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오거돈 사건’이 초래한 보궐선거 두고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성인지 학습기회”
“여가부 장관이라는 분이 그 정도 발언밖에
할 수 없었는지, 그게 최선이었는지 묻고 싶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br>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11월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지난 11월 2일, 더불어민주당은 과거에 정치 개혁 차원에서 규정한 ‘보궐선거 원인 제공시 무공천’ 당헌을 당원 투표를 통해 개정했다. 이낙연 당대표가 결단을 내리고 당원들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해당 당헌을 개정함으로서 사실상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당헌 개정 이후 민주당 인사들은 ‘다른 형태의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식으로 당헌 개정을 두둔하고 나섰다. 

5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이 여성가족부 이정옥 장관에게 질의한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 838억원이 성인지 관점에서 피해자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해 봤나’라는 질문은 이러한 민주당의 무책임한 결정에 따라 나오게 된 질문이다. 이후 윤 의원은 16일 성폭력 행위로 지자체장의 보궐 선거 발생 시 그 실시 사유를 제공한 사람의 소속정당이 재보궐 선거 비용에 책임을 지게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의 별칭은 ‘박원순·오거돈법’이다. 민주당의 무공천 책임 폐기를 국가적 차원에서 보완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성폭력 사건 통해 성인지감수성을 학습한다?

여당이 본인들이 만든 당헌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은 상황에서 해당 질의에 대한 이 장관의 답변은 마치 여당의 ‘무공천 원칙 폐기’ 결정에 뜻을 함께하는 것처럼 해석되었다. 

이 장관은 윤 의원의 질의에 ‘국가의 굉장히 큰 새로운 예산이 소요되는 사건을 통해 전 국민이 성인지성을 집단 학습할 기회가 될 것’이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 장관이 언급한 ‘사건’이 성폭력 사건을 의미한다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여성가족부 장관은 사퇴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자질이 부족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성폭력 사건을 통해 성인지감수성을 학습한다는 말은 누가 보아도 앞뒤가 안 맞는 말이고 그 자체로 끔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 문장의 ‘사건’을 선거라고 해석하면 문장 자체에는 동의할 수 있게 된다. 지자체장의 성폭력 행위가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인 동시에 사회정의 훼손이며 치러지지 않아도 될 선거를 진행해야 하므로 다른 곳에 의미 있게 사용될 수 있는 국민혈세가 낭비된다는 점은 우리 모두가 뼈아프게 새겨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보궐선거를 계기로 공직자의 권력형 성범죄의 씨를 말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해당 답변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장관의 답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장관은 본인에게 질의한 윤 의원의 발언이 마치 박원순·오거돈 사건을 ‘과잉정쟁화’한다고 간주하는 것처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건이 과잉정쟁화되면 피해자에게 또 다른 2차피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선거에 결부가 되게 되면 과잉정쟁이 될 수밖에 없다.”

박원순 사건 이후 다른 성폭력 사건과 달리 유달리 침묵하거나 가해자에 대한 예의를 운운하면서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박원순 사건이 커지면 사건이 보수진영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될 것이라 지레짐작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침묵했다. 심지어 피해자의 변호인의 출신성분을 따지며 정치적으로 기획된 사건이라는 의심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이런 의심에 맞서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사건의 진상규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진영의 일이었다면 응당 나서서 목소리를 높여 비판했을 사람들이 박원순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여성단체에 대한 지지를 거두어버리니, 박원순 사건은 그 심각성에 비해 놀랍도록 조용하게 잊혀 지는 중이다. 

“책임이 상실된 정치에는 신뢰를 보낼 수가 없다”

약 20년 전의 여성주의자들이나 최근에 등장한 페미니스트들이 사회운동을 하는 ‘운동권’을 비판했던 이유 중 하나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할 것이라고 믿었던 사회운동조직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가해자 처벌, 재발 방지, 피해자를 보호에 중심을 두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외부로 알려지지 않게 하는 데에만 급급한 방식으로 대처해왔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조직 보위’라는 명분에 충실했기 때문에 조직은 조직문화를 자정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피해자는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외부에 알려지면 우리 조직이 공격받는 빌미가 될까봐 사건을 쉬쉬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조직에 몸담았던 피해자는 사건에 대해 함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기도 했다. 조직에 충실했던 피해자는 애초에 위와 같은 걱정 때문에 문제제기 자체를 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성폭력 사건 과잉정쟁화’를 걱정하는 이 장관의 발언은 과거 사회운동 진영의 ‘조직 보위’ 논리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보수진영 인사가 성폭력을 저질렀을 때에는 정쟁화할 수 있지만 진보진영이 성폭력을 저질렀을 때에는 정쟁화를 할 수 없다면 그것이 어떻게 사회 정의가 될 수 있을까. 이 장관의 입에서 나온 ‘성폭력 사건 과잉정쟁화’란 말은 2018년 미투 운동이 한창일 무렵 ‘나꼼수’(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이 제기했던 ‘미투 음모론’과 현 시점에서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이 장관은 ‘이번 보궐선거의 원인이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이냐 아니냐’를 질문하는 윤 의원에게 ‘수사 중인 사건이라 죄명을 명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라며 광역자치단체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도 했다. 자신의 그 한 마디가 성폭력 피해자의 용기 있는 증언을 지우고,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인정하지 않으면 성폭력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 땅의 수많은 안티페미니스트들이 하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이 장관은 모를 것이다.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야말로 조직적 은폐 시도에 맞서서 쟁점화가 되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은폐하려고 하지 않으면 ‘과잉정쟁화’ 따위는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정부든 여당이든 여성가족부든 광역자치단체장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고 여성단체만 애를 쓰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는 서울 시민으로서 과연 여성가족부 장관이라는 분께서 그 정도 발언밖에 할 수 없었는지, 그게 최선이었는지 묻고 싶다. 책임이 상실된 정치에는 신뢰를 보낼 수가 없는 법이다. 

이가현 페미니즘당 서울시당 창당준비위원장.
이가현 페미니즘당 서울시당 창당준비위원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