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단 불꽃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북:마크] 추적단 불꽃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이봄)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제목부터 연대의 뜨거운 정신을 가득 담은 이 책은 ‘올해의 책’ 목록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는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 중 한 권이다. ‘단’과 ‘불’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추적단 불꽃’은 N번방 사건의 최초 보도자이자 최초 신고자, 그리고 이 책의 저자다.

“언젠가 시들 수밖에 없는 꽃이 아니라, 타오르는 불꽃으로 살고 싶습니다. 저희는 여성을 예쁜 꽃으로 타자화하고 결국에는 ‘성기’로 대상화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연대를 끊고 싶어요.”

이렇게 힘주어 말하는 이들은 사회운동가이거나 활동가가 아니라 평범한 20대 대학생이자 ‘취준생’이었다. 2019년 여름, 기자 준비를 위해 탐사 심층 르포 취재물 공모전에 응모할 취잿거리를 찾던 중 디지털 성범죄를 다뤄보자고 마음먹고 취재팀 이름을 ‘불꽃’으로 짓긴 했으나, 텔레그램 메신저 오픈대화방을 통한 미성년 성착취 사건이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던 ‘N번방’을 알아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범죄자들이 잡힐지 아닐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태로 취재를 해나가야 했던 상황에서도 이들은 밤을 지새우며 자료를 모으고 범죄자 목록을 채워갔다.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여성들이 깊은 분노와 환멸을 느꼈다. 극악무도한 성범죄가 버젓이 벌어지는 현장을 최초로 목도한 추적단 불꽃의 심정은 어땠을까. 2부에서는 신상 공개를 비롯해 각종 위협에 대한 두 여성의 두려움과 고통, 정신적 충격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동료가 되었는지를 비롯해, 위태롭고 힘겨울 때마다 서로에게 의지해 한 발자국씩 디뎌간 시간이 서로를 향한 편지처럼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일들이 둘이어서, 함께여서, ‘우리’여서 가능했다.

독자의 마음을 가장 움직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들이 열렬한 활동가이거나 영웅적인 인물들이 아니라 그저 우리 곁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작고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불법촬영물 및 디지털 성범죄 관련 이슈에 있어 커다란 분기점을 마련하게 해준 두 사람에게 한국 사회는 큰 빚을 졌다.

여러 차례 보도되었던 N번방 사건의 상세한 추적기는 1부에, ‘불’과 ‘단’의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평범할 수 없었던 내면과 고민이 담긴 이야기는 2부에, 피해자들과의 연대, 대한민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직접 실천하는 보도 이후의 행보는 3부에 담겨 있다.

꽤나 두꺼운 2부를 통해 이 시대 20대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문제의식이 제시된 이후, 3부에서는 특히 올해 3월, ‘박사’라고 불리던 조주빈 검거부터 시작되어 성착취 피해자 사망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전말을 추적하거나(결국 그 사건은 피해자가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사망을 위장한 것으로 밝혀지게 된다) 정부 국무조정실에서 열린 디지털 성범죄 대책회의에 참석하는 등, 꿋꿋하게 문제 해결에 힘쓰는 모습들이 하나하나 펼쳐진다. 특히 추적단 불꽃은 피해자 보호와 연대를 누구보다 절실히 해낸다.

가해자를 향한 분노에 주목하느라 후속 기사를 읽거나 판결 소식을 들을 때 감정 소모가 많았던 이들이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용기 내어 읽는다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여전히, 꾸준히 노력해온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놀라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함께 타오르’는, ‘우리가 우리를 부를 때’라는 제목에 걸맞다. 이러한 사람들이 있어 디지털 성범죄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이나마 진일보할 수 있는 것이리라, 몇 번이고 곱씹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 하고, 이러한 인물들을 더 자주 조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수많은 ‘당신’들은 ‘우리’가 된다.

“당신은 지금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가해자 연대를 부수어 나가는 첫걸음은 더는 피해 영상물 유포를 묵인하거나 방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범죄 피해자에게 부끄러움의 몫을 전가하는 이가 아닌 가해자 연대에 수치의 책임을 부여하고 가해자 연대를 폭로해나가고 고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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