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독일 소녀상 지키는 한정화 대표 “남성 정치인 카르텔 깨부셨다”
[W인터뷰] 독일 소녀상 지키는 한정화 대표 “남성 정치인 카르텔 깨부셨다”
  • 이가람 기자
  • 승인 2020.11.18 10:58
  • 수정 2020-11-20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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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
베를린 미테구청의 소녀상 철거 명령에 불복하며
시민사회와 함께 소녀상 지키는 한정화 대표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가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가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코리아협의회

베를린 시민들은 소녀상을 지킬 수 있을까.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소녀상(이하 소녀상)이 일본 정부의 방해로 철거 위기에 놓였다가 코리아협의회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그 위기를 우선 모면했다. 미테구의회에서 지난 5일 소녀상을 그대로 둬야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이다. 소녀상 건립을 주도한 한정화(사진)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여성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베를린 시민들과 인권단체, 그리고 언론의 관심이 이 정도로 높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며 “소녀상의 영구적 설치를 위해 미테구청과 함께 차근차근 협의해 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한 대표가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소녀상을 세우고 싶다고 생각한 건 지난 2016년.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유지가 아닌 공유지에 동상을 건립하기 위해선 수많은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4년간 구상만 하고 있었는데, 2019년 9월 소녀상을 세울 기회가 찾아왔다.

코리아협의회에서 전시 여성 폭력을 다루는 박물관을 구축하게 되었는데, 당시 미테구청 문화 담당관이 그곳을 찾은 것이다. 한 대표는 소녀상을 설치하기 위해선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물었다.

“마침 담당 공무원이 여성분이었고,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저희와 함께 일본군‘위안부’ 운동을 함께 해온 한독 2세 알렉산드라 바우어와 함께 아주 세심하게 신청서를 준비했어요. 그리고 페미니스트 미술 평론가와 여성미술협회 이사, 역사학 박사, 학교 교사들의 추천서도 함께 제출했지요” 

한 대표는 공유지에 소녀상을 세웠다가 일본 정부의 반대로 철거되는 사례를 여러 차례 봐왔다. 그래서 비밀리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모금 운동을 공개적으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국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의 도움을 받아 소녀상을 제작하고 베를린으로 운반해올 수 있었다.

“일본 정부 측에서는 소녀상을 독일의 수도 한복판에 세워지는 걸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고 했을 거예요. 그래서 9월 28일(현지시각) 제막식 하루 전인 일요일에 ‘소녀상 제막’을 선포했지요.”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가 지난 9월 28일 제막식을 앞두고 베를린 시민들에게 평화의소녀상 건립 취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가 지난 9월 28일 제막식을 앞두고 베를린 시민들에게 평화의소녀상 건립 취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코리아협의회

 

미테구의 소녀상 철거 명령으로 정치권과 시민사회
베를린 시민들까지 소녀상에 관심 높아져 

예상대로였다. 일본 정부는 즉각 반응했다. 그동안 소리 없이 물밑 작업을 해온 것과 달리, 이번엔 기자회견으로 정면승부를 걸어왔다. 

“소녀상이 설치된 다음날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이 유감을 표했고, 10월 1일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이 기자회견을 통해 베를린 소녀상 철거를 정식 요구했다고 말했어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독일의 유력지인 타츠 신문사 기자에게 연락을 했더니, 독일은 지방자치권이 강하기 때문에 연방 장관이 개입을 못 한다면서 아마도 일본이 독일의 정치 체제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기자의 말에 안심하고 있던 한 대표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10월 7일 베를린 미테구청에서 소녀상 철거 명령을 내린 거다. 한 대표는 그때 당시 상황을 “아찔했다”고 표현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하게 대응해야만 했다. 소녀상 건립에 도움을 준 수많은 사람들, 소녀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베를린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상황이 급박했어요. 법률가에게 저희가 제출한 신청서와 설치 허가 공문을 보냈더니 접수 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심지어 저희는 신청할 당시 일본의 방해가 있었던 다른 도시의 사례까지 상세하게 기재했기 때문에 이길 확률이 높다고 했어요. 그래서 가처분 신청서를 행정법원에 제출했지요”

법원의 판단만 기다릴 수 없었다. 시민사회를 움직일 집회를 기획했다. 한 대표는 협의회 식구들과 함께 소녀상에서 미테구청까지 행진하는 퍼포먼스와 작은 음악회 등을 열어 ‘소녀상 철거 철회 요구’ 공동행동을 진행했다.

“슈테판 폰 다셀 미테구청장은 녹색당 소속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탈식민지운동에 열려있는 사람이에요. 말이 통할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단체가 시위하는 날, 구청 측에 전화를 걸어 우리의 청원서를 구청장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시위대가 도착하기 전부터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도착하자마자 청원서를 곧바로 전달하진 않았어요. 일부러 저희 집회를 다 보게끔 한 다음에 마지막에 전달했죠.”

사민당 등의 압박과 시민단체의 끈질긴 요구, 시민들의 항의집회에 
결국 ‘철거 판단 보류’ 결정한 베를린 미테구청  

한 대표가 지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기반에는 베를린 시민사회와 정당도 한몫했다. 베를린의 핵심 정당인 사회민주당(사민당)은 미테구의 소녀상 철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당 홈페이지에 이를 반대하는 보도자료를 올렸다. 좌파당에서는 코리아협의회를 직접 찾아와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들은 후, 곧바로 철거 반대 입장을 내놨다. 

“현재 베를린시는 진보적인 3당 연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독일말로는 로트-로트-그린(영어로는 레드-레드-그린)으로 사민당, 좌파당 그리고 녹색당으로 구성되어 있죠. 이 세 정당에서 모두 철거 명령에 대한 반대 입장을 내놨다는 건 큰 의미가 있는 거예요.”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와 표현의 자유에 관심이 많은 언론에서도 힘을 보탰다. 한 대표에 따르면 거의 모든 베를린 일간지에서 5~6차례 연속 보도를 해줬고, 일부 매체에선 협의회로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고 한다. 한 대표는 이를 ‘소녀상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베를린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각) 미테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 모인 코리아협의회 회원들과 베를린 시민들.
베를린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각) 미테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 모인 코리아협의회 회원들과 베를린 시민들. Ⓒ코리아협의회

소녀상 지키는 운동, 평화·인권 중요시하는 
베를린 시민은 물론 시민사회단체까지 합세

이번 결과는 30년 역사의 코리아협의회 회원과 활동가, 자원봉사자들의 결실이기도 하다. 고 윤이상 작곡가와 송두율 교수를 비롯한 한인 1세대와 교수, 학자, 목사, 기자 등 다양한 직군의 독일인들, 그리고 한인 2세와 유학생, 한국학과 학생들, 일본계, 베트남계, 중국계, 콩고계 등 다양한 이주 배경을 지닌 2세 회원도 생기고 있다. 한 대표는 회원들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운동의 ‘연대’를 기획하고 조직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많은 여성·인권단체, 교회, 노동조합, 지역 연합과 함께 연대하고 있어요. 지난해 4.27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기념해서 베를린에서 인간 띠 잇기 행사를 했는데, 500명이 모였어요. 그때 우리가 원하면 1000명도 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만큼 평화와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이 있다는 거죠.”

이번 소녀상 철거 이슈를 다루면서도 연대하는 단체들이 생겼다. 독일어로 극우를 반대하는 할머니들이라는 이름의 ‘오마스 게겐 레히츠’ 단체에서는 소녀상 앞에서 매주 금요일 집회를 하고 있다. 독일어로 용기를 뜻하는 여성단체 ‘큐레이지’에서는 11월 25일 세계전시여성성폭력추방의날 집회를 주관할 예정이에요. 소녀상 존치를 위한 활동은 코리아협의회가 시작했지만, 이젠 베를린 시민들과 함께하는 운동이 된 거다. 

베를린 시민이 11월 13일(현지시각)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의 비문을 정독하고 있다.
베를린 시민이 11월 13일(현지시각)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의 비문을 정독하고 있다. Ⓒ코리아협의회

십시일반 성금 보태는 베를린 시민들과 
매주 소녀상에 꽃 기부하는 시민도 있어 

시민단체 뿐만 아니라, 베를린 시민들도 소녀상 지키기에 동참하고 있다. 

“소녀상 옆에 있는 꽃가게 주인은 ‘소녀상의 화관은 자신이 꼭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고, 친구들이 십시일반 내놓은 성금을 모아 주기도 하세요. 이뿐만 아닙니다. 한 익명의 남성은 매주 싱싱한 꽃을 소녀상에 선물해 달라며 매달 20유로를 꽃집에 기부하고 있다고 해요. 소녀상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어요. 존재만으로도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전파해죠. 소녀상을 지키는 건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어요.”

한 대표는 베를린 한복판에 소녀상을 설치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만든 정의연의 도움도 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시민들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의연이 성장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모은 중요한 자료들이 영문으로 번역되면서 저희 같이 해외에 있는 단체들이 도움을 받았죠. 특히 나비기금을 통해 베트남, 콩고, 르완다 등지에서 피해생존 여성과 연대를 하고 기금을 전달하는 건, 독일 사회에서 많은 공감을 얻어내고 있어요” 

코리아협의회에서는 '평화의 소녀상 존치'를 위해 다양한 웹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지는 코리아협의회에서 게재한 웹 홍보물.
코리아협의회에서는 '평화의 소녀상 존치'를 위해 다양한 웹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지는 코리아협의회에서 게재한 웹 홍보물로 “우리는 평화의 동상입니다(WIR SIND DIE FRIEDENS-STATUE)”라고 적혀 있다. Ⓒ코리아협의회

소녀상 철수 사태 재발 막기 위한 
영구 설치 논의 진행해야   

한 대표와 베를린 시민들의 노력 끝에 11월 5일 미테구의회는 ‘소녀상 설치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의원 37명 중 28명이 결의안에 찬성했다. 상당히 빠른 결과였다. 하지만 한 대표는 여기에 만족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12월 1일 구의회 안건으로 상정될 내용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번 회의 때 상정되지 못한 녹색당과 좌파당의 안건에 주목해야 해요. 그 안건엔 미테구청은 코리아협의회와 함께 소녀상의 영구적인 설치를 위한 해결책을 마련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있거든요. 이날 안건이 통과되어 소녀상 영구 설치를 위해 미테구와 함께 토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 대표는 다셀 미테구청장을 만나 그간 코리아협의회에서 발간한 잡지와 전시 도록도 전달했다. 단체에서 소녀상을 세우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게 일본 정부를 일방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님도 확인시켜줬다. 구청장은 한 대표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는 듯 보였고, 소녀상 비문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서로 확인했다. 

하지만 미테구에서는 비문 수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고, 협의회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수정하길 원하는지 알려달라 말했다. 그러나 미테구청은 17일 현재까지 반응이 없다고 한다.  

“구의회 결의안이 채택된지 오늘로 열이틀이나 지났는데 깜깜무소식이에요. 16일 녹색당 내부 소식통을 통해 들은 바로는 비문을 수정해서 일본 대사한테 보여도 맘에 들어 하지 않아 일본과의 타협을 포기했다고 하더라고요. 비문을 수정해서라도 일본 대사관과 타협하려 했는데, 일본 측은 비문 수정에는 관심이 없고 소녀상을 철거했으면 하는 것이지요.” 

남성 정치인들의 카르텔 깨부순 
시민사회의 성공사례로 남길 

코리아협의회에서 위안부 이슈를 다루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9월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액션 그룹이 형성되었고, 2017년 12월까지 매년 생존 여성들을 모시고 관련 행사를 개최해 왔다. 그간 독일 30여 개 도시에서 80회 순회 강연을 했고, 전시회, 영화 시사회도 개최했다. 수요시위 900차, 1000차, 1400차 때에는 베를린에서 집회를 열고,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모았다. 

이번 사태에 차근차근 대응해 나갈 수 있었던 건, 그동안 다뤄왔던 위안부 이슈에 대한 노하우 덕분이다. 사태가 커지면서, 하루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활동하고 있고, 단체 실무 담당자 3명 중 2명 휴직 중이지만, 그럼에도 굳건한 사명감으로 여기까지 끌고 왔다. 

한 대표는 단체의 회원과 활동가들은 물론, 적극적 지지를 보내주는 자원봉사자들, 프리랜서 활동가들에게 특히 감사하다고 전했다. 한 대표는 “단체 운영은 어려운 상황이고, 활동 규모에 비해 인력이 많지 않아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일이 많지만,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단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시작으로 독일, 미국, 유고슬라비아, 콩고, 르완다, 야지디족 여성 등 과거와 현재까지 진행되는 전시 폭력을 다루는 박물관을 설립하였고, 그 내용을 청소년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사업을 시작했어요. 생존해 계신 피해생존 할머니들이 독일에 오시기 힘든 상황이니 소녀상을 통한 교육에 몰두하고 싶어요. 그래서 소녀상 존치는 반드시 이뤄져야 해요.”

한 대표는 이번 소녀상 철거 사태를 ‘남성 정치가들의 침묵의 카르텔’을 보기 좋게 깨부순 사례가 될 거라고도 말했다. 
 
”이번 사태는 남성 정치가들끼리 서로 악수하면서 ‘소녀상 문제는 골치 아프니 없는 거로 하자’고 결정한 걸, 시민들의 힘으로 뒤집은 사례가 될 거예요. 독일, 특히 베를린에서는 전쟁 혹은 여성폭력에 대해서 원칙적인 비판 의식이 있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정말 커요. 코리아협의회는 그런 시민들과 함께 다시는 전쟁 없는 세상! 평화를 위해 성폭력에 반대는 활동을 꾸준히 해나갈 겁니다. 계속 관심 가지고 지켜봐주세요.”

 


베를린 평화의소녀상 철거 논란 타임라인

· 9월 28일|코리아협의회, 베를린 미테구에 소녀상 설치
· 10월 1일|일본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독일 하이코마스 외교부 장관과 회담 
· 10월 6일|모테기 외무상, 기자회견서 베를린의 소녀상 철거 요구했다고 밝힘 
· 10월 7일|미테구청, 코리아협의회에 소녀상 14일까지 철거 명령
· 10월 13일|코리아협의회, 베를린 행정법원에 철거 명령 가처분 신청  
· 10월 13일|코리아협의회, 소녀상 앞에서 출발하여 미테구청까지 베를린 시민 300여 명과 함께 항의 집회
· 10월 14일|미테구청, 독일 정치권과 시민사회 압박 이어지자 “소녀상 철거 판단 유보”
· 11월 5일|미테구의회, “소녀상 설치 그대로” 결의안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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