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사회·인권운동가이자 작가 아룬다티 로이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 온라인 기자간담회
“예술과 정치, 뼈와 피처럼 분리할 수 없는 관계
복잡한 세상 피하지 않고 직시하려고 소설 써…
아시아 여성으로서 우리의 존엄 깨닫고
격려하며 아름다운 것들을 함께 만들자”

인도 출신의 세계적 작가이자 비평가, 사회·인권운동가, 페미니스트. 아룬다티 로이는 자신을 “싸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인도 출신의 세계적 작가이자 비평가, 사회·인권운동가, 페미니스트. 아룬다티 로이는 자신을 “싸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 Arundhati Roy/은평구 제공

아룬다티 로이는 자신을 “싸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인도 출신의 세계적 작가이자 비평가, 사회·인권운동가, 아시아 여성이라는 소수자로서의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 여성·성소수자 등 ‘비주류’의 인권을 옹호해온 페미니스트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부터 젠더 차별, 핵무기, 제국주의, 세계화, 코로나19까지 다양한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꼽힌다.

제4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한 로이가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수상 소감과 근황, 작품에 투영한 자신의 철학, 아시아 여성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말 등을 나눴다.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과 『지복의 성자』 ⓒ문학동네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과 『지복의 성자』 ⓒ문학동네

로이는 1977년 발표한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1997)으로 부커상을 받으면서 명성을 떨쳤다. 20년 만의 두 번째 소설 『지복의 성자』(2017)는 맨부커상·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주로 인도와 카슈미르 지역을 배경으로 계급·종교·인종·문화 갈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강렬하고도 유려한 문장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아시아 여성과 성소수자를 서사의 중심에 두고, 젠더 차별·폭력에 고통받지만 맞서는 모습도 그렸다.

올해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로이를 수상자로 뽑았다. 심사위원들은 “인도 역사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과 그것을 소설적으로 담아내는 뛰어난 문학적 능력”, “계급적, 종교적 분열과 성적 소수자의 문제,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아우르는 폭넓은 시야, 역사적 상처를 모성의 품으로 끌어안는 유연한 젠더 의식” 등을 높게 평가했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분단 문학의 대표 문인이자 서울 은평구에서 50여 년간 활동한 이호철(1932~2016) 작가를 기려 2017년 은평구가 제정한 상이다. 앞서 김석범(재일 조선인), 사하르 칼리파(팔레스타인), 누루딘 파라(소말리아)가 이 상을 받았다.

로이는 수상 소감으로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우리가 서구·강대국들로부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상이라서 기쁘다. 역대 수상자들도 매우 인상적”이라며 “상금 5000만원은 다른 사회활동가 등을 위해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 독자들에게도 감사를 전하며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의 사람들이 내 글을 깊이 읽고 좋아해 준다니 감동적이다. 우리가 서로를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제4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한 로이가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은평구 제공
제4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한 로이가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은평구 제공

로이는 반다나 시바(환경운동가·에코페미니스트), 노엄 촘스키(언어학자·정치 평론가) 등과 함께 대표적인 급진 좌파 지식인으로 꼽힌다. 다양한 계급·종교·인종·문화가 빚어내는 차이와 갈등에 주목하면서, 복잡한 현실을 획일화하고 소수자들을 착취하려는 정부와 기업의 시도를 비판해왔다. 인도 정부가 반대하는 카슈미르 독립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왔고, 인도·파키스탄의 핵 개발을 비판하며, 미국식 자본주의와 공공서비스 민영화·상업화의 문제를 지적하고, “젠더는 스펙트럼”이라며 인도 사회에 만연한 성 역할 고정관념을 거침없이 꼬집는다.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관해 쓰고 말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고 로이는 말했다.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복잡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예술(문학)과 정치는 뼈와 피처럼 분리할 수 없다”고도 했다.

아룬다티 로이는 “예술(문학)과 정치는 뼈와 피처럼 분리할 수 없다”고 했다. ⓒ Arundhati Roy/은평구 제공
사회활동에도 열정을 쏟고 있는 아룬다티 로이는 “예술(문학)과 정치는 뼈와 피처럼 분리할 수 없다”고 했다. ⓒ Arundhati Roy/은평구 제공

1961년생으로 올해 60세를 맞은 로이는 최근까지도 카슈미르를 방문하고, 인도의 마오이스트(마오쩌둥주의자)들과 한 달간 숙식을 함께하며 르포를 썼다. 지난 9월엔 20여 년간 발표한 비평과 에세이를 집대성한 『Azadi』를 펴냈다.

지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는 동력은 무엇일까. 로이는 “나는 싸우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지지한다기보다는 평등주의자(egalitarian)로서 모든 관점을 논쟁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단 내가 특별한 존재나 리더인 양 나를 서사의 중심에 놓으려는 욕망을 경계한다. 세상엔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려 한다. 그래야 충분히 쉴 수 있고, 우정과 사랑, 연대, 농담과 웃음을 사랑하며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중한 가치 나누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야...

아시아 여성으로서 우리의 존엄을 깨닫고
격려하며 아름다운 것들을 함께 만들자”

로이는 아시아 여성·성소수자를 서사의 중심에 놓은 작가이자, 서구 백인남성 중심 주류 사회를 비판하고 균열을 내온 페미니스트로 평가받는다. 아시아 여성이 소수자의 위치를 넘어 더 중요한 보편성을 확보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로이는 여전히 서구문학이 세계 문학의 주류인 현실을 지적하며 “세계의 무게중심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여성들의 연대를 강조하는 발언도 했다. “우리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나누고 싶은 이들과 함께 걸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려면, 우리는 아시아 여성으로서 스스로의 존엄을 깨닫고 존중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이해하고 격려할 때 함께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불평만 하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글쓰기 조언도 나눴다. 로이는 “나는 직관에 의존해 글을 쓴다기보다는 매우 훈련된 작가(disciplined writer)에 가깝다”며 “듣고, 관찰하고, 걷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현실을 다른 관점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이곳 인도는 다양한 언어의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는 곳이라서 매일 보고 듣는 것을 통역하는 일이 내 창작의 첫걸음이다”라고 말했다. 또 “작가에게는 모든 것이 서사(narrative)다. 타인의 관점을, 대화를, 관계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게 작품의 피부, 뼈, 머리카락, 속눈썹이 된다”고 했다.

ⓒ Arundhati Roy/은평구 제공
ⓒ Arundhati Roy/은평구 제공

로이는 최근 전 세계적 감염병 확산, 분쟁과 테러 위협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로이는 프랑스 등 서방국가와 이슬람권 국가 간 긴장을 언급하며 “이런 갈등은 늘 존재할 것이다. 세계는 너무나 복잡하고 어느 특정한 관점이 절대적으로 승리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더 성숙해야 하고, 상대를 이해하려 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최근 인도 내 코로나19 확산, 인도·파키스탄의 카슈미르 분쟁 격화 등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다며 “인도에서는 지난해부터 충격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글을 쓰면서 안정을 찾으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세 번째 소설이 언제 나올 거라고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내년 한국에서 열릴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시상식에는 참석해 독자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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