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표준이 남성일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간의 표준이 남성일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최현지 수습기자
  • 승인 2020.11.25 15:17
  • 수정 2021-01-12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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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보이지 않는 여자들』 (웅진지식하우스)

이 책은 우리가 인류의 반, 여자에 대해 기록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여자를 표준 인류에서 벗어난 존재로 여겨왔다.

그것이 여자들이 보이지 않게 된 이유다.

보편적 인간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가 ‘맨(man)’이고, ‘인류’를 뜻하는 단어가 ‘mankind’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해묵은 충격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남성’이 ‘인류 표준’이라는 등치가 단지 은유적 차원의 사고방식과 언어적 규정에 머무르는 게 아니고, 매우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차원에서 남성만이 인간으로 간주됐다면? 한 여성 저널리스트가 발전한 데이터 기술을 바탕으로 이를 숫자로 증명해냈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수많은 데이터상에서 여성의 존재가 지워져 온 역사를 분야별로 짚는 책으로,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저자인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여성운동가로, 고용차별뿐만 아니라 각종 제품 설계나 의학, 정치, 노동, 도시 계획 등 삶을 영위하는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주변화되었는지를 촘촘히 보여준다. 

가령, 회사 사무실의 에어컨 바람이 여성에게 더 추운 이유는 뭘까? 표준 사무실 온도가 1960년대 당시 40세, 체중 70kg인 남성의 기초대사율을 기준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또, 스마트폰이 너무 크거나 무거워서 자주 손에서 놓치거나 떨어뜨리는 여성들은 자신을 지나치게 탓할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의 평균 크기인 5.5인치(13.97cm)는 남성 평균 손 크기인 7.6인치(19.3cm)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음성인식 서비스가 남성의 음성을 더 잘 알아들을 확률이 70%나 높은 이유는 알고리즘 자체가 남성의 음성을 기준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업무나 일상 속에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순간들 속에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장치가 들어있는지뿐만 아니라,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중요한 의료나 안전 부문에서도 여성은 남성보다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여성이 중상을 입을 확률은 남성의 1.47배다. 왜일까? 자동차 충돌 실험에 신장 177cm, 체중 76kg의 남성 인형을 표준 삼아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 젊은 여성이 심장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은 남성의 2배다. 이유는? 심장병 예방약으로 처방되는 약물은 거의 남성 환자만을 대상으로 시험되고, 증상 역시 남성 환자를 기준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성별에 따라 신체적 조건도, 증상도 다를 수 있으나 차이 자체가 무화된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대한 데이터에 따르면, 이 세계의 각종 표준을 구성할 때 여성은 없다. 여성의 존재를 알고도 모른 체했다기보다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애초부터 없었다. 없는 것으로 치부되니 고려할 필요도 없다. 여성들은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남성이 남성을 위한 세상을 설계해왔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더 이상 은유가 아니라 개탄스러운 ‘팩트’다.

우리 지식과 인식의 대부분을 남성 데이터가 차지하기에 지속적으로 남성이 보편이자 유일로 인식되고 여성은 주변으로 끌어 내려진다는 것을 관념과 당위로서가 아니라 실체 정보와 수치로 표기하니 반박이 어려워진다. 성차별이 단지 감정이거나 헛된 망상이라는 해코지에 대고 ‘옜다, 데이터’ 하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데이터 제시를 통한 ‘사실 확인’에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가 제시하는 개념은 ‘젠더 데이터 공백’이다. 공정하고 성 중립적으로 보이는 조치에도 남성 편향이 은밀히 숨어있기에, 여성들은 속지 않도록 두 눈 똑바로 뜨고서 필요한 것을 요구하며 공백에 반격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고발에 그치지 않고 ‘반격을 위한 강령’을 제시하면서, 저자는 진정한 의미의 평등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잊지 않는다.

이 두꺼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일찍이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 쓴 이 문장이 조금은 다르게 읽힐지도 모른다. “인간은 남성이고, 남자는 여자를 여자 자체로서가 아니라 자기와의 관계를 통해 정의한다. (중략) 남자는 ‘주체’이고 ‘절대’이다. 그러나 여자는 ‘타자’이다.” 

 

이주의 신간이 궁금하다면 ▶ [주간 책타래] 『얼마나 닮았는가』 外 www.womennews.co.kr/news/204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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