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자기찾기 그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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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옌 티 차우 지앙<2003·베트남>

“동양은 단순히 '그 곳(there)'이 아니다. 서양이 '그 곳(there)'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얼마 전 향년 67세를 일기로 타계한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1978년 그의 책 속에서 한 말이다. 그는 '동양'이 서구의 광범위한 지식 영역이 발명해 낸 '타자 이미지(image of the Other)'일 뿐이라고 서구의 제국주의를 질타했다. 서구가 역사와 형상, 어휘들로 구성한 관념으로서의 '그 곳 동양'에는 생생한 실체로서의 '여기 동양'이 없다는 말이다. 그의 저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화에 대한 비판적 논점을 제공했으며, 특히 동양의 학계는 그의 논리에 힘입어 자기 정체성을 재질문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본격적인 동양의 자기 얼굴 찾기는 이렇게 서구에서 활동한 지식인에 의해 그 곳에서 촉발되고 파급되었던 것이다.

<아시아의 지금 Seoul-Asia Art Now> 전시(10월 19일까지 마로니에 미술관)를 평하는 이 지면의 첫머리에서 사이드와 그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이유는 제목에서 유추되듯 이 전시가 아시아의 현실 지형을 다루고자 하기 때문이다. 민족미술인협회와 문예진흥원이 주최하고 문화관광부, 민예총이 후원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 지역 33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이 중간 규모의 국제 미술제는 “'아시아성(Asianity)'의 발현과 추구를 통해 아시아인으로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한다.

아시아 지역 미술을 다루며 앞으로 매년 서울에서 개최될 이 선언적인 미술제가 제 1회 주제로 삼은 것은 “근대화와 도시화”이다. 향후 이 행사가 다룰 시간의 범위와 논점의 성격을 구체화한 주제로 읽힌다. 즉 '지금 여기'를 다루기 위해서 문화적 분절점이 되었던 근대를 기점으로 하고 이로부터 현상된 근대화와 도시화를 첫 논점으로 하겠다는 의지의 표출인 것이다.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이러한 주제 아래 헤쳐 모였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작가 요시코 시마다가 일본 천황과 맥아더 장군을 키치적으로 병치시켜 놓은 작품은 일본 군국주의와 미 제국주의를 비트는 것으로 읽히며, 중국작가 미아오 시아오 춘이 중국 대도시 뒷골목에서 빛나는 광고판을 찍은 대형 사진은 자본주의로 변모하는 중국의 현재를 표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한국, 중국, 베트남,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의 작가들이 출품한 작품들은 대부분 서구식 근대화로 변경된 아시아 지역의 물리적 삶을 사진과 영상으로 현상하거나 서구식 미감으로 조정된 지금 이 곳의 문화현상을 회화와 조각을 통해 코멘트한다. 표방한 주제에 비해 실제 전시는 다소 느슨하게 선별된 작품들을 보여주는데, 그에 따라 전시를 통해 주요한 담론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아시아의 정체성을 찾겠다”고 한 이 전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익숙한 문제의식 아래 피상적이고 포괄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사이드가 지적하듯 서구가 자기 정체성 강화에 필요한 타자로서 동양을 설정해 놓았다면, 이 전시는 그러한 과거의 반대급부로서 서구 비판 담론 안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 있다. '서구'라는 적대적 타자를 설정해 놓고서.

물론 일상적 삶의 차원에서든 미술의 영역에서든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영향이 언급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박경훈의 작품에서처럼 부시가 주도한 이라크 전쟁은 '한국군 파병 요청'으로 여전히 우리 삶에 끼어 들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성 물신화와 환금성(換金性)은 그룹 '입김'과 황혜신의 작품에서 보듯 어린아이나 여고생을 가리지 않는다.

이 전시가 근대화와 도시화 이후 아시아 각국의 문제를 담았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구체적 담론과 비전 제시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익숙한 비판으로만 바라본 현실은 '오래 전 지금'이지 '의지의 지금'은 아니다. 전시가 전반적으로 지난 80년대 <현실과 발언>전의 2000년대 버전으로 느껴지는 것도 비판성의 과거 시제 때문은 아닐지? 새로운 '아시아성'을 정립하기 위해 매년 열릴 <아시아의 지금>전이 그야말로 '지금'의 의미를 획득해 가기 위해서는 미래의 비전이 첨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강수미 (경기대 미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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