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람 ‘여자의 아내’
이미랑 ‘목욕’
김혁 ‘첫 외출’
아나 시곤 ‘고양이 손님’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 여성 서사를 담은 영화, 젠더이슈와 성평등 가치를 신선한 시각으로 담아낸 영화, 바로 '여성영화'입니다. [여성영화 사랑법]은 앞으로 여성영화 스트리밍 플랫폼 '퍼플레이(purplay.co.kr)'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성영화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다채로운 매력이 넘치는 여성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여자의 아내’ 스틸컷
‘여자의 아내’ 스틸컷

 

이상한, 기이한, 색다른. 성소수자를 포괄하여 칭하는 ‘퀴어(Queer)’를 뜻하는 말이다. 처음에 퀴어는 동성애자를 비하하기 위해 쓰였다. 자신들과 다르니 이상하다고, 틀렸다고 생각한 걸까. 조금이라도 다르다고 여겨지면 동떨어진 카테고리에 한데모아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는 못된 마음은 그렇게 종종 차별과 폭력을 낳는다. 그러니 소수자의 삶은 현실에서든 창작물에서든 활발히 이야기되지 못하고, 그로 인해 그들의 존재는 쉽게 지워진다. 하지만 그들은 내 옆에서 살아가고 있다. 같이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한다. 또 때때로 즐겁고 때때로 힘겹다. 별반 다를 것 없는 삶의 형태다. 이번에는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영화 4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남편이 여자가 되기로 했다
평생을 약속한 파트너가 뒤늦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힌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여자의 아내’(장아람, 2018)의 은경(이상희)은 갑자기 여자로 살겠다고 선언한 남편 성훈(장재호) 때문에 너무나 혼란스럽다. 성훈에게 화를 쏟아냈다가도 그를 이해해보려 성소수자 가족 모임에 나가보지만 머리가 더 복잡해질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밖에서 성훈을 발견한 은경은 그의 뒤를 쫓다 무언가 깨닫는다. 성훈의 바람은 단순히 여장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음을. 여자로 살겠다고 한 것은 말 그대로 여자가 되어 일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음을. 하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 무신경한 혐오를 마주하게 되고, 그에 분노한 은경은 분명하게 힘주어 말한다. “저는 이 여자의 아내입니다.” 

‘목욕’ 스틸컷
‘목욕’ 스틸컷

 

‘첫 외출’ 스틸컷
‘첫 외출’ 스틸컷

 

‘고양이 손님’ 스틸컷
‘고양이 손님’ 스틸컷

 

우리 같이 목욕 갈까?
‘목욕’(이미랑, 2007)의 배경은 엄마(정인평)와 두 딸이 함께 사는 집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집안 공기가 싸늘하다. 세 모녀에게선 날선 감정이 느껴진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늦은 밤, 언니(이명옥)는 동생(박은영)의 문을 두드리고 어색하게 묻는다. “나랑 목욕탕 갈래?” 그리고 돌아온 퉁명스러운 대답. “나랑 가고 싶니?” 하지만 다음날 새벽 두 자매는 먼 동네로 목욕을 나선다. 생전 처음으로 함께 목욕탕에 간 둘은 서먹해 보이고, 먼저 탕에 들어가라는 동생과 같이 들어가자는 언니는 결국 말싸움을 벌인다. “누나가 너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 아니야!” “나 때문에 온 사람이 아직도 누나라고 하니?” 동생을 위하는 마음을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지만 방법이 서툰 언니는 결국 삐끗한다. 하지만 동생도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 자매를 향해 엄마가 날리는 대사가 머릿속을 맴돈다. “지들끼리만 씻고 오고, 인정머리 없는 년들. 밥이나 먹어 나쁜 년들아!” 서로를 받아들인 이들의 입가에는 배시시 미소가 번진다. 

비로소 문을 연 순간 
‘첫 외출’(김혁, 2018)의 진수(이민영)는 FTM 트랜스젠더다. 12월에 멈춰 있던 달력을 4월로 넘긴 그는 오랜만에 집 밖을 나선다. 친구 나영(최인선)에게 자신이 남자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아가씨, 여기서 내릴 거예요?” 버스에서조차 원치 않는 호칭을 견뎌야 하는 진수. 머리를 자르러 간 미용실에서도 수난은 계속된다. 짧은 머리를 원하는 진수에게 미용사는 단발머리의 헤어스타일을 권하고, 숏컷으로 자른 후엔 여성의 커트 가격을 요구한다. 여성에겐 남성으로, 남성에겐 여성으로 비춰지는 진수는 화장실을 가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진수에겐 나영이 있다. 나영에게 사실을 털어놓은 진수는 처음으로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만끽한다. 그렇게 진수는 비로소 문을 열었다. 

여자? 남자? 그게 중요해?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초단편 애니메이션 ‘고양이 손님’(아나 시곤, 2017)은 퀴어라는 존재에 대해 귀엽고도 유쾌하게 질문거리를 던진다. 무지개 색 털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고양이 외교부 사무실을 찾는다. 인사를 건넨 고양이에게 담당 직원은 이름과 무게, 길이를 묻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던 고양이는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만다. “여자야? 남자야?” 성별을 묻는 질문에 고양이는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고민하다 내놓은 답은 직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뿐이다. 낭랑한 ‘먀먀’ 합창에 넋을 놓고 보다가 어느 순간 깊은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는 엄청난 매력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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