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20년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학술부문 수상자
박상희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휘어지는 투명 디스플레이 원천기술 세계 최초 개발
내년 여성 최초 한국 정보디스플레이학회장 올라
“코로나19 속 더 두꺼워진 유리천장...
여성 연구자들 생존 위해 연대할 것”

‘제20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학술 부문 수상자인 박상희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사진은 박 교수가 2017년 5월 22일 SID2017 시상식에서 SID 석학회원(Fellow)으로 선정돼 수상하는 모습.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제20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학술 부문 수상자인 박상희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사진은 박 교수가 2017년 5월 22일 SID2017 시상식에서 SID 석학회원(Fellow)으로 선정돼 수상하는 모습.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종이처럼 둘둘 말 수 있고, 부채나 병풍처럼 접히고,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스마트폰·태블릿 PC. 더는 상상이 아니다. 시장에 하나둘 등장한 폴더블·롤러블·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가 그 증거다. 뒷면이 훤히 보이는 투명 디스플레이도 곧 시중에 출시될 전망이다. 유리창을 보며 바깥 날씨와 온·습도, 미세먼지 농도까지 확인할 수 있고, 자동차 앞유리에 컴퓨터 화면처럼 교통·차량 정보를 띄워 활용하는 세상이 온다. 이런 기술이 5~10년 내 ‘대세’가 될 거라는 예측도 있다.

제대로 만들려면 고화질·고성능은 기본이고, 두께가 절대적으로 얇으면서도 튼튼한 디스플레이가 필요하다. 투명하고도 잘 휘어지며 가격이 저렴한 모바일용 OLED 디스플레이(AMOLED)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천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사람은 누굴까. 한국 여성인 박상희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다. 내년이면 여성 최초 한국 정보디스플레이학회 수석부회장에 오르는 이 분야의 권위자다.

박 교수는 옥사이드(산화물) TFT(박막트랜지스터) 기반의 AMOLED176 디스플레이를 최초로 개발한 공로로 2017년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의 석학회원(Fellow)으로 선정됐다. KAIST 융합연구상, 산업통상자원부의 ‘2020 미래 100대 기술 주역’에 올랐고, 행정안전부 국무총리상,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상 등도 받았다. 최근 ‘제20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학술 부문도 수상했다.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로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여성과학기술인에 주는 상으로, 2001년부터 현재까지 수상자는 총 59명이다. 수상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상장과 포상금 1000만원을 받는다.

“코로나19처럼 비대면 생활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TV로 더 실감 나는 화면을 보기를 원하잖아요. 그러려면 디스플레이 형태를 바꿀 수 있으면서도 높은 해상도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하고요. 그런 기술을 개발하려 노력해왔습니다.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의 성장에도 기여하고자 했고요.”

‘제20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시상식이 지난 23일 서울시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렸다. 박상희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가 학술 부문상을 받고 있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제20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시상식이 지난 23일 서울시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렸다. 박상희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가 학술 부문상을 받고 있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이학박사 졸업하고 우연처럼 시작한 디스플레이 연구

22년간 한우물 파니 독보적 권위자 돼

코로나19 속 더 두꺼워진 유리천장

여성 연구자들 생존 위해 연대할 것”

그는 서울대 화학교육과, 과학교육(무기화학) 석사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대 화학박사를 취득했다. 하필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 한국에 돌아왔다. 일자리를 못 구하면 과수원에서 농사라도 지을 생각이었는데, 우연처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입사해 디스플레이 연구를 시작했다. 2014년부터 KAIST 신소재공학과에서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연구·개발하고 있다. 22년간 한 우물을 파다 보니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연구자가 됐다.

남성 위주의 조직과 연구 환경에서 소수자로서 이 악물고 버텨온 22년이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인터뷰 전날(20일)에도 학회에서 만난 다른 여성 교수들과 옛이야기를 하며 울었다”고 했다. “디스플레이 분야는 다른 자연과학 분야보다 여성의 진출률이 무척 낮아요. 국제 학회인 SID만 가봐도 두드러지는 여성들이 많은데, 우리 학문 현장에선 찾아보기 어렵죠.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알아주는 기업들에도 여성 임원은 드물고요. 훌륭한 여성 연구자들,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들이 정말 많은데...여성이 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지려면 다른 가족 구성원의 협조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해요. 눈물겹죠.”

어떻게 여성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잠재력을 발휘해 커리어를 잘 쌓을 수 있을까. 박 교수는 젊은 여성들에게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난해부터 정보디스플레이학회 부회장을 맡아 학회 내 ‘여성’ 세션을 만들었다. “어떻게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지,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지 선후배들이 만나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성에겐 더 많은 역할 모델이 필요하니까요. 우리 후배들은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아까운 아이들인데도 당장 전공 분야에서 생존할 걱정을 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죠. 그래도 기회는 있으니까요. 학생들에게는 얼마든지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고, 어찌 됐든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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