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JK깁슨-그레엄 지음, 엄은희·이현재 번역

『그 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JK깁슨-그레엄 지음, 엄은희·이현재 번역
『그 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JK깁슨-그레엄 지음, 엄은희·이현재 번역

 

[에코페미니즘 읽기] 세미나 기획자이자 사회자인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이현재 교수가 네 번째 강의를 진행했다.『그 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번역자이기도 한 이 교수의 강의는 깁슨-그레엄(J.K. Gibson-Graham) 필명의 탄생에 대한 흥미진진한 설명으로 시작됐다. ‘깁슨-그레엄’은 여성주의 경제 지리학자인 줄리 그레엄(Julie Graham)과 캐서린 깁슨(Katherine Gibson)이 1996년 이 책을 발간하며 사용하기 시작한 공동필명으로 이후 이들은 각각 호주와 미국에서 여성주의 정치경제학 연구를 따로 또 같이 수행해 나갔다.

깁슨-그레엄은 경제를 공식시장, 임금노동 등의 통일적, 단수적, 총체적 특징의 “대문자 자본주의”로 재현하고 있는 자본중심적 현대 경제 담론을 넘어서기 위해 여러 거래 유형, 노동 형태, 기업 형식 등을 개념화함으로써 비자본주의와 대안 경제를 규명하는 이론과 실행 연구를 수행해 왔다. 다양한 경제 언어를 제안하고 경제의 속성을 확장시켜온 이들 연구의 중심에 대문자 자본주의에서 배제되었던 여성경제가 소환됨으로써 여성주의 정치경제학의 비판적 재구성이 시도됐다.

이질적인 집단성의 관계 등
‘약한 연결’의 범주까지 포용

여성주의 경제 담론은 단순히 여성에 의해서 수행되는 관계와 돌봄에 기반한 특정 경제활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유통체계, 대안통화, 자원봉사, 사회적 책임 기업 등 대문자 자본주의를 넘어선 비 대문자 경제형식(비시장, 미지급 노동, 비자본주의적 기업 등) 전반을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러한 새롭고 비자본주의적인 경제적 상상의 가능성은 생태적으로 온전하고 건강한 삶의 방식과 가치를 확산하고 대중화함으로써 이를 자급의 삶과 돌봄경제 속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에코 페미니즘의 수행성과도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 따위 자본주의』출간으로 자본주의 헤게모니를 해체하고 경제적 다양성의 언어를 제안하며 비자본주의적 담론공간을 개척한 바 있는 깁슨-그레엄은 이들 다양한 경제 비전을 정교화 하여 우리 삶에 밀착하게 하는 후속 실행연구로서 비자본주의적 경제공간을 지향하며 살아나갈 대안적 경제주체를 육성하는 작업과 그러한 주체들로 구성된 공동체경제가 특정장소에 자리 잡도록 설계하는 작업의 단계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깁슨-그레엄은 상호연계와 발전의 열린 가능성들을 깨닫고 북돋우기 위해 아주 폭넓고 분산된 형태의 집단행동 개념을 옹호했기 때문에, 그들이 지향하는 공동체경제는 충만하고 다양한 경제를 넘어서서 이질적인 집단성의 관계까지 받아들이고 연계해 확장할 수 있는 일종의 ‘약한 연결’의 범주까지 포용하고 있다. 관련해 이 교수가 소개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사례는 (비혼)여성, 성소수자, 성폭력 피해자, 10대 등 의료 담론의 구성적 외부인을 불러 들여 여성주의적 관계와 돌봄의 수행성을 보여주었고 더 나아가 계속 진화를 모색하는 경제사례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대안적 공간은 비대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주체의 정치’ 지속할 것인가?

관련해 토론시간에 화두가 된 것은 공동체경제의 구성원인 대안 경제주체를 배출해내고 이들의 지속적 생존을 가능하게 할 방법에 대한 고민이었다. 깁슨-그레엄이 지적한대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대부분 경제가 아닌 일자리에 대해 걱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대문자 자본주의를 넘어 새로운 경제적 상상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두잉 사회적협동조합’ 같은 대안적 공간은 도래한 비대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그 생존법을 찾아 ‘주체의 정치’를 지속할 것인가?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 비자본주의적 경제형태의 자본주의화 흐름, 자본〮기술 집약적 산업의 비자본주의화 가능성, 글로벌기업과 대기업 임팩트 투자의 한계, 도시공동체 경제의 실험 필요성, 가치지향적 비즈니스에서의 수익성의 중요성 등 토론자들은 각자 위치한 자리에서 마주하게 되는 경제주체로서의 고민거리들을 다양하게 풀어놓으며 의견을 나눴다.

‘대안’이라는 단어가 현 상태가 뭔가 잘못되었음을 드러내주는 일종의 ‘지표’와도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의미 있을 수 있다고 한 그레엄-깁슨의 렌즈를 빌자면 세미나와 토론에 참석한 많은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적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다양한 대안적 경제 가능성들을 상상하고 실천해나갈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고 대안적·〮여성주의적 경제주체로서의 자각과 실천을 새롭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레엄-깁슨의 비자본주의적 담론공간 개척이 현재진행형인 프로젝트인 까닭에 우리가 대문자 자본주의를 벗어나 시장 내부나 그 너머를 들여다보려 시도할 때 참고할만한 명확한 공식이 도출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잉여노동을 생산, 전유, 분배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려는 대안적 상상과 시도는 대문자 자본주의 하의 삶이 힘들게 다가오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지금 여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욱 필수적이다.

심보미 성남문화재단 부장. 문학박사,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심보미 성남문화재단 부장. 문학박사,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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