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탐구-W초대석] 서순희 던필드그룹 회장
서른넷에 창업, 세상 벽 허물고 패션그룹 수장으로 우뚝

서순희 던필드 회장 ⓒ홍수형 기자
서순희 던필드 회장 ⓒ홍수형 기자

 

딸은 내 삶의 등대이자 동반자,
던필드란 회사명도 딸이 지어줘

“시대와 맞서며 세상의 벽을 당당히 허문 당신! 그래서 더 존경스럽고 사랑합니다. 고(故) 유숙자와 가족 일동.”
11월 16일 서울 중구 회현동 던필드그룹 본사 3층, 서순희 회장 사무실에 놓인 꽃바구니 문구다. 서 회장의 ‘중앙대학교 명예 경영학 박사 취득’(11월 17일)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세상 어떤 위인이나 영웅도 가족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기는 어려운 법. 고인(故人)에 대해 묻자 서 회장은 ‘어머니’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서 회장은 부산에서 7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어느 날 빨간 머플러의 공군에게 반해 일찍 결혼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썼던 결혼이었지만 제대 후 군납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남편과 딸 하나를 두고 잘 살았다. 그러다 청천벽력같은 일이 생겼다. 남편이 암 판정을 받은 것. “수술만 9번 하고 미국에서 인터페론을 공수했어요. 어떻게든 살리려 숭례문상가와 남대문시장의 수십 개 점포를 판 것도 모자라 집까지 처분했지요. 다들 집만은 남겨두라고 했지만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로 되돌아간대도 아마 똑같이 할 거에요. ”

여자 나이 스물아홉에 맨 몸으로 허허벌판에 섰다. 딸이 안쓰러웠던 친정엄마는 재혼하라고 했지만 그는 당당하게 홀로서기를 택했다. 낮엔 남대문시장에 딱 하나 남겨둔 작은 점포에서 장사하고 밤엔 국제복장학원에 다니며 패션을 공부했다. 어떤 내색도 한 적 없는데 딸이 밤이면 엄마 옷을 손에 말아쥐고 잠들더라고 했다. “딸이 곁에 있어 어떤 고난도 참고 견딜 수 있었어요. 딸은 내 삶의 등대이자 동반자에요. 얼마 전 손자를 낳았을 때 말했죠. 등대같이 엄마를 지켜줘서 고맙고 손자를 보게 해줘서 고맙다구요.“

딸은 미국에서 항공설계를 전공하다 경영학으로 바꾼 뒤 돌아와 엄마를 돕는다. 던필드라는 회사명도 딸이 학생  때 지은 거라고. “장사한 지 5년만에 법인을 설립하려 신청서를 냈는데 자꾸 반려되는 거에요. 같은 이름이 있다는 이유였죠. 그때 딸이 던필드라는 이름을 내놨어요. 던(dawn)은 새벽 혹은 여명, 필드(field)는 들판이잖아요. 새벽들판, 너무 좋았어요. 지어 놓고 보니 발음과 뜻을 합치면 ‘돈방석’이 되고, 던을 한자로 하면 원효(元曉)이니 ‘첫새벽들판’이 돼 더더욱 근사했지요.”

17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법학관에서 서순희 던필드그룹 회장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쉬여식이 열렸다. ⓒ홍수형 기자
17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법학관에서 서순희 던필드그룹 회장이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고 답사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품목별 생산자 60명 모아 협동조합
건달들과 정면승부, 이마 걷어 차

법인은 설립했지만, 자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물건을 만들려면 직영공장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바지, 티셔츠, 자켓등 한 품목만 대를 이어 만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분들을 찾아 판매는 책임질 테니 물건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지요. 10년 보장이라는 조건도 걸었어요. 디자이너도 그렇게 구했구요. 각 60명씩 모아 협동조합을 만든 셈이죠.” 그렇게 시작한 협력업체들과 13년을 함께 일했다.

생산채널 조성 다음은 유통망 구축이었다. 시간은 물론 여관비도 아까워 봉고차에서 자면서 전국의 시장을 돌며 품질을 믿고 팔아달라고 졸랐다. “언젠간 몸에 혹이 있다고 수술하라는데 병원에 누워 있는 시간이 아까워 미루고 그냥 다니다 혹이 터졌어요. 피를 철철 흘리며 병원에 갔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큰 일 날 뻔했다고 하더군요. 미친 짓처럼 들리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판매망이 없어 물건을 못팔면 생산자들이 죽고 그럼 나도 죽으니까요.”

전국적으로 300개가 넘는 대리점과 위탁점, 직영점은 그가 그렇게 목숨 걸고 개척한 결과다. 사업이 웬만큼 자리잡혔을 때도 힘든 일은 수시로 생겼다. 시장 건달들이 구역을 지배하면서 툭하면 시비를 걸었다. 그는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한 패거리를 막느라 다른 패거리를 끌어들이지도 않았다. 

“한 패거리가 어느 날 회사 앞에 50명 정도 모아놓고 나를 부르는 거에요. 무서웠지만 경찰에 연락하지 않고 하이힐을 신은 채 걸어나가서 구두발로 두목의 이마를 걷어찼어요. 무방비 상태였던 두목이 나가 떨어졌지요. 그랬더니 뜻밖에 나이 많은 우두머리가 깍듯이 고개를 조아리며 ‘형님’이라고 부르곤 더 이상 괴롭히지 않더군요.“ 쌍기역 외자로 시작되는 성공비결 6가지(꿈· 끼· 깡· 꼴· 꾀· 끈)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단순한 옷 아닌 생명 담은 옷 목표
3개 회사 연매출 1200억, 구조조정 무

서 회장의 지론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와 ‘물러설 데가 없으면 오기가 열정이 된다’는 것이다. 처절한 절박함이야말로 오기를 열정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열정과 배짱, 성실과 원칙 준수로 일군 던필드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1200억원. (유)던필드알파, (유)여명, (유)던필드플러스 등 3개 회사에서 크로커다일맨, 피에르가르댕, 던필드레이디, 빅토비비, 디레이지 등 7개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작년보다 매출이 떨어졌지만(-20%) 그래도 구조조정 없이 잘 버텼다. 45~55세를 타깃으로 하는 타운웨어인데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탄탄한 덕분이다. 던필드그룹의 목표는 ‘단순한 옷이 아닌 생명력을 담은 제품, 합리적 가격에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남성크로커다일은 작년에도 ‘한국소비자평가 품질만족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제자리는 뒷걸음’이라는 믿음으로 끊임없는 혁신과 직원 교육에 총력을 기울이는 서 회장은 ‘판매원 없이 컴퓨터를 통해 주문하고 피팅도 해볼 수 있는 매장’을 개발, 내년초 선보일 예정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자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야지요.” 임직원들의 외부 수업이나 포럼 참석 등 교육에 신경을 쓰는 것도 그래서라고.

소신경영 위해 유한회사로 전환
외부자본 없이 운영, 책임 확실히

주식회사였던 계열사를 유한회사로 바꾼 건 경영의 효율성과 책임감 때문이었다. 유한회사는 주식회사에 비해 제약이 적어 의사 결정을 빠르고 유연하게 할 수 있다. 상장이나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외부자금 유치는 어렵지만 대신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경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외부 투자 없이 내 자본으로 운영하고 책임도 그만큼 확실하게 지겠다고 생각했어요. 회사 규모를 감안하면 상장을 할 법한데도 서 회장은 “상장해서 주식을 공모하면 그게 어디 내 회사인가요”라며 “주위에선 다들 권하지만 당분간은 상장보다 책임경영에 중점을 두고 싶다”고 말했다.

서회장이 현재 맡고 있는 직책은 한국여성제인협회(여경협) 특별부회장,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와 한국섬유산업연합회(섬산연), 한국패션산업협회(패션협) 부회장 등 4가지. 어디에서든 그는 여성기업인을 발굴하고 지원, 양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섬산연 회의에 갔더니 20명 중 나만 빼놓고 19명이 모두 남성이더군요. 중견련이나 패션협도 크게 다르지 않구요.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요. 디지털시대잖아요. 여성의 경우 섬세함과 멀티플레이어라는 측면에서 남성보다 유리한 일도 많아요. 조금만 지원하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법과 제도, 정부 정책 모두에 여성기업인을 지원할 수 있는 여건이 구비돼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 여성들이 잘 모르거나 알아도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경협은 특히 현 집행부의 방침과 다음세대의 희망사항을 잘 조화시키면 여성경제인 양성의 선봉장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최근 내년 여경협 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직함은 서울디자인고등학교 명예교장. “실업계 고교생들에게 꿈과 비전을 주고 싶어 맡았어요. 1년에 4번 정도 학생들과 직접 만날 작정이에요. 학생들에게 말해요. ‘대학 나오면 사장되는 시간은 멀어진다’ 구요. 사장이 되려면 물불 안가리는 열정이 있어야 하고 그 열정은 체면 안가리고 물러설 데가 없어야 생겨요.“

여성 기업인 발굴·지원·양성 진력
특성화고교생에 비전 제시 계획

서 회장은 앞으로 누구에게든 성공담보다 실패담을 더 많이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7전8기라는 말로는 어림없을 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다. “내 머린 못깎아도 남의 머린 깎을 수 있잖아요. 내 일은 못해도 후배들 일은 부탁할 수 있겠지요.”

성공을 위해선 ‘계획하고, 욕심을 줄이고, 실패했을 때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호정(湖靜) 서순희 회장. 서른넷에 창업해 30여년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던필드그룹을 키워내고, 남겨진 책무로 후진 양성과 청소년에 대한 비전 제시를 꼽는 그의 모습은 리더십의 핵심을 보여준다. ‘열정, 책임감, 나눔정신’이라는. 11월 17일 중앙대학교에서 받은 ‘경영학 명예박사’ 학위는 이런 그에 대한 보상이자 응원일 게 틀림없다. 거듭 축하드린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