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출신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씨
정자은행 통해 일본서 아들 출산
‘정상가족’ 중심 제도에 문제제기
낳을 권리·낳지 않을 권리 화두로

 

KBS 9뉴스에 공개된 방송인 사유리씨와 아들. ⓒ KBS
KBS 9뉴스에 공개된 방송인 사유리씨와 아들. ⓒ KBS

 

일본 출신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41)씨가 엄마가 되고 싶어 정자은행을 통해 아이를 얻었다. 평소 방송에서 보여준 소신 있고 강단 있는 모습 그대로 사유리씨는 ‘나답게’ 엄마가 되는 길을 택했다. 간절히 원하던 아이를 낳아 행복해하는 사유리씨의 소식은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뉴스였다. 많은 이들이 그의 ‘비혼모 선언’을 응원하고 축하했다. 한편에서는 “아빠 없이 자랄 아이의 입장을 생각해봤느냐”며 오지랖 넓은 반응도 있었다. ‘정상가족’에 과몰입 해 싱글맘, 이혼가정, 조손가정의 존재를 지웠다. 

지금까지 출산은 결혼과 마치 한 세트처럼 존재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법적 부부’가 아니면 출산과 육아는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다. 이번 사유리씨의 ‘비혼모 선언’은 다른 세상을 열어줬다. 결혼제도 바깥에서도 원하면 출산이 가능하구나, 마음에 드는 정자를 선택해 나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이었구나. 사유리씨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그동안 ‘엄마 되기’에도 새로운 길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했느냐'고.

먼저, 법이 가로막고 있었다. 현행법상 비혼 여성의 정자은행을 통한 시술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24조 1항은 난자·정자를 기증 받아 시술하려는 사람은 ‘배우자가 있는 경우’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실제 병원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대한산부인과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은 ‘비배우자간 인공수정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정하고 있다. 비혼 여성은 사실상 시험관이나 인공수정 시술을 받을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그것도 방송인이 자신의 몸에 대해 말하기란 쉽지 않다. 일본 출신 후지타 사유리는 그 드문 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후지타 사유리씨. ⓒ여성신문 

 

‘엄마 됨’의 새로운 길 걷는 사유리씨 

여전히 엄마와 아빠,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 아니면 ‘정상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 여전히 ‘혼기’에 맞춰 여성과 남성이 결혼을 하고 ‘가임기’에 임신과 출산을 해서 가족을 꾸리는 것이 ‘건강한’ 가족이라고 가르친다. 그 안에서 법적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닌 가족은 ‘비정상가족’ 취급한다.

사유리씨의 선택은 여성을 전통적 결혼제도의 종말을 뜻한다. ‘독박육아’, ‘시월드’ 같은 여성이 원하지 않는 생활은 육아의 기쁨 앞에서는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엄마는 그런 가족 구조 속에서만 가능하니까. 하지만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사유리씨 친구들이 사유리씨에게 이번에 태어난 아이에게 정자은행에서 선택한 정자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충고를 했다고 한다. 편견으로 상처받고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예상에서 나온 조언이었다. 사유리씨는 아이에게 솔직해지는 쪽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그런 선택이 엄마의 사랑의 순도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사유리씨의 맑은 선택이 앞으로 여성들에게 자유의 폭을 넓혀줄 것 같아서 고맙다. 법적 가족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편견 섞인 시선을 견디며 가족을 이룬 사유리씨 같은 사례는 그래서 더욱 의미 있다. 이제 누구든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원하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난해 5월 4일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공원 평화광장에서 열린 ‘싱글맘의 날 캠페인’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미혼모 가족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여성신문 
지난해 5월 4일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공원 평화광장에서 열린 ‘싱글맘의 날 캠페인’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미혼모 가족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여성신문 

사유리씨는 ‘엄마 되기’의 여러 조건 속에서 맞춤형 엄마 되기 코스를 선택했다. 원하는 시기, 원하는 정자, 원하는 장소에서 임신하고 출산했다. 비혼모 선언으로 흔히 ‘여자는 밭, 남자는 씨앗’이라고 표현하는 가부장제의 가족관은 와르르 무너졌다. 아이를 낳고 싶지만 결혼은 원치 않았던 여성들에게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다.

한국은 ‘사실상’ 비혼 여성 임신 금지국이다. 사유리씨의 욕망과 행동은 나무랄 것이 없는데 이를 ‘위법’으로 만든다면 그 법이 잘못된 것 아닐까? 시민의 삶을 불법화 하는 규제는 풀고 개선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투쟁이 생각났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중단하는 행위를 범죄로 취급하는 법조항을 아직도 존속시키는 이유로 ‘생명보호’를 내세운다. 그 논리 아래 생명을 만드는 출산에도 ‘생명윤리’를 앞세워서 임신을 중단하는 여성과 그를 돕는 의료인을 범죄자로 만든다. 법이 전제하는 생명이란 도대체 누구의 생명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 활동에 대해 전적으로 여성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사유리씨 역시 KBS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낙태를 인정하라’ 있잖아요. 그것을 거꾸로 생각하면 아기를 낳는 것을 인정해라, 이렇게 하고 싶어요. 낙태뿐 아니라 아기를 낳는 것도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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