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출소하는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
피해자 가족은 거주지 떠나기로
가해자는 법무부 취업 연계 받는데
피해자 일상 회복 위한 지원 미비

ⓒFreepik,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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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던 초등학생을 잔혹하게 성폭행해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은 조두순(68)이 다음 달 13일 만기 출소한다. 조두순이 피해자와 그 가족이 사는 경기도 안산시에 정착한다는 소식에 나라가 술렁거렸다. 정부와 정치권은 급히 재범방지와 피해자·지역민 안전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족은 안산을 떠난다. 지난 10년간 ‘가해자가 출소 후 보복 범죄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호소해왔고, 결국 피해자가 가해자를 두려워해 떠난 선례로 남게 됐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지난 12일 기자들에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피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에 관해 국가가 되돌아봐야 한다. 법적 대안이 없다고 말로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마련해 줬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해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데 피해자는 불안에 떠는 게 맞나. 이게 과연 정의인가”(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등 격한 반응이 쏟아지는 이유다. “피해자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데 가해자에게만 너무 관심이 쏠린 상황”(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라는 우려도 높다.

조두순 사건 발생 이듬해인 2009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이 조두순이 12년 형을 판결받은 것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조두순 사건 발생 이듬해인 2009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이 조두순이 12년 형을 판결받은 것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조두순에 '주취감형'한 법원

수사 중 2차가해 인정·배상한 검찰

피해자 조롱한 만화까지

‘조두순 사건’은 범죄자가 법의 심판을 받고 종결된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 수사, 재판, 회복 과정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몰이해, 미숙한 대응, 낮은 성인지 감수성으로 인한 2차 피해의 연속이었다.

조두순은 2008년 12월 등교 중이던 피해자를 상가 건물 화장실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피해자에게 영구 장애를 남긴 범행은 공분을 샀다. 그러나 법원은 조두순이 ‘범행 당시 만취해 온전한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라는 이유로 감형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단일사건 유기징역 상한 15년에서 3년을 줄인 것이다. 본래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다. 외려 조두순이 “형이 과하다”며 항소·상고했으나 기각됐다. 사법부가 성범죄에 너무 관대하다는 반발 여론이 들끓었다.

피해자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2차 피해를 겪었다. 검찰은 대수술을 받아 제대로 앉아 있기도 힘들어하던 어린 피해자를 의자에 앉혀 두고 긴 시간 조사했는데, 영상물 녹화 장비도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피해자가 네 차례나 진술을 반복해야 했다. 이는 국가의 잘못이니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도 나왔다. 2011년 서울중앙지법은 피해자와 그 어머니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피해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2차 피해는 끝이 아니었다. 2018년 만화가 윤서인은 미디어펜에 조두순 사건을 희화화한 만평을 그렸다가 비난이 빗발치자 사과했고, 지난해 배상금 2000만원을 지급했다.

지난 2월 23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가족을 우롱하는 윤서인을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에는 24만2000여명이 참여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지난 2018년 2월 23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가족을 우롱하는 윤서인을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에는 24만2000여명이 참여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정부·국회, 조두순 대책 앞다퉈 내놓지만

“피해자 아닌 조두순 보호 대책” 비판도

현재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조두순 감시 강화, 가해자와 피해자 격리에 집중돼 있다. 지난 10월 30일 법무부·여성가족부·경찰청이 공동 발표한 대책을 보면 조두순은 7년간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성범죄자 알림e에 신상정보가 5년간 공개되며, 전담 보호관찰관이 동선을 감시한다. 경찰은 “조두순이 술도 못 마시게 하겠다”며 24시간 밀착 감시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결국 “피해자가 아닌 조두순을 보호하는 대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 와중에 조두순이 법무부의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했다는 소식에 여론은 들끓었다.

국회도 ‘조두순 방지법’을 내놓느라 분주하다. ▲재범 위험성이 큰 살인·성폭력 범죄자는 출소 뒤 1~10년간 격리하는 보호수용법안(양금희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 ▲미성년자 대상 흉악범은 출소 후 행동반경을 제약하자는 ‘조두순 감시법(전자장치부착법 일부개정법률안·고영인 민주당 의원)’, ▲조두순의 집 주소까지 공개하자는 ‘조두순 공개법(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김경협 민주당 의원)’, ▲아동 성범죄자에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한 ‘조두순 재발방지법(13세 미만 아동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영구적 사회격리 특별법·김영호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는 ‘화학적 거세’하자는 성충동 약물치료법 개정안(이수진 민주당 의원) 등 그새 10여 개의 법안이 쏟아졌다.

정작 당사자인 조두순에겐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범죄자는 범행 당시의 법률에 따라 처벌하고, 이후 새로 제정된 법률로 거듭 처벌받지 않도록 명시한 헌법상 ‘형벌 불소급’ 원칙 때문이다. 기본권 침해 논란을 피할 수 없는 민감한 내용도 많다.

성범죄 근절과 재범 방지에 힘쓰겠다는 정부도 말만 앞세울 뿐 강력한 정책 추진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 나온 2012년도 정부 예산안만 봐도 그렇다. 여성가족부는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예산 37억7000만원을 편성했고, 여성폭력 실태조사, 성매매 피해자 구조 지원 등 여성폭력 방지 정책 마련에 906억원을 마련했지만, 현실적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수년째 나왔다. 성범죄 근절과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겠다며 중앙부처 8곳에 전담부서인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을 설치했지만, 예산 규모는 부처마다 제각각이며 최대 29배까지 차이가 난다. 다 합쳐도 부처 총예산(6조 8273억) 중 10만분의 15(10억 3000만원)에 불과하다. “예산 수십조원 규모의 부처가 2~3억원으로 성평등 정책의 기반을 닦을 수는 없다”는 지적(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피할 수 없다.

정은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아동안전위원회는 공동으로 13일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조두순 접근금지법’ 입법 논의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장에는 하루 26명의 아동들이 성범죄를 입는 것(대검찰청 2017년 통계 기준)을 형상화한 26개의 책걸상이 놓였다. ⓒ여성신문
정은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아동안전위원회가 지난 2019년 12월 13일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조두순 접근금지법’ 입법 논의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장에는 하루 26명의 아동들이 성범죄를 입는 것(대검찰청 2017년 통계 기준)을 형상화한 26개의 책걸상이 놓였다. ⓒ여성신문

 

성폭력 계속되나 신고율은 10% 밑도는 현실

피해자 회복·강간문화 대책 시급

여성과 아동 대상 성범죄는 조두순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성폭력 신고율은 10%를 밑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길고 힘든 싸움이 필요하다. 피해자의 생존 능력과 회복탄력성을 인정하고 필요한 지원·지지를 제공하는 한편, 강간문화나 여성혐오를 해소하려는 노력 없이는 성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지난 17일 여성신문 기고에서 “법정에서 발생하는 피해자에 대한 폭력과 2차 가해는 여전”하고, “피해 여성들이 신고한 순간부터 ‘피해자다움’을 강요받”는 현실을 꼬집었다. “성범죄에 관대한, 그리고 피해자 지원 시스템이 여전히 미비한 한국 사회에서,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하려면 피해자들은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 지원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김정희원의 당신 곁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전략과 전술에 관하여 www.womennews.co.kr/news/204147)

김 부소장도 “피해자의 사회적 위치를 안정시키고 2차 피해를 막을 대책을 점검하고 촘촘하게 보완해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가해자 제재에만 집중하면 오히려 가해자들이 제재를 벗어나려고 피해자를 역이용하거나 공격하는 경향이 커질 수 있다. 가해자 변호사 시장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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