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판벌려] 사랑하는 나의 여자친구들에게
[정치 판벌려] 사랑하는 나의 여자친구들에게
  • 이지원 여성의당 공동대표
  • 승인 2020.11.10 13:22
  • 수정 2021-01-05 0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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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무관한 사진. ⓒ픽사베이
ⓒpixabay

H야, 지난주에는 두 명의 여성을 떠나보냈어. 한 명은 희극을 하던 여성, 다른 한 명은 싱어송라이터를 꿈꿨던 여성이었어.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수한 여성들이 그 가운데에 생을 달리했겠지. 내가 아는 너라면 지난주를 적잖이 먹먹하게 보냈을 것 같아 걱정돼.

어떤 일주일은 여성들에게 너무 가혹하기도 해. 많은 이들이 피해자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성추행 피소 이후 자살을 택한 서울시장을 바삐도 추모하고, 대통령과 정계 유력 인사들은 복역 중인 성범죄자에게 조문을 가고. 사법부는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운영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도 모자라, 만취한 여성을 조직적으로 성폭행한 남성 네 명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고. 한 여성 연예인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남성에게 대법원은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교사가 교내 여자화장실마다 불법촬영 카메라를 설치하고, 선수단 내의 지속적인 폭력과 성폭행이 한 선수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가고, 초등학생을 성추행한 중학생을 처벌할 법이 없다는 보도가 단 일주일 만에 쏟아지는 동안 너는 어떻게 지냈어? 아니, 정확히는 어떤 마음으로 그 역겨움을 버텨냈어?

네가 추천해줬던 『시선으로부터』에 이런 문장이 나와.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가해를 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라면, 살아남은 여성들과 더는 살 수 없었던 여성들에게 언제쯤 권력이 주어질 수 있을까. 그전에 우리는 은폐된 여성들의 죽음이 몇이나 될지 과연 헤아릴 수는 있을까. 오늘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말을 되뇌는 여성들이 있어. 그 절박한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난 늘 여성의 생존을 좇게 돼. 가끔은 남들처럼 사회적으로 줄 세워진 지표에 매달려야 할 것 같은 혼란이 들기도 해. 그럼에도 그 지표에 여성의 목숨값은 없다는 걸 알기에 다른 곳을 좇지 못하겠어.

그래서 난 여성의당 공동대표 취임식에서마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어.

“한국 사회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 20대 여성들을 보며 과격하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왜 20대 여성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 저는 이 여성들의 목소리가 거리에서 흩어지지 않도록 여성의당의 당원이 되었습니다. 이 여성들이 분노하고 절규하되 외롭지 않도록 여성의당의 공동대표가 되었습니다. 여성의당의 당원이자 공동대표로서 여자라는 이유로 죽어야만 했던 여성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여자라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사는 여성들과 연대합니다.”

무엇이 여성들을 우울로 가득 찬 우물에 머무르게 하는지, 그들이 생을 달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언젠가는 알아야 해. 어쩌면 그건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었을 거야. 네가 자랐던 캐나다에서는 매년 12월 6일을 여성 애도의 날(Day of Mourning for Women)로 지정해두었더라. 페미니스트들이 나를 늘 분노하게 한다며 교실에 있던 50명의 남성을 밖으로 내보내고 9명의 여성에게만 총을 쏘았던 1989년 12월 6일의 캐나다 남성 르팽과, 여자들이 항상 나를 무시했다며 강남역 공중화장실에서 3시간을 기다려 여성만을 살해한 2016년 5월 17일의 대한민국 남성 김성민은 너무나 닮았어.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그 사건들이 여성혐오에 의한 폭력인지 아닌지를 입증해야만 하지.

세상이 남성을 애도하는 만큼 여성을 애도한다면, 허망하게 사라진 여성들이 영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살아 있는 여성들은 생존 너머의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좇아볼 수 있지 않을까. 너는 나를 알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때에 나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지. 그런 네게 나는 그렇게 관계가 오래 이어지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어. 물론 우리는 언젠가 친구가 아닌 관계로 변해버려서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을 때를 맞이할지도 몰라. 그러면 나는 네가 오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언제나처럼 마라샹궈를 시켜먹진 않았을지 걱정하지 않게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래도 그때의 너는 꿈꿔왔던 동화작가가 되어 동화책 속에 어느 여성이든 자유로운 세계를 지어 올리고 있겠지. 나는 그런 네가 늘 안녕하기를 바라며 네가 만든 세계를 논픽션으로 만들어가고 있을게. 내일도 잘 지내.

Y야, 여성들로만 이뤄진 시위에서 마주친 팻말들을 기억해? 나는 그 많은 피켓 중에 오늘은 유독 “끓어오르는 태양쯤이야 불법촬영으로 자살을 택한 내 친구의 피눈물보다 더 뜨거울까.”, “목이 터져라 소리치자, 우리의 자매들이 숨죽여 울지 않도록.”, “시간이 지나 이 운동이 책으로 엮어지고 모두가 눈물짓는 이름이 될 때, 그때는 우리 한바탕 크게 웃어보자. 자매여, 내가 너의 눈물을 기억한다.”가 생각났어.

사라진 여성들을 기억하려는 그 여성들의 표정을 우리는 영영 잊지 못하겠지. 그래서일까. 내가 힘이 든다는 이야기를 하면 넌 늘 내게 같이 달리기를 하자고 해. 그리고 모기에 물려가며 깊은 대화를 나눴던 그 날 밤처럼 때로 넌 내게 정말 달려오기도 해. 너는 네가 이렇게라도 버티면 너의 뒤에 올 여자들이 괜찮을 수 있을지 걱정했지.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너를 걱정했어. 넌 이미 충분히 잘 해내고 있어. 예전에 너는 네가 한때 샤워를 하고 집 밖을 나가는 것조차 버거워했다고 내게 조심스레 말해준 적이 있어. 그랬던 네가 지금 여자들에게 쾌활함을 전해주고 있다는 걸 떠올려봐. 잘 모르겠다면 내가 몇 날 며칠이고 네가 얼마나 소중하고 단단한 존재인지 이야기해줄게.

왜 여성이 쓴 글의 서문에는 다른 여성에 대한 애도와 존경의 헌사가 늘 함께할까. 어떤 이는 “견뎌내었던 시몬 드 보부아르를 위하여”라며 급진적인 글을 시작했고, 또 어떤 이는 “필요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자신을 방어했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병자 취급당하고 살해당한 모든 여자들을 위하여”라며 역사에서 가려졌던 이들을 기록했어. 무력감이 찾아들 때, 본인처럼 무력했을 다른 여성을 떠올려서일지도 모르겠어. 나는 여성들이 더는 정치에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로 여성의당을 창당하는 일을 했어. 오랫동안 꿈꿔왔던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는데, 처음 들어갔던 강의실에서 “정치학에서 여자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남자 교수의 그 한 마디가 나한테는 너무 아프게 들렸거든.

나는 대학을 졸업한 지금도 그 문장이 버겁곤 해. 페미니스트가 된지 10년이나 되었으면 이런 헛헛한 감정에 무뎌질 줄도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아직도 종종 스스로를 다독여. 그래도 살기 싫다는 마음이 죽고 싶다는 마음이 되지는 않더라. 그런데 죽어야만 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여자들이 있었을 거야. 그래도 어떤 여자들은 또 다른 여자들이 있어 삶을 더 살아볼 욕심을 내기도 하겠지. 너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그래서 난 어떻게 해서든 살아 남아볼 욕심이 드는 세상을 만들어보려고 해. 여자들이 서로의 방파제가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난 방파제를 놓을 곳부터 찾고 있을게. 그리고 살아 있는 여자들에게 무력감에 잠식될 때마다 이 방파제를 딛고서 함께 살아남자고 말할게.

우리가 이렇게 친해지기까지 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는데 앞으로 30년 동안도 지지고 볶고 잘 지내보자는 내 말에 너는 30년까지만 잘 지낼 셈이냐며 볼멘소리를 내었지. 나는 그런 너의 반응이 귀엽고 재밌다가도 30년 뒤부터는 무조건 체력전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 그리고 사실 나는 너와 앞으로 함께 할 30년도 무척 기대돼. 너는 그 시간 동안 네가 만들어낼 영화의 엔딩 크레딧마다 무수히 많은 여성의 이름을 빼곡히 실어내겠지. 나는 너의 작업을 누구보다 반갑게 여기며 내가 있는 곳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갈 세상을 부단히 만들어갈게. 그러니 내가 이곳에 너를 언제든 초대할 수 있도록 오래 그리고 건강히 살아 있어줘. 안녕.

이지원 여성의당 공동대표.
이지원 여성의당 공동대표.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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