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성폭력 사건' 징역 10년서 무죄로… 피고인들 복직신청, 대법원 2년째 침묵
'해군 성폭력 사건' 징역 10년서 무죄로… 피고인들 복직신청, 대법원 2년째 침묵
  • 김서현 객원기자
  • 승인 2020.11.28 10:01
  • 수정 2020-12-01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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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 성폭행 혐의 A 소령·B 대령
고등군사법원, 원심 뒤집고 무죄 판결
"위력에 의한 간음에 해당할 수 있다"면서도
"친밀한 관계로 인식했다"고 판시
피고인들은 바로 복직신청까지
2018년 이후 대법원 2년째 계류
피해자 "생존자가 떠나서는 안 된다" 호소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변대회의실에서 해군상관에의한성소수자여군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가 '해군성폭력사건 유죄판견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지난 11월 19일 서울 서초구 민변대회의실에서 '해군성폭력사건 유죄 판결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홍수형 기자

국방부는 군 내 성폭력 피해자 지원 체계 강화를 위한 민·관·군 협동 연수회를 지난 11월 15일 개최했다. 피해자 지원과 사건 처리 지원 업무를 수행 중인 성고충전문상담관 등 업무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초빙강연을 맡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소속 백소윤 변호사는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체계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지난 2018년 함선 내에서 일어난 두 명의 남성 상관에 의한 성폭행을 고발한 해군 C씨는 여전히 함선으로 돌아가지 못 한 상태다. 국방부가 연수회에서 디지털 성범죄 처리 등을 두고 공치사를 이어간 동안 정작 외면했던 과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논의는 빠져 있었다.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의 피고인들이 무죄로 풀려난지 2년을 맞았다. 무죄를 선고받은 한 피고인은 바로 복직신청까지 했다.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된 채 한 발짝도 못 나간 동안에도 피해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일상을 살고 있다. C씨는 다시 함선에서 근무하는 해군으로서의 삶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11월 19일 한국성폭력상담소·군인권센터·한국여성의전화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해군상관에의한성수자여군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대법원에 계류 중인 해한 성폭행 사건을 유죄취지로 판결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2018년 11월 고등군사법원 특벌재판부(재판장 홍창식)는 부하 여군을 추행하고 강간한 혐의로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과 8년을 선고 받은 A 소령과 B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일관되고 상세한 진술과 피해자의 당시 병원 진료 내역을 봐도 당시 성폭행 상황에서 폭행과 협박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이때 사건이 일어난 2010년 당시 피해자 C씨가 당시 갓 중위로 임관한 때 일어났다. 중위로 임관한 C씨는 자신의 정체성이 떳떳하다는 생각으로 상관인 A 소령에 커밍아웃을 했지만 A 소령은 ”남자경험이 없어서 그렇다“며 성폭행했다. 40일 이상 바다에 떠있는 함선의 유일한 여군인 C씨가 피할 곳은 없었다.

C씨는 두 상관의 요구를 거절했을 때 도망갈 곳 없는 함선 위에서 겪어야 할 불합리한 대우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친밀감을 느끼고서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터놓은 후 일어난 성폭력을 거부했을 때 성 정체성이 사방에 탄로날지 모른다는 공포도 있었다. 재판 당시 C씨는 "나중에 협박이나 보복이 두려워 거부하지 않았다"라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처럼 C씨가 심리적으로 억압돼 저항을 못 한 성폭행이었기 때문에 역으로 A 소령과 B 대령에 ‘무죄’를 선고했다.

 

”협박과 폭행이 없다면 성폭행이 아니다“

2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해군 간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무죄판결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8년 11월 2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해군 간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무죄판결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여성신문

 

형법 제297조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한다’고 밝힌다. 즉 폭행이나 협박 없이 피해자의 의사에 거슬러 일어난 모든 성폭행은 강간이 될 수 없다.

대표적인 사건이 ‘보습학원 원장에 의한 초등생 성폭행 사건’이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채팅 앱을 통해 만난 10살 초등생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넘겨진 30대 보습학원 남자 원장의 강간 혐의를 두고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가해자가 초등생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폭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따라서 강간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폭행과 협박 없이도 성립하는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다만 C씨와 같이 업무 등 생계와 연관된 관계에서 일어난 성폭력을 처벌할 법률이 있기는 하다. 형법 제303조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이다. ‘안희정 성폭행 사건’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징역 3년6월을 선고하고 ”피고인은 피해자와의 권력적 상하관계를 이용해 간음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반면 ‘해군 성소수자 성폭행 사건’에서 2심 항소심 재판부는 가해자들과 피해자의 관계를 함선에 근무하는 군인의 상관과 부하로 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 C씨를 내연녀로 보고 고소를 한 A 소령의 부인이 진술한 ”두 사람은 부적절한 관계“라는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A 소령 또한 부인의 말과 같이 사귀는 관계였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는 이를 반영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의 태도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하므로 피고인에게 피해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추행 행위를 한다는 추행 행위의 범의가 있었다고 추단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공대위는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재판부의 판단을 꼬집었다. 박지영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직속 부하에게 강간과 강제추행죄를 저질렀음에도 '반항'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없었기 때문에 무죄라는 것"이라며 "즉, 저항하지 않아서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인데, 이는 상명하복 규범이 강한 해군 군대의 문화와 피해자가 처해 있던 해군의 근무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의 삶은 '버티기'가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해군상관에의한성소수자여군성폭력사건공동행동대책위원회가 1인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해군상관에의한성소수자여군성폭력사건공동행동대책위원회가 1인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군대 내 성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상명하복식 위계구조와 남성중심적인 군대 문화는 군대 내 7.4%를 차지하는 소수 집단인 여성 군인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9월 2022년까지 8.8%까지 여군비율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몇 년간 끊임없었던 성폭력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응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5년간 군대에서 파면된 장교 58%는 여성을 성폭행, 추행하거나 부적절한 관계를 맺거나 강요해 파면됐다. 지난달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국방부에서 제출받은 '장교 파면 징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 6월 30일까지 파면된 군 장교 26명 중 15명은 성비위 문제로 최고 징계 수위인 파면을 당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군대 내 여군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폭력·성차별에 관한 실태조사도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7년 ”상관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말한 후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 여군 장교 사건이 세상을 뒤집자 6개월간 직권조사를 벌였다.

당시 인권위 발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군사재판에서 선고된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 부적절한 법 조항이 적용되거나 가해자에 온정적 처분이 내려졌다. 군사법원에서 선고한 전체 성폭력 사건 가운데 피해자가 여군인 사건의 선고유예 비율은 무려 10%를 넘어섰다. 일반법원 1심 판결에서 선고유예 비율인 1.36%의 8배에 가까운 수치다. 심지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현역 군인이기 때문에 군형법을 적용해야 하는 데도 일반 형법을 적용하는 사례도 흔했다.

인권위 설문조사에서 군대 내 성폭력이 "심각하다"거나 "매우 심각하다"고 답한 여군은 전체의 절반 이상인 54.1%에 달했다. 특히 피해자 가운데 61.9%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유는 "대응해도 소용없다", "여러 사람이 알게 되는 것이 싫었다", "장기선발 등 인사에 악영향" 순으로 높았다. 국방부는 여군의 근무여건 보장과 전문 성폭력 예방교육의 확대, 성폭력 예방 전담조직 강화 등을 내걸었으나 C씨의 사건은 해당 조사 이후에 있었던 판결과 조치다.

심지어 해군은 아직 A 소령과 B 대령에 대해 기소 휴직 처리를 했을 뿐이다. 2심 재판부는 이들에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명시는 했다. 국방부 군인·공무원 징계업무 처리 훈령에 따르면 성폭력 사건은 이유가 없는 한 징계권자는 반드시 징계 의결을 요구해야 하고 수사기관서 ‘혐의없음’ 또는 ‘죄가 되지 않음’ 결정을 받아도 징계할 수 있다. 심지어 성폭력은 징계의 기본 수준이 ‘해임’이다.

공대위의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팀장은 "이런 처리가 가능함에도 해군은 가해자를 엄단하긴커녕 기한 없는 기소 휴직으로 가해자들의 군인 신분을 연장해주고 있다"며 "가해자들은 일정 수준의 봉급을 해군으로부터 받으며 피해자를 옥죄는 탄원서를 취합하고, 악의적인 의견서 제출하는가 하면 피해자의 신상이 담긴 자료를 언론에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2018년 2심 재판이 끝난 후 A 소령과 B 대령은 피해자의 의료기록 등 피고인이 접근해서는 안 되는 정보들에 대해 법원의 허점을 이용해 접근한 뒤 이를 근거라며 11개 언론사를 대거 고소했다. 심지어 5억 원의 정신적 피해보상금까지 제시했다.

C씨는 앞서 공대위의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통해 “함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2년이 흘렀다. 고소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후회로 스스로를 책망하며 참 많은 날들을 허비했다”면서도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하고, 심지어 그것을 은폐하고도 괜찮을 것이라 안일하게 믿는, 그래서 유능한 부하들의 신뢰를 잃어버리고 결국 조직과 자신의 가족들을 배반하는 그들이야말로 가장 약한 고리이자 악한 고리"라고 비판했다. 

C씨는 <여성신문>과의 연락에서 군대 내 여군의 비율을 높이겠다는 국방부의 계획을 두고 "뉴스 속 화려한 숫자가 허울 뿐인 이상이 되지 않으려면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더라도 떠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성폭력은 더욱 엄정하고 강력하게 처벌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은 다른 이들에게도 당부를 남겼다. C씨는 "우리가 모든 것을 드러내고 연대하기는 위험하기까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며 "기필코 살아주길, 버텨서 웃는 날을 맞자"고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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