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능력주의’는 과연 공정한가
[여성논단] ‘능력주의’는 과연 공정한가
  • 김양지영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 승인 2020.12.01 11:44
  • 수정 2021-01-07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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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토대로 자리잡은 ‘능력주의’
그러나 부모의 경제적 자원, 부의 세습,
우수한 교육, 태어난 시기, 행운 등
비능력 요인도 삶에 영향 미쳐

강의를 하면서 20·30대 남성들을 만나기도 한다. 강의 때 우리나라의 성별에 따른 불평등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 다음과 같은 2,30대 남성들의 공통적인 반응을 접한다. “그건 내가 만든 문제가 아니라 기성세대들이 만든 문제인데 왜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을 내가 져야하는가.” 이 말은 곧 성차별적인 문화를 만들고 가부장제의 혜택을 누려온 40대 이상 남성들의 부채의식을 왜 30대 이하 남성들이 대신 짊어져야 하는가란 말이기도 하다. 2,30대 남성들은 가부장제 혜택을 보지도 않았고 여성을 억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학교에서 그런 권력을 누려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잇따라 나오는 이야기는 ‘역차별’에 대한 이야기다. 여성 할당제가 바로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낳고 있다고 본다. 20·30대 남성들은 ‘공정성’에 대해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이에 근거하여 적극적 조치 등은 공정한 경쟁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나의 고민 중 하나는 ‘공정’함이란 무엇인가 이다. 2,30대는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보면서 성장한 이들로 고용불안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안다. 이들은 좋은/안정적인 일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공정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상대가 나보다 실력이 좋아서 합격하고 내가 떨어지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용납할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노력과 이를 토대로 한 능력이 중요한 기준이다. 공정성의 토대로 ‘능력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제시하면, 열심히 노력해 능력을 갖춘 개인은 누구라도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공정성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맥나미와 밀러 주니어는 『능력주의는 허구다』라는 책에서 우리가 믿고 있는 능력주의는 실제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바로 능력주의의 신화에 빠져 있다는 것인데, 개인의 삶에는 능력적 요인과 비능력적 요인이 함께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출생의 우연성이다. 어떤 이는 부잣집에 태어나고 어떤 이는 가난한 집에 태어난다. 출생은 불평등한 출발점을 만들어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누적되고 더욱 증폭된다. 이미 인생의 시작점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비능력적 요인이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진정한 능력 시스템 하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삶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출발점이라는 배턴을 받아 달리는 릴레이 경주라는 걸 말이다. 능력주의가 부모의 부와 같은 비능력적 요소들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게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공정성을 모두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맥나미와 밀러 주니어는 비능력적 요인으로 부모의 경제적 자원, 부의 세습, 특권의 대물림, 우수한 교육, 사회문화적 자본, 행운, 차별적 특혜, 태어난 시기, 시대적 상황 및 사회적 상황 같은 요인 등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평등하고 능력이 중시되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비능력적 요인 부분인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비능력 요인에 포함된 사회구조적 불평등에 ‘성별’에 따른 차별문제도 함께 존재한다. UN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남녀 간 임금격차는 33%로, 남성이 1달러를 벌 때 여성은 77센트를 받는다. 그리고 지금 속도도 가면 많은 국가에서 더 많은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노동시장에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성별임금격차를 줄이는 데 257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적극적 조치는 바로 이러한 과거로부터 누적되어온 여성에 대한 차별이 현재에 미치는 불평등한 효과를 개선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하는 조치이다. 현재 공공부문에서 시행하고 있는 2022년까지 관리직 비율 20% 목표는 비능력적 요소들을 개선해나감으로써 공정한 사회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20·30대 남성들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난 남자라서 혜택 본 게 없다.’ 우리가 부의 대물림을 이야기하며 부모의 사회경제적 자원 덕분에 학업지원을 많이 받아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들에게 이와 유사한 질문을 한다고 하면 뭐라고 답할까? 2019년 기준 서울대·연대·고대 재학생 2명 중 1명의 가구소득이 연소득 1억 1000만원 이상이다. 부모가 부자인 집 아이들이 모두 명문대에 오는 것은 아니고 내 노력과 능력의 결과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그 말에 모두 동의하기 어렵다. 분명 부모라는 비능력적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성별이 여성과 남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 유사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비롯한 비능력적 요소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능력과 공정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불평등 요소들을 제거해나감으로서 공정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김양지영 여성학자
김양지영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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