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사유리는 지난 16일 결혼하지 않고 임신과 출산을 했다는 글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유리 인스타그램 캡처
“싱글맘이 되기로 한 결정은 쉽지 않았으나 부끄러운 것도 아닙니다.” 방송인 사유리는 지난 16일 결혼하지 않고 임신과 출산을 했다는 글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유리 인스타그램 캡처

방송인 사유리가 정자를 기증받아 비혼인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한국 사회가 떠들썩하다. “한국에서는 결혼한 사람만 시험관 아기시술이 가능하고 모든 게 불법이었다”는 말을 두고 언론은 앞다퉈 팩트 체크를 했고, 어떤 이들은 ‘아빠 없이’ 자랄 아이의 미래를 걱정했고, 또 어떤 이들은 ‘남자 없이’ 충분히 잘 사는 여성들이 급증할 미래를 상상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안타깝다. 시대에 뒤처진 이들이 앞으로 마주할 삶이. 엄마는 요리하고, 아빠는 출근하며 아이는 유치원에 가는 단란한 4인 가족만을 ‘정상가족’으로 취급하던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데 혼자 저기서 ‘아기상어’를 부르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윤리 지침에는 “정자 공여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상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는 기준이 있다. 대다수의 산부인과에서는 이 지침을 따르기 때문에 비혼여성이 한국에서 정자 공여시술을 통해 임신을 시도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도대체 왜 이러한 지침을 만들어 놓았을까. 아마도 결혼한 부부가 이룬 가정이 아이가 안정적으로 자랄 환경이라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퀴어 커플이나 비혼 여성의 권리를 이야기하기도 전에 동거 중인 사실혼 관계의 여남 커플에서 이미 막힌다. 오로지 ‘법률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 해당된다. 이 지침을 만드는데 정말 1그램(g)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도 섞이지 않았을까. 절대 아니다에 5000원을 건다. 5000원은 연금복권을 살 수 있는 큰돈이다.

우리는 이미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통해 파괴와 절망에 가까운 여러 이성애 관계 가정들을 목격해왔다. 그럼에도 가정은 따뜻하고 집밥은 맛있다는 강력한 판타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여성이 결혼해 ‘사랑’하는 남편의 정자로 임신하고, 행복한 가정환경을 만들어 그 안에서 아이를 잘 키워내는 것. 그밖에 다른 상상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 순간 경로를 이탈했다는 경고음이 끊임없이 울린다.

2005년 황우석 사태 당시 많은 이들이 비윤리적인 난자 채취를 비판했으며, 난자 채취가 몸에 큰 무리를 줄 수 있다는 점도 부각됐다. 한 사람이 생산할 수 있는 난자의 수는 한정돼 무리한 난자 채취는 조기폐경을 일으킬 수 있고 골밀도가 떨어질 수 있으며 자궁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일부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했다. 난자 채취가 불임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비혼 여성이 난자 채취를 하는 것을 막아야 된다는 의견도 나왔고, 이후 생명윤리법이 강화되기도 했다. 당시 ‘돈 필요해 난자 매매까지 충격’, ‘20대 여성 인터넷서 난자 밀거래 충격’ 등 충격적인, 하지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빤히 보이는 제목을 단 기사들이 많이 등장했던 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난임 클리닉에서는 난자 채취가 드문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시험관 시술도 난자 채취를 통해 진행된다. 건강상의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위험하다는 난자 채취가 아이를 갖기 위한 과정 안에서는 오히려 권장된다. 임신과 출산은 결혼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정해진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안전할 권리를 존중받기보다, 오히려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한 몸이자 아이를 갖기 위해서는 어떤 위험한 시도도 감내할 수 있는 몸으로 존재한다.

결국 불임이 될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시술이라는 말은 여성의 몸과 건강을 생각하는 말이 아니다. 여성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임신을 못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만을 우려할 뿐이다. 낙태할 권리도 임신할 권리도 없이 살아가는 여성들의 몸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법적인 결혼 관계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는 법적인 결혼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도 연결돼 있다. 결혼도 아이도 당연하지 않다. 단순하지만 당연한 이 문장에서부터 출발해야 실타래가 풀린다.

은하선 섹스 칼럼니스트·은하선토이즈 대표
은하선 섹스 칼럼니스트·은하선토이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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