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choks@ewha.ac.kr

얼마 전 여성정치리더십 과정에서 강의를 했다. 수강생들 고민이 매우 유사한데 놀랐다. 여성 리더들은 한결같이 여성적인 리더십을 구현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여성적 리더십을 사용했을 때 남성 부하들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해 리더로서의 위치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여성리더는 이중 부담을 갖는다. 이는 역할기대와 리더십 특성이 서로 대립적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전통적으로 리더십은 남성적인 특징과 연결돼 있다. 리더십하면 강한 카리스마, 이성, 합리성, 단호함 등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여성은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타인을 배려하는 리더십을 요구받게 된다. 여성적 특성은 결과 지향적인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기에 여성리더가 실패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실제로 여성적 리더십을 행사했던 필리핀 아키노 대통령이나 니카라과 샤모로 대통령은 수차례 쿠데타에 직면하거나 비효율적인 경제정책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데 실패했다. 반면 단호한 리더십으로 영국병에서 영국을 구해낸 대처총리나 인도를 비동맹외교의 지도자로 이끈 간디수상은 성공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남성적 리더십을 발휘한 이들 여성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존경 받았을지는 몰라도 사랑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모든 권력을 버려야 하는가

가장 성공한 여성지도자로 평가받는 이는 노르웨이의 부룬트란트 수상이나 아일랜드의 로빈슨 대통령이다. 이들은 남성적 리더십과 여성적 리더십을 적절히 구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21세기를 여성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는 20세기와는 달리 여성적 리더십이 더 효율적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발달, 민주주의의 확산은 인간을 과거 어느 때보다도 평등하게 만들었다. 개인 권한이 확대될수록 명령하고 통제하는 20세기 지도자가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타인을 배려하는 수평적인 민주적 지도자가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21세기형 지도자의 특징은 여성적 특징과 밀접한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무조건 여성적인 리더십이 더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는 결과 중심적인 남성적 리더와 경쟁해야 하고 리더십의 효율성은 결과에 의해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의 성공여부는 전적으로 상황과 추종자에 달려 있다.

가령, 위기상황이나 자율성이 부족한 추종자가 많은 조직에서는 일일이 지시하는 권위적인 리더가 훨씬 더 효율적이다. 반면 갈등이 첨예하고 추종자들의 목소리가 큰 조직에서는 민주적인 리더십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따라서 조직의 문화나 추종자의 수준에 상관없이 특정한 리더십을 고집하는 리더는 실패하게 돼 있다.

리더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판단력이다. 상황과 추종자에 따라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판단력이야말로 리더십의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21세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성은 여성적 리더십을 여성은 남성적 리더십을 서로 배움으로써 상황에 따라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리더십 이론을 일찍이 공부했던 나조차도 실생활에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약자에게는 무조건 관대해야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나는 학생에게는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고 믿었다. 사실 한국학생들에게는 아무리 친절해도 내 리더십이 도전 받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교수를 스승이라기보다는 교육서비스 담당자 정도로 생각하는 외국 유학생들과의 사이에서 발생한다.

부여된 권력과 권위는

적절하게 사용해야

자기 성적이 나쁜 것을 무조건 교수 탓으로 돌려 어떻게든지 학점을 받아내려고 협상하는 학생에게도 친절하게 설명하며 일일이 대꾸해주었더니 아주 무례하게 대들었다. 그 후 질 나쁜 서양학생에게는 이메일로 원칙만 설명하고 최후 통첩을 하는 식으로 성적을 주었더니 아무 불평도 하지 못했다. 한국 학생들처럼 교수 권위를 인정하는 경우에는 굳이 권력을 휘두를 필요가 없다. 하지만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학생에게는 불가피하게 권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다. 그래야 내가 학생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에 대한 유혹을 떨치고 권력기관의 중립을 보장한 노무현대통령의 공은 아무리 칭송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불필요할 만큼 모든 권위와 권력을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지도자처럼 노대통령도 무조건 민주적 대통령이 최상의 지도자라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민주적인 리더십이 바람직한 이유는 목소리가 커진 국민을 더 이상 통제하고 명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효율적인 결과를 위해 민주적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민주적 리더십만 고집한다면 이는 결과를 무시하고 과정에만 집착하는 셈이

다. 권위주의 시대처럼 대통령이 강제력을 사용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력과 권위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은 대통령만의 특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당창당과정에서 노대통령은 최악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방임형 리더십을 구사했다.

이제 노대통령이 민주당 당적을 포기함으로써 사상 처음 임기 초 무당적 대통령이 탄생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높지만 노대통령의 리더십에 따라 획기적인 정치 실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된다. 가진 것을 포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노대통령이 대통령의 권위와 권력을 적절히 활용해 보다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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