가지신 피해자분들이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피해를 수단화하여 이익을 취하려 하셨던 모든 분들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인지하시고 모두 스스로 찔리시길 바랍니다.

여러 가지 댓글과 의견들을 보며 사건이 일어난 후 제 잘못이 아닌가 몇 번이고 돌아보았습니다. 사건의 피해자가 저만이 아니기 때문에 대표해서 어떠한 의견을 말한다는 것이 참으로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언어가 필요하다 생각해서 적절한 선에서 용기 내어 말합니다.

잘못된 내용들도 많았고 그 중 정말 '이건 아니야'라며 소리 지르고 싶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또 이 사건을 보시는 어떤 분들은 피해자의 잘못이라 집어 말하기도 하셨습니다. 말하고 싶은 게 많지만 속으로 삼킵니다.

저의 잘못이라 인정하면 '왜 그런 선택을 했냐' 비난당할 것 같고, 잘못이 아니라 호소하면 잘못한 것이 맞다고 비난당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범 조주빈이 선고되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공범들은 사건이 진행되고 있고, 몇몇은 아직까지도 수사 진행 중이죠.

숨고 싶었지만 제가 두렵다고 피하면 그들이 웃을 것을 알기에 앞으로 살아갈 저에게 그들이 저를 피하는 게 맞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매일 발전되어가는 디지털 사회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 안에서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그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암호화된 화폐, 암호화된 채팅방 그 안에서 이루어진 카르텔, 이러한 발전이 되기 전에 나올 수 있었을까요?

재판부는 앞으로의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공범들 처벌에 있어서도 엄벌을 내려주시고 이런 사회악적인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본보기를 보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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